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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술 한잔 드릴게요

등록 2014-02-07 19:51수정 2014-02-08 11:13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아버지가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집에 전화 한번 해봐. 응급실에 가시고 꽤 심각하셨나 보더라.’ 얼마 전 누나한테서 온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걱정돼 전화했더니 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며, 그냥 혈압이 갑자기 높아져서 어지럽고 구토가 났던 거라고만 말씀하셨죠. 괜찮겠지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어요.

아버지의 하나뿐인 아들은 사실 아버지를 싫어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들어와 식구 모두를 불러내 소리 지르고 화내면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으시는 아버지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집을 나갈까 몇번이고 고민을 하다가도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돌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특히 중고등학생 때는 아버지랑 같이 있다는 자체가 저에겐 부담이었고 불편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일부러 친구들이랑 약속을 만들어서 밖에 나가기 일쑤였고, 공부를 핑계로 학교 앞 독서실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오곤 했어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있다 보면, 군대에 가게 되면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이 좀 달라질까라는 기대도 했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집에 단 며칠이라도 있게 되면 또다시 제가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봐야만 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가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아버지가 부쩍 늙으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말씀도 많이 안 하시고 술을 드시는 날도 많이 줄어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집안을 뒤집어 놓는 경우도 없어졌어요. 정말 오랜 시간을 제가 바라고 또 바라던 일이 저도 모르게 어느덧 이루어졌는데, 그 안도감과 동시에 힘없이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또한 자주 보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그렇게 조용히 늙어가셨어요.

‘자식 낳아 봐야 부모 마음 안다’고 하잖아요. 요즘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고 있어요. 아버지께서 저희 어렸을 적에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는 엄마만 부모고, 아빠는 부모가 아니냐고. 용돈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모든 일을 엄마에게만 상의하고 부탁하면서 아버지에게는 말 한번 거는 일이 없던 제게 아버지는 늘 ‘너는 엄마 편’이라며 서운해하셨잖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정말 이해를 못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아직 다섯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지만, 가끔 아들 녀석이 제게 짜증을 부리거나 엄마하고만 놀려고 하면 그런 사소한 것에도 제 마음이 서운하고 아쉬울 때가 많아요. 저는 나름대로 잘해주려고 하는 건데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요.

아버지도 아마 그랬을 것 같아요. 마음은 정말 끝이 없는데, 그게 표현이 잘 안돼서 저에게 전달하지 못한 말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 마음을 몰라주는 아들이, 아버지는 오히려 더 원망스러우셨던 건 아닐까, 요즘 많이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싫어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에게 술 한잔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의 술잔, 이제는 제가 채워드릴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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