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의 영리 자회사 허용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추진하면서 의료법을 개정하는 대신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 제정’만으로 절차를 끝낼 방침이다. 정부가 상위법을 무시한 채 행정지침 제정만으로 의료 영리화를 추진한다는 비판이 인다.
최영현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의료법인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의료법 개정 사항이 아니다. 상법의 자회사 설립 규정을 원용해 부대사업 목적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기준(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은 49조에서 의료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종류를 병원 운영과 직접 관련한 내용으로 한정하고 있다. 또 50조에서 의료법인은 민법상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돼 있고, 재단법인은 비영리 목적으로만 설립할 수 있어 의료기관의 영리행위는 금지돼 있는 셈이다. 의료법 시행령(20조)도 “의료법인과 (관련) 비영리법인은 의료업(의료법인이 하는 부대사업 포함)을 할 때 공중위생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아 놓았다.
따라서 상위법인 의료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영리 자회사를 행정부 지침에 해당하는 가이드라인 제정만으로 도입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의료 영리화를 가이드라인 설정만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은 의료 영리화를 금지하는 의료법의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현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정책위원(변호사)도 “의료 영리화를 허용하려면 현행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부가 입법권자인 국회를 무시하고 자체 가이드라인만으로 일을 추진하는 데는 정치권의 무능과 방관도 한몫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는 “여당은 껄끄러운 정책 수정을 관료들한테 떠넘기고 야당도 수적 열세를 탓하면서 적극적으로 저지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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