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누나가 엄마 젊었을 때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2013년이 시작하는 날 독일에서 엄마에게 편지를 보냈지. 엄마가 뜯어보지도 읽어보지도 못한 그 편지를 올 한 해 끝자락에서 다시 쓰고 있어.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꼭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몹시 심한 사춘기를 보내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지 못했어. 20~30대 중요한 결정은 나 스스로 다 했지. 이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너무 후회가 돼. 학교 문턱을 제대로 넘어보지도 못한 엄마가 내 말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말’을 건네지 못한 게 한탄스러워.
혼자 독일에서 돌이켜보니 나는 시골 어른들이 칭찬하는 효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건 집안일을 돕는다고, 공부를 잘한다고, 착하다고 해서 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거지.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무슨 마음으로 대하는지, 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었는지, 엄마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 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잘못한 것을 독일에서 비로소 깨달았어.
한국에 돌아와서 고향에 가보니 독일에서 보낸 편지는 다른 우편물에 섞여서 뜯지도 않은 상태였어. 알았든 몰랐든, 이제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지난봄 엄마 생일 때 그 편지를 몰래 가져왔는데 그만 엄마의 손녀가 보게 되어 읽어주었어.
아들은 엄마에게 더이상 전화를 할 수가 없어. 벨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별다른 일이 없으면 엄마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지. 우리가 안부를 전해도 얘기가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빨리 끊으라고 야단이었어. 엄마는 일흔이 넘어서야 먼저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 엄마가 가진 책상달력에 형이 크게 써놓은 전화번호가 몇 개 적혀 있지. 그 달력은 아마 10년도 더 된 것일 텐데, 거기에는 형네, 누나들 집 번호가 묵은 검은색 사인펜으로 쓰여 있어.
나는 02-2226-○○○○ 번호를 바꾸지 않을 거야. 이태 전 아내가 집 전화번호를 싸게 하는 통신사로 바꾸자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 통신사 번호는 인터넷 번호였어. 엄마가 그 긴 숫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싶어. 엄마가 익숙하고 언제나 걸 수 있는 전화번호는 지금 이거니까. 자식들 휴대전화 번호를 모르는 엄마가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번호잖아.
엄마가 집으로 전화를 하면 온 아파트에 다 들리도록 큰 소리를 질러. 아무리 삭막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와 나누는 대화 소리는 크게 나도 괜찮을 거야. 엄마를 이해하는 거,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건 불가능한 거 같아. 내 사랑만 알고 엄마의 사랑은 몰랐어, 아마 지금도 그럴 거야. 그래도 “언제나 사랑해, 엄마.”
늦게 철든 엄마의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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