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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두드러기 난 우리 아빠 누가 좀 제발 말려주세요

등록 2013-11-22 19:42수정 2013-11-22 21:02

[토요판] 가족 / 가장의 뒤늦은 출근
▶ ▶ 가장은 평생 ‘처자식’이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삽니다. 설렁설렁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갓 태어난 자녀를 안게되면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회사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빠들이라지요. 우리 아빠도 그렇습니다. 일의 형태만 바뀌었다 뿐이지 30여년을 부양의 의무로 고생해온 그의 삶은 그대로입니다. 환갑을 넘겨 ‘막노동’판에 뛰어든 아빠의 얘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아빠를 그 험한 곳으로 몰아낸 건 우리들이었다.

“평생 아빠가 제시간에 출퇴근하는 걸 본 적이 없어. 돈 못 벌어도 좋으니 다른 아빠들처럼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왔으면 좋겠어.”

삼남매는 입을 모아 아빠의 등을 떠밀었다. 환갑을 넘긴데다 자격증도 없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경비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우린 ‘아빠가 노는 게 부끄럽지 경비아저씨인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그럴싸한 핑계까지 덧붙였다.

사실 아빠가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용돈을 준 적은 없었지만 자식 셋의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든 마련했다. 수년간 작은 회사의 관리직으로, 얼마 동안은 공인중개사로도 일했다. 지방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는 돈도 꽤 벌었다. 하지만 내 나이 다섯살에 공무원을 그만둔 뒤로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아빠를 보기 힘들었다. 나는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질문에 늘 “집에 계시지요”라고 말끝을 흐리곤 했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아빠는
옛날에 공무원을 그만둔 뒤
거의 평생을 직장 없이 살았다
나이 60에 자식들에게 등 떠밀려
경비 거쳐 공구상가 취직했다 

욕, 무시, 먼지, 이상한 규칙
일터 스트레스에 몸이 반응했다
온몸에 울긋불긋 바이러스가 퍼져
집에선 옷을 홀딱 벗고 계신다
엄마는 출근하지 말라고 성화다

누군가가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던가. 아빠는 예순하나가 되던 해 망하기 좋은 ‘자영업자’에서 우리의 로망인 ‘월급쟁이’가 됐다.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하던 아빠는 엉뚱하게도 자식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려고 공사현장 경비 노릇을 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매일 새벽에 신문 10여개를 읽던 그는 ‘형씨, 어이~, 옘병, 씨발’이 난무하는 공사장에서 제2의 인생을 맞았다.

육체의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동시에 몰려왔던 것 같다. 작년 이맘때의 아빠는 늘 상관의 부당한 대우와 10분에 불과한 식사시간에 힘들어했다. 못질도 못하는 아빠를 고용한 업체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절전 테이프로 이것도 못 감는단 말이오? 현장관리직이었다더니 순 거짓말이구먼.” “알려주면 되지 않소.” “아, 공사판에서 누가 경비한테 일일이 가르쳐가며 일한답니까. 원 답답해서.”

웃지 못할 나날들이 계속됐고 일이 끝나면 아빠는 집에서 가요무대를 틀어놓고 맥주를 한 페트병씩 마시다가 잠들었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시끄럽다는 엄마의 잔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프게 불러댔다.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아~”

얼마 뒤 공사가 끝났고 애증이 교차하던 아빠의 첫 직장은 사라졌다. 당연히 퇴직금도 수고비도 없었다. 곧바로 두번째 직장을 알아보던 그가 찾은 곳은 한 공구상가. 월급은 이전 직장보다 더 많은 150만원이었다.

“거기는 여기에 비하면 장난이었어. 여기는 말도 못하게 힘들어.”

공구상가의 하루는 아침 6시 반에 시작해 저녁 7시에 끝난다. 갖은 욕과 무시보다 아빠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엄청난 먼지와 담배 연기였다. 기관지가 약한 탓에 집에 돌아와 한참을 숨 쉬기 힘들어했고, 눈은 점점 더 침침해졌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빠에게 공구상가는 점심시간에도 신문 읽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휴대폰 게임은 되지만 책이나 신문은 안 된다’는 알 수 없는 규칙 때문이었다.

일터가 주는 스트레스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울긋불긋 돋아난 것이다. 목부터 가슴, 팔다리가 흉측할 정도로 오돌토돌해졌다. 낮에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밤이 되면 가려워 잠들지 못했다. 눈에서는 진물이 나왔다. 왼쪽 눈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돈이 아깝다며 오래도록 고치지 못한 축농증과 깨진 이는 뒷전이 됐다. 갑작스러운 증상에 우린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며칠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며 애써 좋게 생각하던 아빠가 덜컥 겁을 먹은 건 철석같이 믿던 동네 피부과 의사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버님, 저도 원인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계셨어요. 아무래도 큰 병원 가셔야겠어요.” 10년 넘게 찾던 의사가 두손 두발을 다 들자 온 가족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이번에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진단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사이에도 아빠는 동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열심히 발랐다. 집에 오면 혼자 에덴동산에 사는 것처럼 옷을 홀딱 벗었다. 그만큼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 없었던 게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신에 발라대는 네댓개의 독한 피부약 때문에 눈이 더 빨리 어두워지는 것 같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여보, 등에 약 좀 발라주면 안 될까?” “○○아, 피곤하냐. 눈에 약을 못 넣겠다. 안 보여서.” “아빠, 맞은편 아파트에서 흉하다고 신고 들어오겠네. 옷을 다 벗고 있으면 어떻게 해.”

핀잔을 주다가도 앙상한 팔다리도 모자라 온몸에 지독한 바이러스가 퍼진 육십 노인을 보니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 약한 동생은 아빠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며 ‘제발 그만 다니시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런데도 아빠는 굳이 내년 말까지 일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평생 끝내지 못할 숙제로 느껴졌던 ‘소설 쓰기’가 여기서는 가능할 것만 같다는 게 이유다.

“여기는 정말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다른 사람들은 우습게 생각하지만 철저한 위계가 있고 갈등이 있거든.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살아 숨 쉬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버틸 때까지 버텨볼란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노동의 신성성’ 따위를 지껄이며 아빠를 험지로 내몬 자식들 보란 듯이 아빠는 출근을 고집하고 있었다. ‘돈 백오십 안 번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저 죽는소리 듣다가 나도 병 걸리겠다’는 엄마 말도 뒷전이다.

당분간은 아빠를 지켜보려 한다. 이제 일상이 된 노동 후 약 바르기 의식을 성스럽게 마친 아빠가 조용히 티브이를 켠다. 또 가요무대다. 지독한 피부병 때문에 인생의 낙이었던 술 한잔 할 자유마저 완전히 빼앗긴 아빠가 오늘은 마시지 않아도 취한 것처럼 한껏 감정을 잡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오늘은 엄마도 아무 말이 없다.

영원한 아빠의 큰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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