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에겐 언제나 새벽이슬같이 영롱한 보석인 손녀딸.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내 첫사랑 인이야! 어느 날 넌 내 첫사랑으로 찾아왔다. 잉태되면서부터 유산기가 있어 할미 ‘눈물 기도’의 끈을 잡고 겨우 태어났지. 조그맣고 빨간 너를 받아 안고 콩닥거리던 네 작은 심장 소리가 들렸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친구보다 책을 좋아하고 늘 혼자여서 집안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일하는 어미 대신 할미의 손에서 자란 너는 또래보다 웃자라서 어른들과 대화가 더 잘 통하고 어른의 정서에 더 익숙했기 때문일까?
할머니는 돌이 지난 아기를 데리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네 고모를 도와주러 가야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단다. 미국에서 고모는 아기를 놀이방에 맡기고 학교로 달려가고 다시 데리러 뛰어갔지. 고모는 날마다 전쟁을 치르듯 살고 있었다. 나는 너무 급해서 앞뒤를 가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단다. 도움이 더 절실한 자식을 돕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들었어. 결국, 너희 부모가 직장 근처로 이사하고 너를 전학시키는 것으로 이 일은 정리가 됐다. 네가 전학 뒤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애간장이 타서 울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친구 관계가 힘들고 늘 혼자 책 속에 빠져 있는 너를 두고 네 어미는 여러 방법을 생각하다, 너를 중국의 국제학교로 유학 보냈다. 어리고 여린 너를 떼어 놓고 노심초사하던 네 부모의 마음을 네가 알기나 했을까?
다행스럽게도 너는 잘 지낸다고 하더구나. 새로 들어온 후배들을 보살피며 의젓한 언니 노릇을 한다고 들었다. 먼저 겪은 외로움을 통해 영혼이 성숙해진 너의 따듯한 사랑의 마음 때문일 게야.
네 대학 합격 소식을 듣던 날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자랑하고 싶었다. 내 가슴에 매달려 눈을 맞추며 새록새록 웃던 아기, 할머니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을 몰래 꼬집으며 심술부리던 아기가 이젠 다 커서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구나.
너를 세상에 보내신 분께서 의도하신 대로 꼭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너를 큰 재목으로 다듬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거센 풍랑은 유능한 선장을 만들고, 강한 바람을 타고 가는 배는 더 빨리 간단다. 너는 이미 고난의 터널을 거쳤기에 성숙하고 강한 사람이다.
지금은 너무 똑똑한 학생들 틈에서 쫄아 있다지? 절대로 쫄지 마라.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아무리 똑똑해도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 별것 아니다. 너는 여전히 내 가슴에 숨겨 놓은 별이고 꿈이고 새벽이슬같이 영롱한 보석이다. 영원히 샘솟는 내 감사의 눈물이다. 인이 너로 인해 시들어 가던 내 영혼의 뜨거운 떨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할미의 가슴을 짓누르던 죄책감과 자책의 쓴 뿌리들을 말끔히 걷어내줘 고맙다, 나의 첫사랑 인이야.
너를 생각하면 설레는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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