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오랜만에 아빠를 봤지만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등록 2013-10-11 19:52수정 2013-10-13 12:11

mayseoul@naver.com
mayseoul@naver.com
[토요판/가족] 이혼한 아빠와 나
▶ 통계청의 ‘2012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1000명 중 2.3명이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혼한 부부 중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가 전체의 52.8%라고 하네요. 자녀에겐 이혼한 부모와의 관계 설정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적 편견에서 오는 상처도 큽니다. 그 사이에서 고민해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나이는 몇 살?” “사는 곳은 어디?” “부모님은 같이 사시고?”

미혼 솔로 30대 여성인 나는 종종 첫 만남에서 이런 호구조사를 받는다. 모나지 않게 보이려 “네네” 대답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대화가 깊어지는 자리, 누군가 아버지에 대해 물어오면 말문이 막힌다. 뜨끔. 뭐라고 설명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비 없이 자란 귀하신 몸이라고 할 수도 없고! 과묵한 사람인지, 오래 인연을 이어갈지 고심해본 뒤 “따로 산다”고 답한다. 실제 거주지가 다르니 첫 번째 팩트를 말하면 십중팔구 궁금한 눈빛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오래 뜸들인 다음 “어머니와 둘이 산다”거나 “만나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사실 어떤 친구에게는 분식집서 떡볶이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살다보니 이런 말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굳이 내 부모의 사생활을 설명하기 싫을뿐더러, 남들에게 나에 대한 섣부른 판단의 프레임을 주는 게 꺼려졌다.

누군가 아빠에 대해 물으면
뜨끔, 말문이 막힌다
“따로 산다”고 말하면
궁금한 눈빛이 쏟아진다

엄마는 아빠와 헤어졌고
나와 아빠는 그냥 채무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장례식에 연락이라도 올까?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가족관계로 인한 편견은 비일비재하다. ‘둘째 딸’은 뭘 해도 야무지고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고,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면 “어쩐지 곱게 자란 것 같더라”며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래,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라. 사실 처음엔 왜 나를 나 자체로 알려고 하지 않을까 분개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오해하도록 내버려 둔다. 모 검찰총장처럼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따라다닐 수도 없으니. 아빠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의 걱정도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너무 흔하디흔한 편견 말이다.

많은 걸 체념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난 아직도, 아버지를 말하는 게 불편하다. 차라리 “돌아가셨다”고 하면 더 묻지 않을 텐데 싶었다.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지를 사망한 것으로 밝힌 낸시 랭 논란을 보면서 조금은 이해가 됐다. 함부로 타인을 진단할 순 없겠지만, 그가 마음속에 그리는 아버지는 죽은 것이다. 물론 낸시 랭에겐 아버지에 대한 감정-그것이 미움이든 사랑이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번거로운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난 이렇게 살았다고, 남다른 환경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나 또한 한겨레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지면을 통해, 상처 한 번 안 받고 자랐을 것 같다는 낸시 랭에 대한 편견을 깨기도 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건 누구나 시련을 겪는다. 다만 그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 그건 온전히 내 몫이다.

“동의 없이 태어나 불시착하지, 그게 우리야.”

박성원 소설집 <하루>의 구절을 읊조리며 작은 위안을 얻었다. 사람 사는 것 다 비슷비슷하구나 싶었다. 요즘은 내 얘기를 털어놓으면 심심찮게 상대방도 자기 부모님의 황혼 로맨스를 꺼낸다. 나보다 한 수 위다.

사실 내겐 거창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아빠와의 결혼 생활을 끝냈고, 나는 그 선택을 존중했다. 우린 둘이 살아도 충분히 행복했다. 물론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미움이 없진 않았다. 처음엔 그냥 맹목적으로 엄마 편이었다. 소위 ‘있는 집 자식’이었던 아빠는, 내가 보기에는 자기 멋대로 살았다. 내게 아빠는 날 태어나게 했으니 생활비를 대주고 재산을 상속해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딸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무책임한 아빠로 규정지었다. 돌이켜보니 어불성설이었다. 나 또한 아빠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자식 된 도리를 한 적이 없다.

아빠의 우선순위는 자식이 아닌 자신이었을 뿐인데, 마땅히 그를 채근할 이유는 없었다. 엄마에게 내가 1순위인 걸 항의하지 않듯이. 아빠를 찾아갔을 때 마지막으로 건넨 말도 “학비 달라”였으니…. 나와 그는 그냥 채무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악착같이까진 아니었지만 열심히 인생 고민하며 살았다. 좌충우돌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아빠를 잊어버린 채 지냈다.

여름이 끝날 무렵인 얼마 전, 어둑어둑한 동네를 산책할 때였다. 약 20미터 앞, 낯익으면서도 낯선 어떤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인 채 사내 옆을 스쳐 지나왔다. 조금 뒤 돌아보니 그는 태연하게 가던 길을 걸어갔다. 나를 못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아빠였다. 따라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래 만나봤자 무슨 얘기를 하지? 내 근황 따위는 알리기 싫었다.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고 어느덧 그의 뒷모습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난 뚜벅뚜벅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아빠 목격 사건은 끝이 났다. 기분이 묘하게 유쾌해졌다. ‘철지난 청구서’는 없애 버리고, 완전히 홀로 선 느낌이었다.

아빠라고 불렀던 남자, 아직 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한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상식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아빠를 모른 척한 건 그에 대한 미움을 지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 이상 그를 닦달하며 ‘나쁜 남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게 나도 편하고 아빠도 편한 길이니까.

가끔 아버지의 장례식을 상상해본다. 돌아가시면 내게 연락이 올까? 난 그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야 될까. 그게 좀 아쉽다. 그를 평가하기엔 난 그의 인생사를 잘 모른다.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처럼, 부녀가 눈물 펑펑 흘리며 화해해야 하는 것일까. 가족 드라마의 훈훈한 해피엔딩이 내겐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혹시 길 가다 아빠를 다시 만나면 이번엔 쿨~하게 말해주리라. 예쁘지는 않지만 어쨌든 태어나게 해줘서,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가게 해줘서 감사!

아비 없이 잘 자란 30대 여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1.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2.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3.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4.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5.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