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엄마,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혼자 떠나겠다는 말 많이 속상하셨죠?

남들 다 하는 결혼 하지 않는 것도 서운한데 여행마저 혼자 가겠다는 말까지 들으니 화가 나셨을 심정 이해 가요. 모자라지도 않는 내 딸은 왜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살려고만 하는 걸까? 남들처럼 모난 곳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섞여 가길 바라는 거 외에는 더한 바람도 없는데 말이에요. 9일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큰소리치는 딸에게 엄마로서 야속하고 서운하게 느꼈을 심정 충분히 짐작돼요.

그런데 한번이라도 ‘얘가 왜 혼자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지금부터는 제 얘기를 좀 들려 드릴게요.

처음 혼자 여행을 시작한 건 대학교 때였어요. 첫 연애에 쓰라린 상처를 안고 서산 삼화목장에 갔지요.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푸른 목장에 주저앉아 반나절을 엉엉 울다가 돌아왔어요. 사법시험을 접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는 봄을 머금은 초록 잎을 보러 영주 부석사로 갔고, 취직에 번번이 실패하는 저 자신을 위로할 때에는 내장산 단풍을 보러 훌쩍 떠났었죠. 혼자 가는 여행이 볼품없이 청승맞아 보인다고요? 그렇게 혼자 발걸음을 옮기고 나면 제가 처한 상황을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종국에는 내 안에 있는 나의 이야기에 좀더 집중하여 원하는 바를 향해 한 걸음씩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길잡이가 되었어요.

그런 생각을 왜 혼자서 낯선 나라 땅에서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7년차 직장생활, 인생 중반이 되어버린 30대, 홀로 서는 방법을 익혀 나가는 초짜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전진을 위한 잠깐의 쉼표랍니다.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걱정부터 앞서는 부모의 마음, 저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허락보다는 쓴소리부터 내뱉게 되는 심정도 이해해요. 그렇지만 홀로 서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는 딸에게 힘찬 걸음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바라봐 주시면 어떨까요?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 작은 휴식과 즐거움을 선물하고픈, 스스로를 위한 여행에 따사로운 눈길을 보내 주시면 어떨까요?

부모님이 바라고 세상의 평범한 기준이 원하는 방향과 제가 그리는 삶의 모델은 어쩜 세월과 세대 차이를 넘어 이상향에 대한 차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그리는 앞으로의 나는 아마도 부모님께서 바라시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 갈지라도 저는 세상을 향한 반항아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사랑하고 빛나게 만들고픈 조금은 유별난 스스로를 향한 사랑 방정식을 실천하고 있는 거랍니다.

엄마 아빠 딸은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홀로 서기 진행형이에요. 그 발걸음에 한발 더 기운을 북돋아 주시는 응원 부탁드려요.

어제 여행 떠난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