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당신 하나 꿈 좇자고 가족 모두가 고통 겪어야 해?

등록 2013-07-26 19:42수정 2013-07-28 17:36

[토요판/가족] 주말부부 남편의 ‘서울 드림’
▶ 남편·아내와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이 115만 가구라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10%나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직장 문제(72.3%)군요.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52.9%)가 혼자 사는 아내(41.1%)보다 가족생활 만족도가 높다고 합니다. 주말부부 남편분들, 아내에게 더 잘하셔야겠어요.

일요일 저녁, <문화방송>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이 끝났다. 10시쯤 됐을까. 박선욱(가명)씨는 슬쩍 아내의 눈치를 본다. 자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다음날 새벽 버스로 서울에 가야 하는 선욱씨는 먼저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말이야, 내일 서울 안 가면 안 돼?” “으응….” 은근슬쩍 대답을 뭉개고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내는 오늘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기세다. 선욱씨가 광주로 돌아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결혼 3년차 주말부부의 일요일 저녁은 이렇게 또 아내의 눈물바다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주말부부 생활에 반대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아내도, 선욱씨도 모두 광주 토박이다. 부모님도 광주 사람이고, 학교도 모두 광주에서 마쳤다. 선욱씨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내의 직장도 광주였다. 아내는 삶과 가족의 기반인 광주를 두고 서울살이를 고집하는 선욱씨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광주 오면 부모님들도 있으니 다 같이 지내면 좋겠어. 서울 가면 내가 일을 그만둬야 하는데 홑벌이 하면 힘들잖아. 여기는 가족도 있고, 물가도 싸고, 서울보다 여유로운데 뭐하러 거기서 아등바등 살아.” 선욱씨가 듣지 않자 “광주에서 안 살면 아빠가 결혼 허락 안 해준대”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협박도 선욱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모든 게 ‘서울 드림’ 때문이었다. 선욱씨의 삶의 모토는 ‘성공’이다. 앞만 보며 직진하는 삶의 태도는 살면서 배웠다. ‘날라리’로 살다 정신 차리고 고3 때 공부에 몰입했지만,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 허투루 보낸 옛 시간들이 후회로 다가왔다. 미래를 위해선 지금 현재 샛길로 새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4년을 열심히 공부하며 보냈지만, 자신과 달리 돈 많은 친구들이 쉽게 유학과 대학원을 가자 다시 깨달았다.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더 치열하게 사는 것이라고. 그래서 2010년 학사장교를 마친 뒤 서울 강남구 삼성역 근처 고시원에 둥지를 텄다. 창문 있는 방보다 5만원 싼 창문 없는 방에 살면서 어학원을 다니며 토익을 공부했다. 원하던 회사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좌절하는 대신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청년창업’을 선택했다. 서울에는 실력있고 재능있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아직 한창인 30대인데 그런 서울을, 꿈을 버리고 가족만 있는 광주에서 무기력하게 살고 싶진 않았다.

가족 있는 고향 두고
서울살이를 고집했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아내는 종종 울면서 말한다
아이도 낳아야 하는데
떨어져서 아등바등 살 거냐고
남편의 마음도 흔들리는데…

아내는 성공과 성취 지향적인 선욱씨와 달랐다. 가족, 행복, 안정, 소속감, 사랑은 아내에게 속한 단어들이었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가족’에 대한 기대를 양보했다. 이별을 고민했으나 선욱씨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아내는 홀로 광주에서 집을 구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무남독녀라 아들같이 한 가족이 될 사위를 원했던 부모도 설득했다. ‘억지로 광주에 눌러앉혔다 평생 후회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괜히 남편 앞날을 막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무실 보증금을 보태며 사업도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외로움에 휴대전화를 붙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 아내를 선욱씨는 보지 못했다. 씻지도 못하고 출근하고, 커피 한잔 마실 시간 없이 몰입하던 그는 일에 미쳐 있었다. 콩깍지가 아내보다 일에 씐 시절이었다.

간헐적인 교전은 있었지만 전면전은 없었던 휴전은 올해 초 끝났다. 1년간 수입이 없던 회사가 지난해부터 매출을 냈지만 다시 어려워지면서 아내는 임신 카드를 꺼냈다. “아이를 낳으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당신 혼자 벌어 세 식구가 서울에서 살기 힘들지. 서울같이 경쟁적인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도 않고. 여기선 부모님 도움도 받을 수 있잖아. 광주에서 같이 편하게 살자. 응?” 부드럽게 말했지만 아내가 칼을 뽑아들었음을 선욱씨는 잘 알았다.

선욱씨도 흔들리고 있었다. 앞만 보며 살다가 회사일로 한번 고꾸라지니까 가족이 보였다. ‘이렇게 될 것을 왜 일주일에 한번 보는 아내를 떼놓으면서까지 일했을까.’ 잘 못 챙겨주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하면서 흘려보낸 시간이 아픔으로 다가왔다. 한껏 여유로워진 주말에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달콤했다. 거기에 아이 얘기까지 나오니 선택의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압박도 더해졌다.

사실 선욱씨에게도 주말부부는 오랜 마음의 짐이었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광주로 가는 케이티엑스(KTX)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때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로 시작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광주에 도착해 간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들이 가득했다. 아내는 선욱씨가 없는 평일엔 친정에서 살았다. 널브러진 옷가지, 썩은 음식물쓰레기를 보면 ‘이 신혼집을 이렇게 만든 건 나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혼자 살면 외롭다고 바람피우면 죽는다”는 장인의 ‘농담’도 조금 부담이 됐다. 교통비에 두 집 관리비까지 기본적으로 쓰는 돈도 남들의 2배다. 건강이 나빠진 부모님도 신경쓰인다. ‘나 하나 꿈 좇자고 아내, 부모님, 장인·장모 5명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흔들리는 마음은 월요일이면 다시 굳건해진다.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선욱씨의 눈빛은 ‘이번주는 뭘 할까’ 생각하며 달라진다. 아내와 함께 사는 지름길은 서울에서의 성공이라 믿는다. 돈을 많이 벌면 여기서 집도 구할 수 있고, 아내가 서울에서 일하지 않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새누리당은 ‘윤상현당’?…대표보다 힘센 ‘실세’
[화보] 서울광장 가득 메운 촛불…“국정원 대선 개입 책임자 처벌하라”
껄끄러운 축구 한-일전…‘홍명보호’ 오늘 밤 첫골 터질까
중국 시골 마을에 짝퉁 천안문…‘진짜 같은 가짜’ 보러 관광객 몰려
[화보] ‘정전협정 60주년’ 맞은 평양에선 지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1.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2.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3.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4.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5.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