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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빠를 원망도 했었어

등록 2013-07-12 19:30

석가탄신일에 모두 함께.(셋째는 사진 찍는 중ㅋㅋ)
석가탄신일에 모두 함께.(셋째는 사진 찍는 중ㅋㅋ)
[토요판/가족] 가족관계 증명서
안녕 우리 가족 여러분!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아부지는 세종시에, 오빠는 판교에, 셋째는 서울에, 엄마는 직장에, 막내는 학교에 있겠지? 휴학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잉여로운 생활을 보내는 나만 이렇게 집에 있네. 이제 나도 곧 복학해서 집을 떠나고 나면 우리 엄마 빈둥지증후군에 걸리는 건 아닌가 벌써 사서 걱정을 하는 중이야.

벌써 외가로 이사 온 지도 햇수로 9년째야.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던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벽에 부딪히면서 살던 집을 정리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잖아. 30년이나 된 집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살기엔 비좁고 동선도 불편하고 전에 살던 아파트에 비해 여러 가지 고충이 많았어.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라 해마다 겨울이면 난방비로 터무니없이 큰돈을 지출해야 했고, 복잡하기만 하고 실속 없는 공간 탓에 문틀 위에 빨래를 넌 옷걸이를 걸어둬야 했고, 가장 넓은 1층은 습기와 통풍의 문제로 거의 쓸 수 없었지. 너무 큰 창문과 집의 노화 상태는 방충망이 온전한 기능을 상실하게 해서 여름이면 온갖 벌레들이 우리와 함께해 왔는데…. 자꾸 지네가 나와서 우리집에서는 닭요리도 잘 안 먹게 되었잖아. 이런 것들 말고도 에피소드가 차고 넘쳐서 우리가 항상 ‘완산동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책 한 권 내야 한다면서 자주 웃었는데. 이게 우리 가족의 힘인 것 같아. 불평하고 불만스러워하다가도 금세 서로 배를 움켜잡고 낄낄대잖아.

학벌 지상주의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일컬어지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여기서 보낸 오빠와 나와 동생들 모두 비뚤어질 바탕이 충분히 제공되었는데도 애써 바른길을 걸어주어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 나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개념 없는 담임에게 보충수업비·수업료·급식비 셋 다 못 낸 삼관왕이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아빠를 많이 원망했던 것 같아. 다른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부분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창피하기도 하고 모욕스럽기도 했어. 하지만 대학에 가고 용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알바를 하면서 우리 가족이라는 짐을 어깨에 짊어지신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아.

휴학하는 동안 집안 살림을 일부 도맡아 하면서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지만 조금만 안 하면 매우 티가 난다는 걸 알게 됐어. 어머니들의 고충이랄까? 부모님 봉양에 남편 내조에 집안일에 자식새끼 넷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는 우리 엄마야말로 이 시대의 슈퍼 울트라 우먼이 아닌가 생각해.

우리 가족들! 지금처럼 행복하고 각자 떨어져 있지만 늘 서로 힘이 되어 줍시다. 사랑합니다.

큰딸 기라 올림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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