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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잘 살자고 넘어왔는데 고부갈등이 웬말이냐

등록 2013-06-28 19:38수정 2013-06-30 10:44

[토요판/가족] 어느 탈북자의 이혼
▶ A4 용지 6장 분량의 사연을 지난달에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면’ 기사들이 큰 버팀목이 됐다는 한 탈북자의 글이었습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가족들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제는 미움은 내려놓고 행복을 기원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분의 표정은 조금 편안해 보였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중국에서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가 내내 맘에 걸렸다
네 식구는 도란도란 함께 살려
고향 북을 떠나 남으로 왔다

낯선 환경에 성격 판이한
고부간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아내 배려 못한 무심한 나와의
부부갈등도 극으로 치달았다
가족의 결합은 상처만 낳았다

북을 떠나 남으로 온 건 순전히 가족 때문이었다.

이재영(가명·35)씨의 고향은 북쪽 끝 함경북도 무산군이다.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곳이다. 10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형과 어머니까지 세 가족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며 두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런 이씨 가족에게 1999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24살 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다른 불행도 빠르게 찾아왔다. 어머니가 그간 장사로 모은 돈을 한순간에 사기당했다. 북에서는 장사 한밑천이 될 수 있던 수백달러의 돈이었다. 어머니는 “사기꾼 잡으러 1주일만 다녀올게” 하고는 중국으로 떠났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씨는 그해 아내를 만났다.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에 마음이 갔다. 3년 연애 끝에 2002년 결혼식을 올렸다. 어머니는 여전히 중국에 있어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하나뿐인 며느리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에겐 미안했지만, 빨리 안정된 가정을 갖고 싶었던 자신의 욕심이 더 앞섰다.

가족과의 재회는 2007년에나 가능했다. 이씨 가족은 어머니를 만나러 중국을 찾았다. 타국에서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하며 집으로 계속 돈을 보냈다. 그 돈으로 그는 대학에 다녔고, 가정을 꾸렸다. 대신 어머니는 영영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됐다. 그간 선거에 몇 차례 빠진 탓에 당국에서 외국으로 밀입국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이젠 집에 대한 걱정을 그만하고 어머니 인생을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많이 늙고 초췌해진 어머니 얼굴을 보니 ‘나만 편히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우리가 이러고 사나…. 어린 아들까지 네 식구는 함께 살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 아내도 자신의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결정을 그 하나 보고 따라줬다.

한국행이, 가족의 결합이 해피엔딩을 보장해주진 못했다. 처음으로 함께 살게 된 어머니와 아내는 서로를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물도 씻어 먹는’ 깐깐한 성격이었다. 그 성격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더 강해졌다. 어머니는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편하게 자란 아내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안 찼다. 꼬치꼬치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가시가 되어 아내의 마음을 헤집었다. 어머니가 아내에게 모질게 구는 데는 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 탓도 있었다. 어머니에겐 아들이 인생의 전부였고, 그만큼 기대도 높았다. 그런 아들의 아내로서 며느리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정착하며 곪아갔던 고부갈등은 결국 폭발했다. 아내는 “어머님과 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말했다. 2008년 겨울 결국 어머니는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떠났다.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에게 미안했지만, 그에게는 그가 또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 겪은 부모 이혼의 아픔을 어린 아들에게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거리를 두고 난 뒤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면 두 사람의 관계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어머니가 사라져도 아내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마음속에 쌓인 갈등을 풀기 위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귀가 시간은 자연히 늦어졌다. 외박도 잦아졌다. 수입보다 많은 돈을 과소비에 썼고, 옷장에는 쓰지도 않는 명품 가방이 차곡차곡 쌓였다. 넉넉하진 못하더라도 부족할 것 없던 살림에도 빚이 늘었다. 아내는 돈을 구한다며 아르바이트를 나섰다.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도 찾아왔다. 아내는 여전히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기겁을 했다. 이씨는 아내가 안타깝긴 했지만, 한편으론 어머니가 젊어서 겪은 고생에 비하면 큰 고통은 아니라고 느꼈다. 고부갈등이 없어진 자리엔 부부갈등이 싹텄다. 부부싸움이 잦아지자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대화는 줄어들었고, 함께 있는 시간도 점점 사라졌다.

아내의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중국에서 숨어 산 생활, 갑작스런 가족과 친구들과의 생이별, 남한에서의 새 생활에의 적응에다 고부갈등까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아내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다. 무엇보다 가장 아내를 힘들게 한 것은 고부갈등, 부부갈등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이었다고 재영씨는 되돌아본다. 물론 아내 앞에서는 어머니의 위신을 세워주고, 어머니 앞에서는 할 얘기가 있으면 자신에게 해달라는 중재 노력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힘든 삶에 비하면 아내의 삶은 평온했고, 더 안타까워 보이는 어머니 편에 선 적이 많았다. 게다가 대화에 서툴렀고, 가사노동도 아내에게 전부 떠맡겼다.

재영씨는 외박 등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그런 재영씨의 말을 맞받아치며 싸움을 계속하거나 무시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부 사이엔 담이 높게 쌓였다. 함께 있으면 상처만 주고 불행해졌다. 두 사람은 올해 초 이혼을 선택했다.

남한에 온 지 6년. 한국 드림은 이렇게 끝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북한에서? 중국에서 모두가 처음 만났을 때? 남한에 왔을 때? 재영씨는 죄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상처만 준 아내에게 죄인, 35년 평생을 고생시킨 어머니에게 죄인, 엄마 없는 설움을 안겨준 아들에게 죄인. 남한에 안 왔다면 행복했을까? 재영씨는 고개를 젓는다. 가장으로서 의무도 중요하지만 낳아준 부모에 대한 도리도 소중했다. 남한에 오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홀로 떠돌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내, 자식도 중요하지만 부모는 한번 떠나면 다시 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오늘도 헤어진 아내의 행복을 빈다. 이제는 미움을 내려놓고 각자의 새 인생을 잘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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