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있는 녀석에게 살짝 기대 순간 포착으로 둘째가 찍었답니다.
[토요판/가족] 가족관계 증명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꼭 너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단다. 지난해 추석 전부터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잖니? 그래서 엄마가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하러 다니다 보니 하루는 병이 나서 너한테 부탁을 한 적이 있잖아. 가장 큰 일은 할아버지 기저귀 갈아 드리는 일인데 네가 할 수 있을까 엄마도 걱정이 컸단다. 그런데 네가 엄마를 대신해 가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네가 갔다 와서 쓴 글을 우연히 읽고 정말 깜짝 놀랐단다.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드디어 할아버지 병실 앞에 섰는데 뒤돌아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꾹 참고 들어갔다고. 그때 네 심정이 어땠을지 엄마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또한 네가 꾹 참고 들어가 줘서 우선 놀랐단다. 엄마 말대로 기저귀 가는 일은 1분도 안 되어 끝났는데 기저귀 가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병원과 집을 버스를 갈아타며 기다리고 오고 가는 일이었다고. 처음에는 할아버지 기저귀 가는 일이 더 힘들 것 같아 엄마 말을 믿지 않았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버스 타는 일이 더 힘들었다고 말이야.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병간호를 한 나보다 당하는 입장이신 할아버지가 더 부끄러우실 텐데 꿋꿋이 참고 계신 할아버지가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이야.
네가 쓴 글을 읽으면서 그날 네가 참 많은 것을 느꼈고 경험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중1인 네가 엄마를 위해 기꺼이 일을 해준 것도 고마웠지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착하고 예뻐서 엄마는 한참을 울었단다. 사실 엄마는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며느리한테 그런 입장이 되신 할아버지 마음은 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거든. 그래서 그때 엄마는 너한테 무한한 사랑과 감동을 받았단다. 고작 14살인 네가 그 먼 곳까지 찾아가서 기저귀 갈고 병간호를 한 것이 쉽지는 않았겠구나 하고 말이야.
내년이면 중2가 되는구나. 앞으로도 네 앞에는 순간순간 망설여지고, 하기 싫은데 이 일을 해야 하나, 도망칠까, 누군가 대신 해줄 수는 없을까 하는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길 거야. 그때마다 할아버지 병실 앞에 서서 망설였던 순간을 기억하렴. 그때 돌아서서 네가 집으로 돌아왔으면 아마 네가 느꼈을 보람도 기쁨도 없었을 것이고, 어쩜 너는 지금까지도 그 일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때 가졌던 할아버지에 대한 고운 마음을 앞으로도 잃지 않았음 좋겠다. 아들아, 진짜 감동이었어. 사랑한다.
널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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