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토요판/가족] 엄마의 콤플렉스
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바보가 있었다. 하루는 잔칫집에서 떡을 얻어 들고 신난다고 달려가는데 팔을 휘저을 때마다 떡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마다 바보는 “내 떡 어디 갔지?”, “아하, 여기 있구나”, “또 없어졌네”, “요기 있구나!”를 무한반복하며 뛰어가더라는, 흘러간 복고풍 우스갯소리다.
아이를 키우며 이런 우스갯소리의 바보가 될 때가 있다. “저 애는 도대체 누굴 닮아 저러지?” 하다가 “역시 내 딸이야.” 다시 “어휴, 도대체 누굴 닮아 저래. 우리 집안엔 저런 사람이 없는데” 하다가 “나 어릴 때도 그랬어” 한다. 자식 앞에서 부모 대뇌의 절반 정도는 활동을 정지하거나 퇴행하는 게 아닐까. 이모나 삼촌 처지가 되면 더없이 현명하고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일들이건만, 자기 자식 일이라면 어쩔 줄 모르고 허둥지둥하니 일종의 ‘자식반응성 조건부 치매’가 모든 부모들의 지병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 딸이 나를 닮았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꼼꼼히 제 손으로 챙겨야 안심을 하고, 일의 순서가 흐트러지는 걸 못 참고, 화를 속에 담아 두는 대신 즉각적으로 따지고 든다. “딱 리틀 이진순이네….” 가까운 친구들은 칭찬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하지만, 그건 정말 모르시는 말씀. 타고난 성정이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부단한 노력 끝에 ‘용감하고 씩씩한 캔디’가 되었지만 우리 딸은 천성적으로 외향적이야…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쯧쯧, 너도 너에 대해 잘 모르는군” 한다. 글쎄, 그럴지도…. 자식이랑 내가 디엔에이(DNA)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있으니 닮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나면서부터 제일 많이 보고 접한 상대가 어미라는 사람이니 말투며 행동거지가 어떻게 닮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마 닮아 예쁘구나”, “아빠 닮아 반듯하네.” 이런 말들은 아들딸이 자신과 닮기를 은근히 소망하는 부모의 뇌관을 건드린다. “원 플러스 원 고객사은상품”처럼 부모와 자식을 패키지로 묶어주니 저렴하고 유용한 덕담이다. 이런 패키지 덕담의 백미는 “붕어빵이네요”인데, 그 말에 발끈하는 부모는 없는 걸 보면 부모는 ‘반응성 치매’ 환자임에 틀림없다. 지구상 60억 인구 가운데 똑같은 인물이 한 명도 없고, 한배에서 나온 개나 고양이도 제각각인데, 어떻게 아이와 내가 같을 수 있겠나.
나와 아이는 철저히 별개의 존재이고 내 프레임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별천지의 외계인이다.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고 속지 말자. 껍데기만 비슷할 뿐, 그 정신세계는 안드로메다에 있다. 다른 데서 외계인을 만나면 적당히 피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부모 자식이니 피하지 못하고 속을 끓이며 산다. “아이 덕분에 나랑 다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많이 이해하게 됐어.” 기질이 정반대인 아이의 사춘기를 겪어낸 친구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외계에서 온 자식 덕에 부모가 어른이 된다. <끝>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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