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가족 모두(세 아들과 부부)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아버지, 작년 경주 사건은 제가 잘못했어요.
하루가 다르게 겨울의 스산한 기운이 파고드는 요즘이네요. 제주는 다시 매서운 바람이 시작돼서 바람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어요.
갑작스럽게 남편을 따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에 내려와 있다 보니 가족들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이곳에 온 지 9개월이 됐지만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만 봐도 마음이 우울한 것이 아직까지는 이곳 생활에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오늘은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아버지께 드리고자 펜을 들었어요. 옆에 있었을 때는 불평만 늘어놓고 아이들 맡길 생각만 하던 저였는데 떨어져 있다 보니 아버지께 잘못한 것들이 생각나고 자꾸 반성이 되더라고요.
퇴직하신 후 자식들 가까이에 살고 싶다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이사를 단행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친정이 가까워졌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함께 지낸 지난 4년여를 돌아보면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안겨줬던 것 같아요.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참 잘하셨는데 제 모습은 전혀 달랐죠. 제 자식들 챙기기에 급급했고 부모님께 의지하고 받기만 하려고 했으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 셋 건사하기도 힘든데 바깥일까지 많아 헉헉대면서 정신없이 사는 제가 탐탁지 않으셨죠. 그런 모습에 대해 조언이라도 하려고 하면 저는 귀를 막고 오히려 더 악착같이 일했고요.
작년 이맘때쯤 떠났던 경주여행 기억하시죠. 모처럼 애들이랑 어머니, 아버지랑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결국 경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랑 저의 의견충돌이 있었죠. 아버지는 ‘일 좀 줄이고 아이들 잘 챙기라’는 이야기를 하셨고, 저는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까지 실어서 아버지께 함부로 이야기했죠. 아버지가 딸에게 충분히 조언할 수 있는 이야기에 제가 격하게 반응한 거죠. 아버지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짐을 꾸려 서울로 혼자 돌아가실 만큼 화가 많이 나셨고, 저도 제 잘못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았죠.
결국 엄마랑 우리끼리 꺼림칙한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그 후로 저는 한달 이상 아버지 집에도 안 가고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버지는 저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받아주셨죠. 제대로 ‘죄송하다’ ‘잘못했다’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이를 데 없어요. 아버지, 그때는 정말 제가 잘못했어요.
지난봄 제주로 떠나는 저희 가족을 보고 이제 자주 못 보겠다며 마음 아파하셨던 아버지. 이제 걱정 내려놓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방학하면 애들이랑 뵈러 갈게요.
제주에서 큰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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