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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불쑥불쑥 폭발하던
당신을 이해했노라

등록 2013-03-22 20:43

[토요판] 가족/남편은 육아휴직중

▶ 2001년 2명에 불과했던 남성 육아휴직자가 지난해 1790명까지 늘어났대요. 10여년 사이 무려 895배나 늘어난 수치!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3%라는군요. 스웨덴의 남성 육아휴직 비율(2007년 기준) 20.8%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네요. 오늘 소개하는 윤기혁씨의 사연을 들어보니, 육아휴직은 아이와 함께 아빠도 키우는 길이더군요. 남성 육아휴직 정말 ‘강추’합니다.

드디어 주말이다!

나는 이날을 위해 지난 5일을 꾸역꾸역 버텨왔다. 한 시간이 넘는 퇴근길도 이날만큼은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그렇게 도착한 집. 다섯살 아이는 아빠를 보고서도 별 반응이 없다. 아빠는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안아보지만, 아이의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에 적잖이 당황하고 품에서 아이를 내린다. 텔레비전을 켜고 멍하니 누웠다. 지금 씻기라도 하면 그냥 잠들어 버릴 것 같다. ‘어떻게 맞은 주말인데, 그럴 순 없지.’ 씻지 않고 심심한 입을 달래고 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말없이 청소기를 밀고 또 걸레질을 시작한다. 압박이다.

거실, 방 그리고 화장실 청소…. 집안일은 주말에 돕고 싶다. 모처럼 찾아온 금요일 저녁의 충만함을 청소하며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내는 계속 움직인다. “내일 내가 할 건데 왜 벌써 하고 있어. 오늘은 편히 쉬자” 하며 버텨본다. 돌아오는 아내의 답변이 매섭다. “내일 오전에는 아이 병원에 가야 하고, 마트에 가서 장도 봐야 해. 그러고는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을 만들어야 하거든. 그러니 청소할 시간이 없어.” 아, 빡빡한 일정이다.

지난해 5월, 나는 육아휴직을 자청했다. 아이 유치원 보내기와 데려오기, 청소와 빨래 등 가사가 내 몫으로 돌아왔다. 아침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점심엔 뭘 먹을까 고민을 하고, 점심상을 치우고 나선 청소와 빨래를 한다. 그리고 잠시 앉아 빨래를 정리하면서 저녁엔 뭘 먹지 하고 생각한다.

빨래할 때는 아이와 어른 것을 구분하고 세제를 달리한다. 색깔이 다르거나, 니트나 울 소재 옷은 일반 옷과 분리한다. 그렇게 세탁물에 따라 세탁을 하고 건조대에 널어 말린 뒤 차곡차곡 개어 찾기 쉽도록 옷장에 넣어둔다. 이런 빨래를 일주일에 2번 하는데, 이틀에 하는 일이지만 실제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은 4~5회가 된다. 청소는 일주일에 2번 하는데, 한번은 청소기만 밀고, 한번은 걸레질까지 한다. 화장실 청소와 재활용 쓰레기 정리도 모두 주중에 끝낸다. 주말에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면 그 시간이 정말 아깝다.

회사에서 돌아온 아내는 까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투정
왜? 나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육아가사를 전담하면서
서서히 그 마음을 알아간다

괴물놀이에 어울렸던 아빠는
이제 왕자 역할로 승격했다
아내는 휴식과 웃음을 찾았다
회사로 다시 돌아가도

무심한 남편은 되지 말아야지

주중에는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밖에 안 되는 가족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다. 주말이 아니면 가족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다. 아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이 무엇인지, 갖고 싶은 장난감은 무엇인지, 아빠·엄마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아내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직장에서 괴롭히는 상사는 없는지, 하고 싶은 취미생활이 무엇인지 등등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나의 감정과 마음에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런 마음은 전에 없던 것들이다. 처음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며 보내야지’ 하며 나만의 시간을 꿈꾸었다. 하지만 웬걸. 처음 두 달은 육아와 가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이의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청소, 빨래하는 것까지 가사와 육아 모든 것이 낯설었다. 특히 아이의 일상을 함께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친구 이름을 알아야 했고, 주간 교육일정표를 보며 아이와 대화의 소재를 찾아야 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된 아이의 말에 엉뚱한 대답을 했다가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아빠 미워” 하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막상 해보니 가사와 육아 어느 것 하나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육아를 위해” 휴직을 결정한 뒤에야 아내와 나 사이에 있던 갈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항상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아이를 아침 8시에 등원시키고 칼퇴근을 해야 겨우 저녁 7시에 아이를 만날 수가 있는 생활. 내가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등·하원은 온전히 아내가 담당했다. 하루 11시간 이상을 유치원에서 보내야만 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엄마, 배가 아파.” “오늘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 오늘만~.” 투정을 부리며 울기 시작하면 난감하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출근시간에 이런 상황을 만나면 누구나 폭발하게 된다. 나는 이런 일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 폭발했던 아내의 감정은 아이가 아니라 이 상황을 모르는 남편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아빠 대신 아이가 그 상처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니!

요즘 나는 오후 6시가 되면 아내의 전화를 기다린다. “지금 퇴근했어. 버스 탔어.” 전화기 너머로 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조심해서 와~” 한다. 아내가 혹시 야근이라도 한다고 하면 나는 금방 시무룩해진다. 아내가 원해서 야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이 그렇다. 아이가 잘 때까지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양치하고 씻기고, 선생님 놀이 하고, 책 읽고 하는 일을 모두 혼자 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가 잠들면 다시 일어나 설거지하고 양치하고 씻는다. 이런 날은 드라마를 보는 것조차 상상할 수가 없다. 가사와 육아를 하면서 생기는 마음과 표현하는 행동이 이전의 아내와 똑 닮았다. 퇴근한 아내에게 말한다. “나는 휴직을 한 상태에서도 이런데, 당신 그동안 고생했다”고.

휴직 후 아이와의 관계가 몰라보게 친밀해졌다. 일요일이 돼서야 조금 놀아주다가 다시금 월요일이 되면 얼굴 보기 힘들었던 아빠가 아이와 일상을 함께하며 서서히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휴직 전, 가끔 아이와 놀이할 때는 공주를 괴롭히는 못생기고 무서운 괴물 역이 내 몫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만화영화 <신데렐라>를 본 아이가 “아빠는 왕자, 나는 공주. 아빠 우리 결혼해”라고 말한다. 괴물 아빠가 이렇게 서서히 왕자로 변해가고 있다. “아빠 지난번에 그거 있잖아~” 두 손을 머리로 향한 채 말을 하는 아이에게 나는 이제 “아~ 달님 선생님이 주신 분홍 머리끈? 자, 여기 있어”라고 답한다. 아이와 나는 이제 ‘척하면 척’ 하는 단짝이다. 휴직할 때 걱정했던 대로 약간의 대출금이 더 생기긴 했지만, 이제 우리 가족은 더 활짝 웃고, 더 자주 포옹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가족으로 변했다.

한 달 뒤면 복직이다. ‘진짜 육아’가 곧 시작된다. 우리 부부의 공동육아가 어떻게 진행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동안의 변화가 큰 동력이 되리라 믿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워킹맘, 워킹대디 그리고 아이들 모두 파이팅!

육아휴직중인 워킹대디 윤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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