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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둘은 좋아 죽는데 나는 미워 죽겠어

등록 2013-03-15 20:02

남편의 유별한 딸사랑
남편의 유별한 딸사랑
[토요판] 가족 / 남편의 유별한 딸사랑
‘딸바보.’ 딸에게 무한 애정을 쏟는 아빠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신조어예요. 무뚝뚝하고 일밖에 모르는 아빠보단 딸바보가 훨씬 ‘좋은 아빠’에 가까울 거예요.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하다잖아요.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아빠의 넘치는 사랑이 때론 가족 안에서 엄마를 소외시키고 딸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엄마의 역할까지 침범해 균형잡힌 성인으로 자라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쁜 딸, 누가 잡아가면 어쩌나
남편은 진짜로 고민한다
저러다 결혼할 남자 데려오면
멱살을 잡는 건 아닐까
아내는 진짜로 고민한다

사달라면 ‘오냐’ 와달라면 ‘오냐’
스무살 딸과 걸핏하면 쪽쪽~
때론 연인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아빠와 딸 vs 엄마와 아들
오죽하면 편이 갈렸을까

남편과 딸이 거실에 꼭 붙어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

재밌는 장면을 보면서 함께 큭큭거리며 웃기도 하고, 서로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도 친다. 남들이 다 부러워할, 친구 같은 부녀의 모습이다. 솔직히 어쩔 땐 아빠와 딸이 아니라, 나이 차 많이 나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딸바보’다. 딸바보란 말이 생기기 훨씬 전인 20년 전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주욱 그랬으니 그야말로 ‘원조 딸바보’라고 할 만하다. 남편의 딸 사랑은 유별나다. 남편은 딸이 그저 웃기만 해도 까무러치게 넘어가고, 행여 아프기라도 하면 제 몸까지 아픈 듯 끙끙 앓는 그런 남자다. 어떤 부모가, 어떤 아빠가 안 그렇겠냐? 아이고, 그것도 정도껏이지…남편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러다가 딸애가 결혼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오기라도 하면 멱살이라도 붙잡는 건 아닐까 싶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남편은 딸의 ‘상시 대기조’다. 딸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줄곧 딸을 자동차로 학교에 ‘모셔다’ 주는 등 전속 기사 노릇을 해온 것은 물론, 딸이 부르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기 일쑤였다. “이렇게 이쁜 딸,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면 어쩌냐.” 농담이 아니라 남편은 진짜로 그렇게 고민한다.

사실, 딸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딸애는 아내가 봐도 정말정말 예쁘다. 어렸을 때부터 “아기 모델을 시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지금도 “미스코리아 시켜라” “탤런트 만들어라” 하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나? 제법 공부도 잘해서 부모 속 썩이는 일 없이 명문대학에 한번에 떡하니 붙었다. “어디서 이런 애가 태어났나 몰라.” 남편은 딸 얘기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한다. “공주로 키워야 나중에도 여왕 대접을 받는 거”라며 남편은 딸애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려고 한다. 부녀 둘이서 손을 잡고 쇼핑도 가고, 영화도 보러 다닌다. 딸애는 “아빠가 예쁜 옷(사실은 비싼 옷)을 잘 골라준다”며 쇼핑은 아빠랑만 가려고 한다. 딸 역시 영락없는 ‘아빠바보’. “아빠가 짱”이라며 둘이 아주 좋아 죽는다.

무뚝뚝한 아빠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고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아내의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딸에게 하는 것 반만이라도 해주면 내가 매일 업고 다니겠다.” 아내는 자주 울컥해진다. 남편이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대상은 오로지 딸뿐이다. 아내와 아들은 언제나 “찬밥 신세”다. 다른 아빠들은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함께 가거나, 야구를 보면서 정을 쌓는다는데, 남편은 그런 일엔 관심이 없다. “사내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며 사소한 잘못에도 아들을 크게 나무라곤 한다. 똑같은 제 자식인데 어쩜 저렇게 대하는 게 다를까. “아빠는 누나만 좋아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아들 녀석은 이젠 아빠가 미운 눈치다.

아들한테 이럴진대 하물며 아내에겐 어떻겠는가.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는 애정은커녕 ‘무관심’에 가깝다. 딸한테는 매일 그렇게 뽀뽀를 해대는 사람이 아내와는 제대로 눈 맞추고 얘기를 하는 일도 드물다. 아내에겐 생일 선물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않던 남편은 딸애가 원하면 아무리 비싼 거라도 다 사준다.

형편이 좋을 때야 그러려니 했지만, 문제는 남편이 몇 년째 실직 상태라는 점. 사업이 잘 안 풀려 접은 뒤, 남편은 벌어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는 형편이다. 남편은 이런 사실을 딸에게는 알리지도 못하게 했다. “(당시 수험생이던) 딸이 이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아 공부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던 때에도 딸애 생일에 넓은 레스토랑을 빌려 친구들을 초대하도록 해줬다. “친구들은 다 그렇게 한다”는 딸애 말에 “오냐오냐” 해버린 거다. 딸애는 집안 사정도 모르고 “내 친구들은 전부 50평 넘는 아파트에 사는데 우리집만 33평이라 창피하다”며 철없이 이사 타령이다. 그런 딸애 앞에서 남편은 미안해서 절절매기만 한다. 둘 사이에서 아내는 발만 동동 구른다. 아내가 철없는 딸애를 교육한다고 나무라다가 큰 부부싸움으로 치달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딸은 엄마를 매일 “안 된다”고 잔소리만 하는 사람 취급하며 얘기도 잘 하지 않는다.

어디 가서 쉽사리 맘을 털어놓진 못했지만 아내는 가끔씩 남편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남편이 혹시 딸을 애인처럼 여기는 건 아닐까’ 하는. “흉흉한 뉴스를 너무 많이 본 탓”이라며 설마설마하지만, 불쑥불쑥 생겨나는 ‘불온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남편은 딸만 데리고 둘이 ‘데이트’하는 걸 즐긴다. 예쁘고 늘씬한 딸과 함께 다니는데 얼마나 자랑스럽겠나.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처럼 화사하고 생기가 넘치는 딸을 보면서 아내는 어처구니없는 줄 알면서도 가끔씩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남편과 딸의 빈번한 스킨십도 아내는 염려스럽다. 아무리 친한 부녀라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스킨십이 자연스레 줄어든다는데, 부녀는 그럴 기색이 전혀 없어 뵌다. 딸애와 남편은 여전히 꼭 붙어앉고, 걸핏하면 쪽쪽 뽀뽀를 한다. 딸애가 속옷 차림으로 아빠 앞을 지나다녀도 남편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남편이 딸에게 먼저 경계하고 주의를 좀 주면 오죽 좋을까. 하지만 아내는 그 얘길 꺼냈다가 남편에게 미친 여자, 의부증 환자 취급을 받은 일도 있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을까, 남편은 전혀 묻지 않는다. ‘아빠-딸’ ‘엄마-아들’로 편이 갈린 집안 분위기는 오늘도 냉랭하기만 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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