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교수
[토요판] 가족 엄마의 콤플렉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말은 틀렸다. 신은 모자라는 인간을 수련시키기 위해 ‘어미 되기’의 엄중한 숙제를 내리셨다. 아이를 낳지 않고도 열정을 다 바쳐 자신의 그릇을 완성해 가는 사람도 있다. 면벽수도를 하고 고행을 하고 맡은 바 소명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자기주도형’ 수련법에 의지하기엔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미욱하고 게으르다. 어미 되기는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철이 덜 든 게으른 어른들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젝트’다. 이 평생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하루 24시간은 고스란히 새로운 몸 만들기와 영성(?) 계발을 위해 헌납된다. 자기가 아닌 다른 생명을 보살피고 가꾸고 보듬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신이 인간에게 내장해둔 모성의 싹이 움트고 자라난다. 아이와 사랑으로 함께하는 시간만큼 모성이 발달하고 엄마의 영혼도 진화한다.
늦은 나이에 첫아이를 가졌을 때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 매일 밤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아이의 말없는 대답을 전해들을 때는 내가 천사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내내 그런 천사 같은 엄마가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출산을 하고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겨주는데 기쁨보다는 황당함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물이 가득 찰랑거리는 유리컵을 덜렁 전해 받는 기분이랄까.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데 강보를 풀어볼 생각도, 기저귀를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아 간호사를 불러 신생아실로 데려가라 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 온 뒤에도 아이가 분수처럼 젖을 토하거나 악을 쓰며 울어댈 때는 누구든 불러 “얘 좀 데려가시오”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모성은 저절로 타고나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런 형편없는 엄마라는 게 죄스럽고 한심했다. 출산 뒤 엄마들의 퉁퉁 부은 몸이 빠지는 건 눈물을 그만큼 쏟아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후 아이와 뒹구는 시간이 늘고, 아이를 미워하기도, 미안해하기도 하면서 아이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 조금씩 굵어짐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모성은 기른 정이지, 낳은 정이 아니다.
모성에 대한 세상의 기대는 절대적이다. 가난에 짓눌려 세 아이를 유기한 엄마, 신생아를 지하철 사물함에 버린 미혼모, 전자오락에 미쳐 자식을 굶겨 죽인 엄마…짐승도 제 새끼는 거두는데 모성도 내팽개친 어미라며 세상은 그들을 손가락질한다. 모성을 신성에 버금가는 본능으로 한껏 추어올려놓고 어미를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삼으려 한다. 짐승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 새끼를 물어 죽인다. 어미가 모성을 제대로 싹틔우고 발휘할 환경을 만드는 건 모두의 몫이다. 이미 많은 엄마들이 경쟁과 약육강식 논리에 병들어 그 바이러스를 자식에게 감염시키고 있다. 건강한 모성을 잃고 좀비처럼 몰려다니는 엄마들을 본다. 수련 11년차 견습생인 내게는 이 바이러스가 흑사병보다 두렵고 겁난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 진보정의당, 안철수 대항마로 ‘노회찬 부인’ 김지선 공천
■ 서울시 “대형마트 담배·두부·오징어 등 판매 제한”
■ 이재용 이어 전여옥 아들도 자사고 ‘사회적 배려대상자’ 입학 논란
■ 층간소음 또 칼부림…윗층 이웃에 흉기 휘두른 50대
■ 박근혜 정부 경제팀, 알고보니 ‘미경연’ 출신 많아
■ 진보정의당, 안철수 대항마로 ‘노회찬 부인’ 김지선 공천
■ 서울시 “대형마트 담배·두부·오징어 등 판매 제한”
■ 이재용 이어 전여옥 아들도 자사고 ‘사회적 배려대상자’ 입학 논란
■ 층간소음 또 칼부림…윗층 이웃에 흉기 휘두른 50대
■ 박근혜 정부 경제팀, 알고보니 ‘미경연’ 출신 많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