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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버림받아 우울증 걸린 딸의 악다구니, 엄마는…

등록 2013-03-08 17:46수정 2013-03-08 18:41

[토요판] 가족 모녀, 10년만의 대화
악이라도 써놓고 보니 엄마와 풀려 버렸어
삼류드라마처럼 복잡한
가정사를 반복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딸로 자랐다
겉으로는 바르고 건강했지만
속으로는 우울증을 앓았다
대학 졸업반이 되어서야
이래라저래라하는 엄마에게
처음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다행히 우리는 조금씩 화해했고
스물다섯, 난 진짜로 괜찮다

“(아이들은) 고통을 안겨준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애증 속에서 방황한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책 <아이는 부모 대신 마음의 병을 앓는다> 속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고 해도 여전히 불완전한 채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지 않나요? 아이에게 그 상처가 대물림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상처를 똑바로 대면하는 일, 상처의 대물림을 끊는 첫발은 아닐까요?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집을 나갔다. 가출은 아니었다. 합의 이혼이었지만 부모님은 내게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아빠와 나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고, 그 집에 엄마는 없었다.

교복을 입게 되니 들리는 소리가 더 많았다. 친가 친척들은 엄마를 ‘자식 버리고 간 매정한 여자’라고 칭했다. 내게 대놓고 “네 엄마가 널 버린 거야!”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귀동냥으로도 충분히 눈치챘다. 어른들은 때때로 아이들을 귀머거리라고 생각한다.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은 더 있었다. “우리 ○○이 불쌍해서 어쩌니.” 처음 보는 먼 친척 할머니가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졸지에 난 불쌍한 아이가 됐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함께 있을 때, 아빠는 다정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괜찮았다. 엄마, 아빠가 모두 있을 때의 집이 잘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엔 원래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1, 2년이 더 지나 놀러 간 엄마의 집에 모르는 아저씨가 있었을 때도, 그 아저씨가 다른 아저씨로 바뀌었을 때도, 아빠가 재혼을 하고 다시 이혼을 했을 때도 덤덤했다. 부모님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삼류드라마처럼 복잡한 가정사를 반복하면서 난 겉보기에 어른스러운,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르게 자란 딸이 되었다. 부모님은 그런 내게 항상 “우리 딸은 알아서도 잘하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은 족쇄가 되고 채찍이 됐다. 힘들어도 부모님에게 투정부리거나 원망할 수 없었다. 부모님도, 나도 그렇게 내가 괜찮다는 착각 속에 10여년을 보냈다.

겉으로만 바르고 건강했던 나는 긴 시간 동안 혼자 우울증을 앓았다. 학창시절에는 그게 병인 줄 몰랐다. 사춘기가 남들보다 긴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학생회부터 동아리, 아르바이트, 각종 대외활동을 섭렵했다. 바빴고, 사춘기는 사라졌다. 괜찮아졌다. 그렇게 또 착각했다.

스물셋 여름. 갑자기 우울증이 심해졌다. 어떤 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덮어두기만 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시시각각 죽고 싶어졌다.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면 ‘저 햇볕은 따스한데 나는 왜 이럴까’ 싶어 죽고 싶었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어차피 저렇게 다 떨어져 죽을 건데’ 싶어 죽고 싶었다. 차라리 낙엽이 부러웠다. 이러다간 진짜 죽을 것 같아 학교 상담센터를 찾았다. 센터에서는 “부모님께 알리자”고 했다. 상담만으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잔병치레로도 아프다는 말 한번 안 해본 내가 대뜸 “저 우울증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다만 엄마가 미워졌다. 아빠도 조금 미워졌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전화를 억지로 웃으며 받지 않았다. 만나기 싫을 때는 만남을 피했다. 엄마와 점점 거리를 뒀다. 그렇게 덮어둔 채 또 1년이 지났다.

스물넷 여름. 오랜만에 엄마 집에 갔다. 내가 엄마에게서 멀어진 만큼 엄마는 나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표정과 말투는 더 짜증스러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웃으며 착한 딸 가면을 쓸 순 없었다. 위태로운 기류에 결정적인 바람이 일었다.

엄마는 졸업반인 나를 두고 걱정이 많았다. 아니, 욕심이 많았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엄마는 내가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하길 원했다. 지금 당장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고, 돈벌이는 할 거라고 내 계획과 의사를 밝혔지만 무시당했다. 말은 입을 떠날수록 날카로워졌다. 엄마가 말했다. “언제까지 그 구질구질한 데서 살 거야.” 결정타였다.

엄마의 남자친구들은 돈이 많았다. 엄마는 종종 그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싫었다. 속물 같았다. 그래도 ‘엄마 인생이니까’ 하고 그냥 넘겼다.(지금 생각해보면 방관 같기도 하다.) 엄마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나를 엄마처럼 바꾸고 싶어 했다. 10년이 넘도록 떨어져서 다르게 살아온 내게 무턱대고 엄마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건 폭력이었다. 내가 엄마가 필요할 때는 버리고 나갔으면서, 다 크고 나니 내 행복은 무시한 채 너를 위한 거라고, 돈이나 많이 벌라고 말하는 엄마가 끔찍했다. 이제 와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엄마가 뻔뻔하게 느껴졌다. 그 10년 전 선택이 온전히 엄마 몫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다. 왜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걸까.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엉엉 울며 소리를 질렀다.

돈보다 꿈이 중요하다느니, 엄마와 내 가치관이 다르다느니, 그런 말은 아니었다. 아프다고 했다. 몇십번이나 죽고 싶었다고, 그래서 병원에 다녔다고 말하며 울었다. “왜 그랬냐”는 엄마의 물음에 “왜 그랬을 것 같냐”고 반문하며 악을 썼다. 미안해할 줄 알았던 엄마는 자신을 탓하는 거냐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절망적이었다. 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가 지나자 엄마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미안하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사랑한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휴대폰을 대충 덮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나도 미안해”라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미안하다기보다는 후련했다. 그 후로 엄마는 부쩍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쉽게 짜증을 내지 않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종종 친한 친구처럼 용건 없이도 문자메시지를 보내왔고, 몇 통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짜증이 가신 엄마는 조금 낯설었지만, 엄마 같았다.

스물다섯 봄. 엄마와의 관계는 많이 나아졌다. 휴대폰 액정에 엄마 번호가 뜨면 몇 번이나 생각을 하고 받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가끔 먼저 전화를 걸기도 하고, 여행을 가면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주기도 한다. 며칠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도 어디서든 잘할 거라며 잔소리 대신 응원을 해줬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아직도 겉으로 드러난 얘기보다 속에 담긴 얘기가 훨씬 많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만, 그래도 숨이 트인다. 엄마를 대하는 게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말할걸 그랬나 싶다.

이십대 중반의 늦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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