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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인간만 유독
홀로 출산할 수 없는가

등록 2013-03-01 15:04수정 2013-03-03 11:57

영장류의 산도 들머리와 태아 두개골 지름 비교. 큰 두뇌와 직립에 따른 작은 골반 때문에 인류는 유독 ‘나실 제 괴로움’이 큰 동물이다. 그림 캐런 로젠버그 외, <진화인류학> 제공
영장류의 산도 들머리와 태아 두개골 지름 비교. 큰 두뇌와 직립에 따른 작은 골반 때문에 인류는 유독 ‘나실 제 괴로움’이 큰 동물이다. 그림 캐런 로젠버그 외, <진화인류학> 제공
[토요판] 조홍섭의 자연보따리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을 꼽는다면 당연히 인간이다. 70억 가까운 수에다 그 무게를 합치면 약 3억t으로 단일 종으론 최고인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을 찬찬히 뜯어보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과학 모임인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 학술대회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패널의 하나가 ‘인간 진화의 흉터’였다. 만일 능숙한 엔지니어에게 인간의 설계를 맡겼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실수’들이 도마에 올랐다. 크고 발달한 두뇌와 직립은 인간의 진화를 성공으로 이끈 공신이지만 그 대가도 만만치 않다.

허리 통증은 대표적인 예이다. 네 발 대신 두 발로 체중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인간의 척추를 컵과 접시 24개를 교대로 쌓아 올려 들고 가는 일에 비유한다. 척추를 에스(S) 자로 휘어 균형을 유지하는 고육책을 쓰지만 특정 부위에 힘이 집중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캐런 로젠버그(왼쪽)가 출산이 고통스런 인체 골반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암버 알렉산더, 델라웨어 대
저명한 인류학자인 캐런 로젠버그(왼쪽)가 출산이 고통스런 인체 골반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암버 알렉산더, 델라웨어 대

또 걸으면서 발은 앞으로, 팔은 뒤로 가는 뒤틀림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척추에 무리가 가고 마모가 일어난다. 이 밖에도 만성적인 치질, 평발, 사랑니 등이 성공적 진화의 그림자로 꼽힌다. 심장과 항문의 높이가 비슷한 네발 보행 동물에게서 치질을 찾기는 힘들다. 또 직립을 하면서 얼굴과 머리의 형태가 바뀌면서 사랑니가 나올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직립의 가장 큰 대가는 여성만이 짊어지는 출산의 고통이다. 두뇌가 큰 영장류 가운데서도 인간은 유독 출산 과정이 힘들다. 태아의 머리 지름은 방향에 따라 산도보다 크고 직립에 적응한 골반을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사람의 두개골과 척추. 사진=수 클라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람의 두개골과 척추. 사진=수 클라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 결과 태아는 좁은 산도 안에서 머리와 몸을 뒤틀어 방향을 바꾸는, 태아와 산모 모두에게 힘겨운 동작을 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태아는 골반의 형태에 맞춰 머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90도 머리를 돌리고 이어 어깨가 빠져나오기 위해 다시 한 번 90도 회전을 해야 한다.

이처럼 위험한 출산 과정이 오늘의 인간을 만든 원동력이란 주장도 있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캐런 로젠버그 미국 델라웨어대 교수는 다른 영장류가 동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홀로 출산하는 데 견줘 사람의 몸은 구조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데 착안했다.

물에 오래 담궈 쭈글쭈글한 주름이 생긴 손.
물에 오래 담궈 쭈글쭈글한 주름이 생긴 손.
영장류는 쭈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태아가 어미를 향한 채 산도를 빠져나와 출산 뒤처리를 어미가 홀로 할 수 있다. 반면 사람의 태아는 앞서 살펴본 제약 때문에 엄마가 볼 때 머리를 뒤로 한 채 태어나 자칫 산모가 아기를 다루다가 목을 부러뜨릴 우려가 있다.

따라서 산모와 아기의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산모뿐 아니라 할머니, 형제, 가까운 친척이 임신 말부터 출생 과정과 산후에 이르기까지 돕는 행동이 인류 조상의 두뇌가 급팽창한 400만~600만년 전에 이미 출현했으며, 그것이 사회적 연대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진화는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할 뿐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근이 잦은 외딴섬 사람을 살아남게 했던 비만유전자나,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 진화한 피부색이 건물 안에서 사는 풍족한 도시생활 속에서 무력해진 것은 단적인 예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그렇다고 인체의 진화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볼 것만은 아니다. 맹장은 다윈의 주장처럼 거친 음식을 먹느라 진화했으나 이제는 쓸모없게 된 장기가 아니라, 심각한 감염이 일어났을 때 유익한 장내 세균을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는 이론이 유력해지고 있다. 실제로 맹장은 포유류 사이에서 적어도 32번이나 진화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속에 오래 담근 손이나 발에 주름이 잡히는 이유도 피부가 물에 붇는 것이 아닌 진화적 의미가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주름진 손은 젖은 물체를 미끄러뜨리지 않고 쥐는 데 팽팽한 손보다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다. 마치 트레드가 있는 타이어가 빗길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쭈글쭈글한 손가락은 습지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우리 조상이 남긴 유산인 셈이다.

인체에는 ‘부실 설계’보다 우리가 모르는 신비가 더 많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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