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토종 반달곰 씨 말린 ‘감자폭탄’ 뭐길래?

등록 2013-01-04 15:46수정 2013-01-06 15:15

1978년 한륭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 지리산 반야봉에서 찍은 것으로, 가장 선명하게 잡힌 사진으로 평가받는다. 출처 <살아있는 자연>
1978년 한륭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 지리산 반야봉에서 찍은 것으로, 가장 선명하게 잡힌 사진으로 평가받는다. 출처 <살아있는 자연>
[토요판] 생명 /
지리산 야생곰과 새끼곰
“주민들은 곰 잡는 거 다 알았어. 곰 포수가 윗분 연락받고 곰을 잡는데, 이를 신고하면 되레 경찰서 서장실에서 조인트 까이고 그랬지.”(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

곰 포수는 관가의 높은 분이나 대기업 간부의 특명을 받고 움직였다고 합니다. 웅담은 뇌물이나 진상용으로 쓰였다지요. 지리산 야생 반달곰은 1980년대 30마리, 90년대 5마리 안팎까지 줄어듭니다. 멸종하진 않았습니다. 이주민 곰과 눈이 맞아 씨앗을 퍼뜨렸으니까요. 그런데 이 곰은 어디에 숨었을까요?

1983년 5월22일 오전 11시45분 설악산 마등령의 범잠바위골. 반달가슴곰이 마지막 토해낸 숨소리가 지켜보던 사람들을 울렸다. 이튿날 ‘반달곰 끝내 숨지다’라는 <경향신문> 1면 기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설악의 깊은 계곡에 누워 총상의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비운의 반달곰. 부상 2주간의 마지막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반달곰은 ‘으엉, 으엉’ 계곡을 뒤흔드는 신음소리를 냈다. 구조반의 긴급출동도 보람 없이 곰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밀렵꾼의 총을 맞고 도망친 반달곰은 이곳에 쓰러졌다. 주민들의 신고로 19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깊은 산속에 누워 있는 반달곰의 생존을 기원했다. 하지만 반달곰은 사흘 만에 병원으로 옮겨지지도 못하고 숨졌다. 임종식 설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계장이 말했다. “그 뒤 반달곰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외설악공원에는 그 사건을 기려 반달곰 동상이 세워졌고요.” 지금도 관광객들은 이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남한에서 야생 반달곰은 멸종한 걸까? 지난 1일 정반대의 소식이 지리산에서 들려왔다. 지리산에는 2004년부터 인위적으로 야생방사된 반달곰과 새끼 26마리가 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방사곰(RF-18·식별번호)이 지난해 낳은 새끼곰 한 마리의 아비가 지리산에 사는 ‘토종 반달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웅담 노리는 사냥꾼을 피해
꼭꼭 숨어버린 야생곰
10년 전 무인카메라에 찍힌 뒤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 대신 새끼가 나타났다

“이상하게도 방사곰들이
북동부에는 잘 안 갔어요
거기 야생곰이 살 겁니다
정확히 어딘지는 말 못해요”

RF-18은 2011년 6~8월께 수컷과 교미해, 2012년 1월께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7월 공단 생태복원팀은 새끼 두 마리의 모근을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했다. 한 마리의 아비는 ‘옆동네’에 사는 수컷(RM-19)임이 밝혀졌으나, 다른 한 마리의 아비는 확인되지 않았다.(반달곰의 수정란은 착상이 느려, 다른 아비의 새끼를 한 배에 임신할 수 있다) 공단은 지리산에 방사된 모든 곰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새끼곰의 아비는 ‘소재 불명’이었던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복원팀의 양두하 박사가 말했다. “지리산에 야생곰이 산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가 풀어놓은 반달곰(RF-18)이 야생 반달곰과 교미한 거죠.”
1996년 지리산 대성골에서 발견된 감자폭탄.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 제공
1996년 지리산 대성골에서 발견된 감자폭탄.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 제공

지리산 야생 반달곰이 가장 최근에 확인된 건 2002년 환경부 무인카메라에서였다. 2000년에는 진주 문화방송 촬영팀의 무인카메라에도 포착됐다. 최소한 두 마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환경부와 공단은 다른 지역에서 반달곰을 들여와 야생방사하기로 결정했다. 지리산, 북한, 러시아 등 고향은 달라도 사이좋게 짝짓고 번성하라는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이렇게 2004년부터 36마리의 반달곰이 지리산에 풀렸다. 대부분 적응에 성공했고 10마리의 새끼도 탄생했다. 반면 지리산의 주인인 야생곰의 소재는 2002년 이후 수수께끼였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지리산에 많게는 10~20마리의 야생곰이 살았다고 말한다. 당시 반달곰 보호운동을 벌인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가 2일 말했다.

“1996년만 해도 지리산에 전문 사냥꾼이 다섯 팀 있었어요. 설악산 반달곰 다 잡고 백두대간 타고 내려온 거지. 그 사람들 감자폭탄도 썼어요. 대구사람들이 대성동 골짝에 엄청 깔아놨죠. 거기서 곰이 많이 죽었어요.”

설악산 반달곰 사건 때문에 곰사냥꾼들은 신경이 곤두섰다. 지리산에선 눈에 띄는 사냥총보다는 올가미와 감자폭탄을 썼다. 물에 불려 말린 딱총 화약을 벌집에서 채취한 밀랍으로 싸서 감자처럼 만든 게 감자폭탄이었다. 꿀을 발라 나뭇가지에 실로 걸어놓으면, 이를 낚아채 씹던 곰이 ‘펑’ 터져 뇌진탕으로 죽었다. “지금은 중국, 타이에서 오니까 웅담이 똥값이지만, 그때만 해도 최소 2000만원, 많게는 2억원 받았어요. 한 마리 잡으면 집 한 채 사거든. 곰사냥꾼들이 기를 쓰고 달려든 거죠.”

1990년대 후반 우 대표와 지리산생태보존회는 곰사냥꾼들을 어르고 달래 지리산에서 내보낸다. 동면굴과 배설물, 곰털 등을 공개해 환경부와 공단이 반달곰 복원사업을 추진하도록 이끌어낸다. 최소 5마리, 최대 10마리 이상이 산다는 게 당시 이 단체와 환경부의 추정이었다. 우 대표에게 3일 물었다.

“그럼 그 야생곰들은 지금 어디 살고 있나요?”

“방사곰들이 아직도 못 들어가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 야생곰들이 살지요. 곰 관리팀(공단)에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굉장히 넓은 지역인데, 그곳은 아직도 (방사곰이) 못 들어가거든.”

반달곰 복원사업이 진전된 최근에 방사곰 26마리는 지리산 전역에 흩어져 산다. 지리산 동부와 북부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골짝에 터전을 잡았다. 하지만 야생곰의 서식지는 2002년 마지막 카메라로 포착된 이후 분명치 않다. 양두하 박사가 말했다.

“야생 반달곰이 어디에 사는지도 계속 찾아봤죠. 무인카메라를 여러 곳 설치했지만 한번도 안 찍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사곰들은 지리산 북동부엔 잘 안 갔어요. ○○골, ◇◇골, □□골은 가더라도 곧바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야생곰이 살 거라고 생각해요.”

“방사곰들이 못 들어가는 제한구역이라도 있단 말인가요?”

“그래도 많이 바뀌었어요. 방사곰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야생곰의) 서식지를 치고 들어갔어요. 과거엔 덩치나 힘이 밀려서 못 들어갔다면, 지금은 8~9살 다 컸으니 들어가 터전을 넓힌 거죠. 이번에 새끼를 낳은 RF-18도 지리산 동부에서 활동한 놈이거든요. 2~3년 전만 해도 방사곰은 바로 쫓겨나오던 골짜기인데.”

“거기가 어디죠?”

“말하면 안 돼요.”

지리산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산을 지켜온 곰들 그리고 인간이 외지에서 들여온 곰들이 함께 산다. 현재 활동하는 방사곰이 26마리이니, 1990년대 살던 야생곰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지금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은 30여마리다. 불행하게도 지리산의 주인인 토종 야생 반달곰은 소수로 전락했다. 자기 터전을 야금야금 쳐들어오는 이주민들이 밉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새 짝이 생겼는데.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헌재 사람들 “이동흡만 아니면 했는데…”
박근혜 자서전 제목이 힐링이 될줄이야 ‘씁쓸’
50억 국민방송 정말 만들어질까
딸 위해 인생 바쳤는데 나 때문에 숨막힌다고?
‘10대 성추행’ 고영욱 영장 기각한 이유
‘권상우 협박’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 사망
‘제주 해적기지’ 발언 고대녀 김지윤 결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이진우, 윤석열 폭음 만찬 직후 ‘한동훈’ 검색…11월 계엄 준비 정황 1.

[단독] 이진우, 윤석열 폭음 만찬 직후 ‘한동훈’ 검색…11월 계엄 준비 정황

곽종근 “윤석열, 정확히 ‘의원’ 끌어내라 지시…의결정족수 언급” [영상] 2.

곽종근 “윤석열, 정확히 ‘의원’ 끌어내라 지시…의결정족수 언급” [영상]

[단독] 여인형 메모 속 “ㅈㅌㅅㅂ 4인 각오”는 지작·특전·수방·방첩 사령관 3.

[단독] 여인형 메모 속 “ㅈㅌㅅㅂ 4인 각오”는 지작·특전·수방·방첩 사령관

오늘 퇴근길 최대 10㎝ 눈…입춘 한파 일요일까지 4.

오늘 퇴근길 최대 10㎝ 눈…입춘 한파 일요일까지

707단장 “곽종근, 일부러 소극 대응…내란은 김용현 탓” 5.

707단장 “곽종근, 일부러 소극 대응…내란은 김용현 탓”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