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에 월급 150만원…‘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믿어봅니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한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을 마무리하며, 취재 과정에서 만난 1000여명의 평범한 시민들을 대표해 강원도 춘천의 취업준비생 홍문기(28·사진)씨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정리해 싣는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⑩ 대장정 마치며…당선인에 보내는 편지 자정이 넘어 캄캄한 밤입니다. 내륙에 있는 춘천은 겨울이면 더 춥습니다. 취업준비생인 저는 싸늘한 도서관의 공용 컴퓨터 앞에 서 있습니다. 얼어붙은 손을 펴가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님께 편지를 씁니다.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해고 위협 없이 월급 150만원을 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당선인님께서는 대통령의 꿈을 이루셨지만, 저는 이 소박한 꿈을 이루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줄 일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정규직일 것.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되긴 싫었습니다. 사무직일 것. 양복에 넥타이 매고 출근하고 싶었습니다. 월급 150만원 이상일 것. 부모님 용돈 드리고 결혼에 대비해 저축까지 하려면 이만큼은 벌어야 합니다. 그런 일자리가 아니라면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당선인님의 선거캠프 이름이 ‘국민행복캠프’였지요. ‘행복하고 싶다’는 제 바람을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하진 않으시겠지요. 몇 달 동안 구인광고를 뒤졌습니다. 강원도에서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일자리 많은 서울로 갈까 생각했지만, 수백만원 하는 월세 보증금이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청년 백수입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하루 14시간을 대학 도서관에서 보냅니다. 밥 먹을 때도 영어 단어를 외워요. 부모님은 수십년 운영했던 작은 식당을 얼마 전 정리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또다른 장사를 시작했지요. 언제 합격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부모님은 제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지 못해 재수, 삼수를 거듭하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많습니다. 문득 자조에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까, 끝날 수는 있는 걸까….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를 기다렸습니다. 새 대통령이 제 꿈을 이뤄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마침 당선인님은 지난 10월, 제가 졸업한 강원대에 오셨습니다.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학벌과 지역을 가리지 않도록 ‘블라인드 면접’을 채택하도록 하겠다 말씀하셨다지요. 복지 지출을 확대하겠다는 약속도 하셨지요. 약속대로라면 공공부문 일자리도 덩달아 늘겠지요. 기업의 공정 채용만으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춘천과 같은 지방 중소도시에는 민간의 정규직 일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복지를 늘려 어려운 사람에게 힘을 주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 당선인님이 임기를 마무리하실 5년 뒤에는 33살 공무원 홍문기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어느 여인에게 청혼도 하고, 소박한 꿈을 조금씩 일궈가며 살 수 있을까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로 인해 마음껏 웃을 수 있을까요. 차별 없이 누구나 기회를 갖고,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이루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당선인님의 선거 구호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였으니, 그 말을 믿어봅니다. 이 차갑고 캄캄한 밤, 달리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아우성에 당선인님이 귀 기울여줄 것이라고, 믿어도 되겠지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겨레>는 지난 7월부터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들었다. 바다를 두고 북녘과 마주한 섬 연평도에서 출발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여성노동자, 강원대의 대학생, 강원도 횡성의 한우농가, 경북 군위·의성군의 노인, 충남 논산의 어린이, 전북 전주의 일하는 여성, 전남 목포의 이주민, 경남 창원의 자영업자 등을 두루 만나며 국토를 종단했다. 최소 3주 이상 현지에서 수십명의 주민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대선 후보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아우성을 지면과 인터넷에 담았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마지막회는 그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간절한 호소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⑩ 당선인에 보내는 편지
“연평도에 다시 불길 치솟는 일은 없었으면…”
박연수 연평도 할아버지
27살 때 지금은 북쪽 땅에 있는 옹진반도에서 전쟁을 맞았습니다. 면사무소에서 탄약을 나눠주면 “탕, 탕” 총소리 나는 산을 뛰어다니며 군인들에게 날라다 줬습니다. 까치산, 은파산 골짜기마다 주검들이 쌓여있었지요.
저는 아내와 큰딸만 데리고 맨손으로 도망 나와 연평도에 터를 잡았습니다. 와서 겪은 고생을 말로 풀면 하루를 꼬박 지새워도 모자랄 것입니다. 고깃배에서 조기를 잡고 잡일도 해가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그 하루하루가 고됐습니다.
제대로 살아보는구나 싶었던 때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입니다. 새마을운동을 하며 집다운 집을 처음 지었습니다. 초가지붕을 얹은 연평도 집들이 그때 바뀌었지요. 9살 먹은 막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마을 길을 넓히며 흥이 나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40년 넘게 살아온 집이 2010년 11월 북한의 포격으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날 낮, 저는 바닷가에 굴을 따러 나가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쾅, 쾅”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가장 먼저 집으로 달려갔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폭삭 주저앉은 집뿐이었습니다.
제 나이 이제 여든아홉입니다. 이 나이에 더이상 욕심을 가질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연평도에 다시 불길이 치솟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남은 삶을 평안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시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한가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 배꼽 떨어진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부쩍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농촌 어르신들 우울증 없앨 복지정책 기대”
이종무 경북 군위 화북1리 이장
당선을 축하드립니대이. 지는 진짜로 정책 보고, 고향 정서를 보고 당선인님을 지지했십니다.
지는 작년 11월에 안사람하고 둘이서 고향 땅 화북리에 귀농했십니다. 귀농하고 한달 반 만에 이장이 됐지요. 우리 마을에는 31가구가 사는데 70%가 75살 넘은 노인들입니다. 지는 아주 총각 축에 끼지요.
당선인님께 디리고 싶은 말씸이 많지만서도 뭣보다 농촌 어르신들 좀 특별히 살펴주세요. 독거노인들 보면은 젊었을 때 배곯아 가면서 호미자루 쥐고 자식을 위해서 헌신해가 자식을 키워왔단 말입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젊어서 했던 효도를 자식들이 따라오지를 몬합니다. 다 우울증을 앓아요. 우리 동네에서만 농약 먹고 자살한 분들이 두 분이 있십니다.
복지정책 많이 하신다 카는데, 말만 중요한 게 아이고 공평하게 노놔가지는 복지가 중요합니다. 농촌에서도 영화 보러 갈 수 있고, 관광도 갈 수 있고 이런 복지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지, 돈으로 해결되는 거 아이거든요. 농촌 사람들은 일에 쪼들리서 집에 들어오모 지쳐서 연속극도 몬 보고 씨러져 자는데, 복지가 잘돼면 우울증도 낫고 안 그라겠십니까.
박정희 대통령께서 옛날에 ‘잘살아보세’ 하셨던 게 그기 진짜 와닿거든요. 선친께서 경제 부흥 일으켰던 거, 열심히 충실하게 이행하십시오. 복지정책에도 관심을 가져갖고 일자리 창출도 하시고요. 정부 시책이 확고해야 농사짓는 사람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십니다.
“이주여성들 생활고 심각…일자리 지원 급해”
에밀리 돈후안 전남 목포 이주여성
모국인 필리핀을 떠나 ‘우리나라’ 국민이 된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1991년 겨울, 남편을 만나 한국에 뿌리를 내렸지요.
선거일 아침, 저는 일찍 투표장에 다녀왔습니다. 14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투표해 왔지만, 전 무조건 남편의 뜻을 따랐어요. 한국어가 미숙하다 보니 후보들의 연설을 이해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거든요. 이번 선거에선 처음으로 제 마음 가는 대로 투표했습니다. 첫째는 주부로서 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둘째는 이주민으로서 다른 이주여성들을 위해서 선택했어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넉넉하지 않은 가정으로 시집와서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사회생활도 못하니 곧잘 우울증에 빠져요. 이주민들 대상으로 상담 봉사일을 하고 있는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당선인님, 우리 이주민 여성들 얼굴의 그늘을 살펴봐주세요. 우리 정부는 다문화가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쌀도 주고, 반찬거리도 보내주지요. 하지만 정작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교육대학을 다녔어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필리핀에서 배운 건 소용이 없더군요.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공장에도 취직하기 어려웠지요.
이주민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다문화가정 따로, 한국 가정 따로인 한국 사회가 많이 바뀔 겁니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이주민들이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겁니다.
“한달 일해 94만원…해고 걱정없는 세상 되길”
정영숙 전북 전주 청소노동자
날마다 아침 8시까지 저는 전주의 한 대학에 나갑니다. 학생들 오기 전에 얼른 화장실, 강의실, 복도, 계단을 치워야 하지요. 오후 5시까지 허리를 펼 수가 없어 늘 아파요. 이 일을 한 것도 어느새 18년째네요.
시급은 4700원입니다. 하루 8시간 일하고 한달에 94만원을 벌지요. 청소만 하는 게 아니라 김장을 거들라면 거들고, 식당일을 하라면 하지요. 배운 것이 많지 않으니 잘리지 않으려면 별수 있나요.
그 전엔 생닭을 다듬는 공장에서 일했어요. 우체부로 일하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론 아이들 돌보기가 어려웠거든요. 가난하게 자란 두 아들은 저처럼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아이들인데 뒷받침을 못해준 게 늘 속상해요. 기를 쓰고 자식을 먹여살려도 돌아보면 늘 이렇게 근심뿐입니다.
사실 저는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정치인들은 선거운동 때랑 당선 뒤의 모습이 딴판이잖아요. 그래도 다시 한번 믿어보고,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제 자식들은 저보다 나은 인생을 살게 하고 싶었거든요.
당선인님. 힘없는 여자, 그것도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해주세요. 저 같은 ‘아줌마’들이 잘릴 걱정 없이 일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사람 취급하고, 우리에게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는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2년 전 우리 학교에 노조가 생기면서 제 삶은 그나마 나아졌어요. 급여도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넘겼지요. 저희처럼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노조를 당선인님이 지켜주세요.
“작은 가게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줘야”
김형준 경남 창원 휴대전화 판매업
어렸을 때 제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절 키우신 어머니가 늘 힘들고 어려워 보였거든요. 하지만 그 소박한 꿈을 이뤄준 대통령은 아직 없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 만에 휴학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누나도 대학생이었거든요. 두 사람의 학비를 댈 만큼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제대하고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세 식구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월급이었습니다. 탈출구는 자영업뿐이었죠. 3년 전 경남 창원시 창동에 휴대전화 대리점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오로지 돈 걱정을 하면서 20대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정치가 삶에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투표장에는 나섰습니다. 투표장을 향했던 그 발걸음이 희망을 향한 길이었다고 5년 뒤에 회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은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마치지 못한 이유도 등록금 때문이었으니까요. 가게만 자리잡히면 지금이라도 다시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은 가게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기가 나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덩치가 작은 가게들입니다. 덩치가 크건 작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도움말 주신 분들
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금재호(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권용신(경북행복재단 정책연구팀장),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미숙(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김민경(건국대 축산경영·유통경제학과 교수), 김양이(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정주(건국대 국제무역학과 명예교수), 박기창(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종수(충남대 동물시스템과학과 교수), 서복경(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성태숙(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송만강(충남대 축산학과 교수), 신율(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병선(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윤인진(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 실장), 이병오(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이순형(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이유태(부경대 경영학부 교수), 이장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채운(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정근식(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민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 진현정(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한귀영(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정란(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⑩ 취재후기 지난 9월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대선만인보) 취재를 위해 찾은 강원도 춘천에서 처음 들은 이름은 ‘박정희’였다.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묵으신 곳이지요. 아주 유명해요.” 춘천의 ㅅ호텔로 가자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포격의 상처를 안은 연평도에서도, 노인 자살률 1위인 경북 의성군에서도 기자들은 ‘박정희’를 제일 먼저 만났다. 우리의 발이 닿지 않은 곳곳에 여전히 ‘박정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민초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들의 향수는 짐작보다 더 강렬했다. 그리고 12월19일,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한겨레>는 지난 9월14일 첫 회 연평도를 시작으로 12월14일 경남 창원까지 아홉차례에 걸쳐 ‘대선만인보’를 지면에 담았다. 석 달 동안 5명의 기자들이 전국 9개 지역에서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다.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자식처럼 먹여 키운 한우를 팔아치우고 고물상을 차린 강원도 횡성의 옛 농장주, 아빠와 엄마가 없어 슬픈 충남 논산의 초등학생까지 대선 후보들이 입버릇처럼 말한 ‘소외계층’의 민낯이 드러났다. 석달동안 전국 돌며 만난 1000여명
“왜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하죠”
“선거 관심 없어요, 먹고살기 바쁜데”
그들에게 ‘정치 불신’은 뿌리깊었다 박정희식 고도성장 추억하는 이들
“다시 잘살아보세” 외친 당선인은
민생해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소외계층 사람들은 대개 불행했다. 한계상황에 직면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1980년대 경남 제1의 도시였던 마산은 2010년 창원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고졸 청년 자영업자들이 지역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32살의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은 빚만 8000만원을 지고 있었다. 그는 “마트 다니면서 한달에 80만원 버는 친구가 부럽다”고 했다. 충남 논산에서 다섯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는 자녀들 학원비를 대느라 1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온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부업으로 화물차 운전도 하지만, 빚만 늘어나는 처지였다. 자식들 학원을 끊으면서 “피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40년 동안 서울 구로 2동, 3동, 4동을 옮겨가며 공장을 다니고 있는 50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도 울었다. “40년 전 월 150만원 받을 때나 지금 150만원 받을 때나 달라진 게 없어요. 나이 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어릴 때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노력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할까요.”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바를 묻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헤쳐오는 데 ‘정치’로부터 도움을 받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관심 없어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치에 관심 가져서 뭐해요.” 연평도에서 만난 33살 젊은 엄마의 말투는 매서웠다. “누가 되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걔네가 우리한테 돈 준대나? 돈 준다고 하면 뽑지.” 구로의 한 공장에서 휴대전화를 조립하던 28살 비정규직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선거 과정에서 대선 후보들은 ‘서민 논쟁’을 벌였지만 구로에서 만난 여성 비정규직의 47.5%는 “서민을 이해하는 대선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들은 무능한 정치가 가져오는 공포를 체감하고 있었다. 구로의 31살 비정규직 여성은 “요즘 범죄가 너무 많다. 나만 죽기 억울하니 너도 죽어라 이런 거잖나. 아무래도 나라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으로 경북 의성의 한 병원이 응급실을 폐쇄한 바로 다음날, 사고를 당한 한 노인이 지혈을 하지 못해 숨졌다. “제가 1년에 응급환자를 50명씩 살렸어요. 6년 동안 300명을 살린 거예요. 더이상은 못해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병원장은 더 많은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선 민초들이 뒤를 돌아보는 건 당연했다. 과거에 대한 추억이 민초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0~7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1%였다. 그때 젊은 시절을 보낸 노년층은 허허벌판에 건물이 올라가고 자갈길에 도로가 뚫리는 걸 목격했다. 이후 산업이 고도화하고 금융자본주의로 재편돼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정을 이들은 알 리가 없다. 다만 이들은 ‘박정희 같은 대통령’만 있으면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돌아볼 과거가 없는 젊은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갈구하고 있었다. 강원도 춘천의 대학생들과 경남 창원의 젊은 사장들은 안철수 전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취업을 못하고 있는 건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라고 말한 안 전 후보에게 젊은이들은 환호했다. 투표를 통한 심판 욕구가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춘천에서 만난 학생의 92.1%가 ‘대선 때 꼭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묶어 ‘구시대 정치’로 생각하는 이들 젊은층이 안 전 후보 사퇴 이후, 누구를 찍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민생 경제 해결’에 대한 민초들의 기대는 이제 박근혜 당선인에게로 옮겨졌다. 박 당선인은 선거 직전 ‘주가 3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슬로건 ‘잘살아보세’를 외치기도 했다. 민초들은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박정희와 같은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 당선인은 이들에게 70년대 체험에 값하는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 ‘대선만인보’를 취재하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들이 정치와 언론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고통스런 삶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표를 얻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박 당선인도 이들의 존재를 알아봤을까. 이들의 ‘만인보’를 직접 써내려가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끝> 진명선 허재현 이경미 엄지원 정환봉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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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보] 표창원 교수 “광주시민들, 힐링하세요~!”
홍문기(28)씨
⑩ 대장정 마치며…당선인에 보내는 편지 자정이 넘어 캄캄한 밤입니다. 내륙에 있는 춘천은 겨울이면 더 춥습니다. 취업준비생인 저는 싸늘한 도서관의 공용 컴퓨터 앞에 서 있습니다. 얼어붙은 손을 펴가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님께 편지를 씁니다.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해고 위협 없이 월급 150만원을 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당선인님께서는 대통령의 꿈을 이루셨지만, 저는 이 소박한 꿈을 이루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줄 일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정규직일 것.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되긴 싫었습니다. 사무직일 것. 양복에 넥타이 매고 출근하고 싶었습니다. 월급 150만원 이상일 것. 부모님 용돈 드리고 결혼에 대비해 저축까지 하려면 이만큼은 벌어야 합니다. 그런 일자리가 아니라면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당선인님의 선거캠프 이름이 ‘국민행복캠프’였지요. ‘행복하고 싶다’는 제 바람을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하진 않으시겠지요. 몇 달 동안 구인광고를 뒤졌습니다. 강원도에서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일자리 많은 서울로 갈까 생각했지만, 수백만원 하는 월세 보증금이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청년 백수입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하루 14시간을 대학 도서관에서 보냅니다. 밥 먹을 때도 영어 단어를 외워요. 부모님은 수십년 운영했던 작은 식당을 얼마 전 정리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또다른 장사를 시작했지요. 언제 합격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부모님은 제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지 못해 재수, 삼수를 거듭하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많습니다. 문득 자조에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까, 끝날 수는 있는 걸까….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를 기다렸습니다. 새 대통령이 제 꿈을 이뤄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마침 당선인님은 지난 10월, 제가 졸업한 강원대에 오셨습니다.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학벌과 지역을 가리지 않도록 ‘블라인드 면접’을 채택하도록 하겠다 말씀하셨다지요. 복지 지출을 확대하겠다는 약속도 하셨지요. 약속대로라면 공공부문 일자리도 덩달아 늘겠지요. 기업의 공정 채용만으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춘천과 같은 지방 중소도시에는 민간의 정규직 일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복지를 늘려 어려운 사람에게 힘을 주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 당선인님이 임기를 마무리하실 5년 뒤에는 33살 공무원 홍문기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어느 여인에게 청혼도 하고, 소박한 꿈을 조금씩 일궈가며 살 수 있을까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로 인해 마음껏 웃을 수 있을까요. 차별 없이 누구나 기회를 갖고,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이루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당선인님의 선거 구호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였으니, 그 말을 믿어봅니다. 이 차갑고 캄캄한 밤, 달리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아우성에 당선인님이 귀 기울여줄 것이라고, 믿어도 되겠지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겨레>는 지난 7월부터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들었다. 바다를 두고 북녘과 마주한 섬 연평도에서 출발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여성노동자, 강원대의 대학생, 강원도 횡성의 한우농가, 경북 군위·의성군의 노인, 충남 논산의 어린이, 전북 전주의 일하는 여성, 전남 목포의 이주민, 경남 창원의 자영업자 등을 두루 만나며 국토를 종단했다. 최소 3주 이상 현지에서 수십명의 주민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대선 후보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아우성을 지면과 인터넷에 담았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마지막회는 그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간절한 호소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⑩ 당선인에 보내는 편지
<한겨레>는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을 통해 연평도 주민, 횡성 축산농, 춘천 대학생, 전주 청소노동자 등 전국 방방곡곡의 민심을 들었다. 11월2일 충남 논산의 아동센터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사진기 앞에 섰다. 김정효 김태형 이정아 박종식 정환봉 기자 hyopd@hani.co.kr
11월16일 전주시 전주대학교에서 여성 청소노동자들이쓰레기봉투를 치우고 있다. 김정효 김태형 이정아 박종식 정환봉 기자 hyopd@hani.co.kr
박연수 연평도 할아버지
이종무 경북 군위 화북1리 이장
에밀리 돈후안 전남 목포 이주여성
정영숙 전북 전주 청소노동자
김형준 경남 창원 휴대전화 판매업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⑩ 취재후기 지난 9월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대선만인보) 취재를 위해 찾은 강원도 춘천에서 처음 들은 이름은 ‘박정희’였다.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묵으신 곳이지요. 아주 유명해요.” 춘천의 ㅅ호텔로 가자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포격의 상처를 안은 연평도에서도, 노인 자살률 1위인 경북 의성군에서도 기자들은 ‘박정희’를 제일 먼저 만났다. 우리의 발이 닿지 않은 곳곳에 여전히 ‘박정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민초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들의 향수는 짐작보다 더 강렬했다. 그리고 12월19일,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한겨레>는 지난 9월14일 첫 회 연평도를 시작으로 12월14일 경남 창원까지 아홉차례에 걸쳐 ‘대선만인보’를 지면에 담았다. 석 달 동안 5명의 기자들이 전국 9개 지역에서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다.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자식처럼 먹여 키운 한우를 팔아치우고 고물상을 차린 강원도 횡성의 옛 농장주, 아빠와 엄마가 없어 슬픈 충남 논산의 초등학생까지 대선 후보들이 입버릇처럼 말한 ‘소외계층’의 민낯이 드러났다. 석달동안 전국 돌며 만난 1000여명
“왜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하죠”
“선거 관심 없어요, 먹고살기 바쁜데”
그들에게 ‘정치 불신’은 뿌리깊었다 박정희식 고도성장 추억하는 이들
“다시 잘살아보세” 외친 당선인은
민생해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소외계층 사람들은 대개 불행했다. 한계상황에 직면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1980년대 경남 제1의 도시였던 마산은 2010년 창원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고졸 청년 자영업자들이 지역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32살의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은 빚만 8000만원을 지고 있었다. 그는 “마트 다니면서 한달에 80만원 버는 친구가 부럽다”고 했다. 충남 논산에서 다섯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는 자녀들 학원비를 대느라 1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온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부업으로 화물차 운전도 하지만, 빚만 늘어나는 처지였다. 자식들 학원을 끊으면서 “피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40년 동안 서울 구로 2동, 3동, 4동을 옮겨가며 공장을 다니고 있는 50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도 울었다. “40년 전 월 150만원 받을 때나 지금 150만원 받을 때나 달라진 게 없어요. 나이 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어릴 때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노력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할까요.”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바를 묻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헤쳐오는 데 ‘정치’로부터 도움을 받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관심 없어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치에 관심 가져서 뭐해요.” 연평도에서 만난 33살 젊은 엄마의 말투는 매서웠다. “누가 되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걔네가 우리한테 돈 준대나? 돈 준다고 하면 뽑지.” 구로의 한 공장에서 휴대전화를 조립하던 28살 비정규직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선거 과정에서 대선 후보들은 ‘서민 논쟁’을 벌였지만 구로에서 만난 여성 비정규직의 47.5%는 “서민을 이해하는 대선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들은 무능한 정치가 가져오는 공포를 체감하고 있었다. 구로의 31살 비정규직 여성은 “요즘 범죄가 너무 많다. 나만 죽기 억울하니 너도 죽어라 이런 거잖나. 아무래도 나라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으로 경북 의성의 한 병원이 응급실을 폐쇄한 바로 다음날, 사고를 당한 한 노인이 지혈을 하지 못해 숨졌다. “제가 1년에 응급환자를 50명씩 살렸어요. 6년 동안 300명을 살린 거예요. 더이상은 못해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병원장은 더 많은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선 민초들이 뒤를 돌아보는 건 당연했다. 과거에 대한 추억이 민초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0~7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1%였다. 그때 젊은 시절을 보낸 노년층은 허허벌판에 건물이 올라가고 자갈길에 도로가 뚫리는 걸 목격했다. 이후 산업이 고도화하고 금융자본주의로 재편돼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정을 이들은 알 리가 없다. 다만 이들은 ‘박정희 같은 대통령’만 있으면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돌아볼 과거가 없는 젊은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갈구하고 있었다. 강원도 춘천의 대학생들과 경남 창원의 젊은 사장들은 안철수 전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취업을 못하고 있는 건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라고 말한 안 전 후보에게 젊은이들은 환호했다. 투표를 통한 심판 욕구가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춘천에서 만난 학생의 92.1%가 ‘대선 때 꼭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묶어 ‘구시대 정치’로 생각하는 이들 젊은층이 안 전 후보 사퇴 이후, 누구를 찍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민생 경제 해결’에 대한 민초들의 기대는 이제 박근혜 당선인에게로 옮겨졌다. 박 당선인은 선거 직전 ‘주가 3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슬로건 ‘잘살아보세’를 외치기도 했다. 민초들은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박정희와 같은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 당선인은 이들에게 70년대 체험에 값하는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 ‘대선만인보’를 취재하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들이 정치와 언론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고통스런 삶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표를 얻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박 당선인도 이들의 존재를 알아봤을까. 이들의 ‘만인보’를 직접 써내려가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끝> 진명선 허재현 이경미 엄지원 정환봉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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