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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바다 건너의 ‘소중한 한표들’

등록 2012-12-12 20:55수정 2012-12-12 22:47

인도선 왕복 3박4일 걸려… 브라질선 2400㎞ 비행기타고… 아프리카선 국경넘어… 재외국민 투표율 71.2%
인도 북부의 소도시 다람살라에 사는 청전(59) 스님은 3일 밤 600㎞ 떨어진 델리를 향해 길을 떠났다. 제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기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는 오지여서 찬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꼬박 14시간이 걸렸다. 왕복 4박5일 숙박비와 교통비로 300달러를 썼다. 청전 스님은 “두 달 생활비가 날아갔지만, 붓뚜껑으로 표를 찍을 때는 감격적이었어요. 25년 전에 인도로 왔기 때문에 이번 투표가 난생처음이거든요. 앞으로는 꼭 투표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타이에 사는 고미조(38)씨는 4일 밤 9시 치앙마이에서 출발하는 방콕행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타이에 마련된 투표소는 방콕에 있는 주타이 한국대사관 1곳뿐이었다. 고씨는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5일 아침 7시 방콕에 도착했다. “시간·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다한 것 같아 뿌듯해요.”

지난 5~10일(현지시각) 엿새 동안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은 해외 유권자 15만8235명이 110개 나라 164곳에 설치된 투표소로 달려갔다. 투표율은 71.2%를 기록했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는 탄자니아, 네덜란드, 이집트, 파라과이, 폴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장거리 비행 등 악조건을 뚫고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의 투표 인증샷이 넘쳐난다. 그들의 ‘투표 참여기’는 투표를 독려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 국내 유권자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브라질의 주상파울루 한국총영사관은 국경지역에 사는 60대 부부가 비행기를 타고 투표에 참여했다고 12일 밝혔다. 노부부는 왕복 항공료 100만원을 들여 2400㎞를 날아가 상파울루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한국 면적의 85배가 넘는 브라질 땅 곳곳의 교민들이 비행기 삯을 마다하지 않고 투표에 참여했다고 상파울루에 사는 김학구(57)씨가 전했다. 상파울루 지역의 투표율은 전체 평균보다 높은 75.7%였다.

회사 업무로 1월부터 스와질란드에서 살고 있는 김한기(43)씨는 아내와 3살·1살짜리 자녀를 차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인접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투표소까지 5시간 동안 차를 몰았다.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도 바빠서 못했던 투표를 여기서 하니 더없이 기쁩니다.”

미국 앨라배마대학 한인학생회는 투표 참여자에게 차량과 경비를 지원했다. 4시간 떨어진 애틀랜타의 총영사관 투표소까지 10명의 학생이 함께 오갔다. “재외국민투표 기간이 기말고사와 겹쳤어요. 유학생 입장에선 1분, 1초가 아쉽고 비용도 부담스럽죠. 하지만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비판 자격을 얻는다는 심정으로 한인학생회 차원에서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한인학생회 강준석 회장이 말했다.

아일랜드 사람과 결혼해 이 나라 수도 더블린에 살고 있는 이루다(35)씨는 한국에 있는 부모·동생·조카들을 위해 투표했다. “아일랜드 대통령은 수행원 없이 시내 커피숍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시민들과 자연스레 어울려요. 참 부러웠어요.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그런 가치와 철학을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투표했습니다.”

이번 재외국민투표는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두번째다. 당시 투표율은 45.7%였다. 총선 때 투표하지 못했던 영국 포츠머스의 원성원(32)씨도 이번에는 런던에 가서 투표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투표하러 온 부부가 ‘나중에 아이들한테 투표가 뭔지 가르쳐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뭉클했습니다.”

유명인들도 투표 열풍에 가담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축구팀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32)씨는 트위터에 재외국민투표 사실을 ‘자랑’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했다. 재외선거인 및 국외부재자 투표일이 오늘까지여서 본까지 열심히 가서 투표를 완료했다. 여러분도 모두 투표하러 가셔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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