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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술 취하면 ‘애미 애비도 몰라보는’ 우리집 큰아들

등록 2012-12-07 15:31수정 2012-12-08 15:20

[토요판/ 가족] 막돼먹은 큰아들
큰아들이 술을 마신 날
부모 심장은 두근두근
오늘 또 어떤 행패 부리려나
오늘 또 얼마를 썼으려나


공부도 취업도 못한 건
동생과 차별대우 한 부모 탓
“내 인생 책임지라”는데…
잔소리도 못한다, 무서워서
 

일본에서는 30대가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들을 ‘패러사이트 싱글’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부모에게 ‘기생’(parasite)하며 산다는 거죠. 중년이 된 이들이 부모의 연금을 나눠 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군요.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자녀의 경제적 독립 어려움 등으로 자녀와 함께 사는 60대의 비율이 39.5%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패러사이트 싱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네요.

“자식이 웬수다.”

성질이 나서 그냥 한번 뱉어본 소리가 아닌 듯했다. 김정남(가명·62)씨는 큰아들 창훈(가명·33)씨를 두고 “정말이지 웬수도 이런 이런 웬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 2시, 김씨 부부는 불을 끄고 숨을 죽인 채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이어, ‘우당탕탕’ 사람이 어딘가에 부딪친 듯 요란한 소리. 창훈씨의 늦은 귀가를 알리는 신호다. 보아하니 오늘도 거나하게 마신 모양이다. ‘찜질방에 가서 잘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다. 다행히 창훈씨가 안방문을 열지 않고 지나쳐 갔다. 이럴 땐 쥐 죽은 듯 잠자는 척하는 게 상책이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간 어떤 사달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볼륨을 한껏 올린 티브이(TV) 소리에, 시끄럽게 거실을 오가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신세 한탄을 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술 취한 창훈씨가 잠이 들었는지, 티브이만 혼자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겠구나.’ 스르륵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김씨 부부는 그제야 눈을 붙였다. 하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한 고비 넘기고 나니 창훈씨가 들고 나간 신용카드가 떠올랐다. ‘오늘은 또 얼마나 썼으려나.’

창훈씨가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날이면 온 집안이 ‘비상’이다. 평소 얌전한 모습은 술잔에 빠뜨리고 왔는지 간데없다. 창훈씨는 술만 마시면 “애미 애비도 몰라보는 망나니”로 돌변한다. 막말과 삿대질은 예삿일이고, 성질이 나면 온갖 살림살이를 내던지기 일쑤다. 주먹으로 내리치고 물건을 내던져서 집 안의 곳곳이 성한 데가 없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동생 창섭(가명·29)씨도 형을 말리지 못한다. 창훈씨를 피해 세 식구가 찜질방으로 피난을 간 적도 있고, 경찰 신고라는 특단의 조처를 써본 것도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경찰이 와도 그때뿐이지만 말이다. 김씨 부부는 경찰에 가서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웬수 같아도 내 아들인 걸 어쩌겠나. 게다가 감방 갈 정도로 큰 사고를 친 게 아니니 접근금지 명령이나 벌금형 정도 나올 텐데 벌금 낼 돈은 뭐 어디서 거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창섭씨는 형이 이렇게 난동을 부리면 “정말 못 살겠다. 차라리 형을 정신병원에라도 보냈으면 좋겠다”며 가슴을 치곤 했다.

창훈씨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제대로 된 직장에 다녀본 일이 없다. “내가 장남이니까 나중에 부모님 가게를 물려받으면 된다”고 허세만 부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임시직을 전전한 게 고작이고, 요샌 그나마도 일이 없어 집에서 놀고 있다. 집에선 온종일 잠을 자거나 컴퓨터 게임만 한다. 남들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면 그제야 씻고 외출을 한다. 외출을 하려면 돈이 드는데, 백수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부모가 현금인출기나 다름없다.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해 돈을 안 주겠다고 벼르지만, 그때마다 술 마시고 가게에 나와서 행패를 부리니 어쩔 수 없이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차비다, 밥값이다 처음엔 조금씩 손을 벌리더니 요샌 아예 김씨 부부의 신용카드를 들고 나가기 일쑤다. 한번 카드를 들고 나가면 수십만원씩 긁는 건 예사다. “집에서 논다고 돈 안 내면 무시당한다”고 큰소리다. 부모인 김씨 부부 입장에선 “저 속은 오죽하겠는가” 안쓰럽다가도 “육십 넘은 부모는 한푼 더 벌겠다고 새벽부터 밤까지 가게에서 뼈가 녹도록 장사를 하는데, 멀쩡한 몸뚱이로 왜 저렇게 사나” 복장이 터진다. 그렇지만 속시원하게 ‘똑바로 살라’고 충고도 잘 못한다. 왜냐고? “아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재산이라곤 달랑 집 한 채와 이 가게뿐인데, 장남이 저러니 한숨뿐이다. 그나마 잘난 둘째 아들이 위안이다.

둘째 창섭씨는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 지난해 대기업에 취직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만 좋아했던 형 창훈씨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창훈씨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못난 놈”이란 말이다. 동생 창섭씨와 비교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서다. 그는 동생과 자신이 이렇게 못난 놈과 잘난 놈으로 갈린 게 전부 “엄마, 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차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술 취한 날에는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책임을 지라”며 부모에게 “같이 죽자”고 난리를 치기도 한다. 심지어는 부엌칼까지 들고나와 가족들을 위협한 적도 있다. 술이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지만, 곧 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 시절, 새벽부터 밤늦도록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를 대신해 네살터울 동생 창섭씨를 돌봤다. 동생을 데리고 알아서 밥을 챙겨 먹고, 친구들이 밖에서 어울려 놀 때도 동생과 함께 집에 있었다. 그 흔한 학원이나 유치원 문턱도 못 밟아봤다. 하지만 동생은 “모든 걸” 받았다. 과자를 사도 동생에게 하나 더 양보하라고 했고, 집안 형편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곤 해도 학원이든 뭐든 늘 동생이 우선이었다. “부모님이 동생한테 했던 것만큼 나한테도 했으면 지금 내가 이렇게 됐겠냐. 그런데도 그런 건 생각도 안 해주고 동생만 칭찬하고, 뭘 결정할 때면 장남인 내 말은 하나도 안 듣고 동생 얘기만 귀 기울인다.” 창훈씨가 울분을 터뜨렸다.

말짱한 정신이 들 때면 창훈씨도 답답하다.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자꾸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인식을 가져라. 뭐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라”던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의 말도 떠올린다. “작은 원룸이라도 하나 구해 달라”고 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잘나가는 동생 꼴 안 보고, 못난 놈 취급하는 부모님 눈에서 벗어나면 뭐라도 해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이런 맘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원룸을 구해주면 월세는 어떻게 내고, 뭘 해먹고 살 거냐”고만 한다. 부모님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울화통이 치민다. “대체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 에라 모르겠다. 오늘도 술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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