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평생 놀고먹는 남자
평생 놀고먹는 남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일찌감치 세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많은 돈이 되레 자식을 망친다”는 게 이유였지요.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도 “자식에게 돈보다는 땀의 가치부터 가르치라”고 비슷한 충고를 합니다. “스스로 땀 흘려 성취를 이뤄내는 경험이 자녀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는 연습이 된다”는 겁니다. ‘다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이것부터 줄여가는 게 시작이겠죠.
요즘 사춘기 아들과 전쟁중
“그렇게 놀다가 뭐가 될래?”
말하는 순간 움찔한다
남편처럼 되는 것 아닐까… 시부모 건물 서너채 월세 받아
겉으론 번듯하게 산다지만
제대로 된 직업 한번 없이
의욕·성실과는 담쌓고 살아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래요?” 며칠 전 남편에게 뺨을 맞은 아들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중학교 3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이혜숙(가명·42)씨의 아들은 요즘 남편과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댄다. “그렇게 놀기만 하고 공부 안 하다가 뭐가 되려고 그러냐?”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온 아들에게 남편이 던진 잔소리가 이날의 ‘부자전쟁’에 불을 댕겼다. 말다툼이 오가더니 어느 순간 말릴 새도 없이 남편의 손이 아들 뺨 위로 날아갔다. “왜 때려요! 아빠가 뭘 잘했다고 절 때려요. 할아버지가 대준 돈으로 우리 키웠지 아빠가 한 게 뭐 있다고 이래요?” 남편한테 매를 맞으면 “잘못했다”고 빌던 아들도 더는 맞고만 있지 않는다. 바락바락 대드는 소리에 또다시 날아오는 남편의 손을 아들이 휙하고 낚아챘다. 그 순간 남편의 어깨가 움찔하는 게 이씨에게도 느껴졌다. 훌쩍 커버린 키, 넓어진 어깨. 그러고 보니 아들 덩치가 남편만큼이나 커졌다. 아들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남편을 노려보다가 벽을 내리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날 밤 남편은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씨는 부자 사이에서 속이 썩어들어간다. 강압적으로 아들을 훈육하려는 남편과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 때문에 이씨의 집안은 요즘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아들은 아빠 말에 사사건건 대들고, 그러면 ‘무시당했다’고 느낀 남편이 더 크게 화를 내는, 그런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씨는 호되게 아들을 나무라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아빠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지 않는데 말에 영이 서겠냐.” 이씨가 봐도 남편이 아들에게 썩 좋은 본보기는 아닌 것 같다. 우선 남편은 직업이 없다. ‘실직을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남편은 마흔넷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이란 걸 거의 가져본 일이 없다. 남편은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는커녕, 남에게 월급 받는 일을 단 한 차례도 해본 적이 없다. 시부모님한테 받는 생활비와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건물 관리인’이 직업인 셈이다.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명함까지 찍어 들고 다니지만 딱히 하는 일은 없다. 남들처럼 주5일 꼬박꼬박 시간 맞춰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이래봤자 맘 내킬 때 건물들을 휘휘 둘러보고 오는 게 고작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사무실에 들렀다가, 골프연습장에서 몸 좀 풀고,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게 일주일에도 서너번이다. 아들이 학교 갈 때까지 늦잠이나 자는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남편도 “간혹” 직업이란 걸 가졌던 적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남편은 “사업가”였다. 그 시절 남편은 시내 목 좋은 곳에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결혼을 하려면 뭐든 일을 해야 모양새가 좋을 것 같아 했던 사업”이었지만 말이다. 사업이란 게 이것저것 따져보고 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데, 마음가짐이 이러니 잘될 리가 없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은 크게 손해를 본 뒤 대리점을 정리했다. 그 뒤에도 남편은 당구장이며 커피숍 등 서너번 가게를 차렸지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접었다. 남편은 무언가에서 꼭 성공하겠다는 ‘욕심’도 없지만, 뭘 하고 싶다는 ‘의욕’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사람 만나 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크게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보인다. 이씨는 이런 남편이 영 미덥진 않지만 웬만해선 그 맘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공연히 말해 봤자 서로 맘만 상하고, 마흔 넘은 사람한테 말한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서”다. 어쩌면 더 큰 이유는 “남편이 뭘 어떻게 하더라도 당장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이씨네는 시부모님 소유 건물 서너곳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에 더해 시댁에서 생활비 ‘보조’까지 받고 있다. 아들 과외비는 물론, 이씨 부부가 넉넉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살아도 될 정도로 적잖은 돈이다. “어차피 우리 죽으면 다 자식들 줄 돈, 지금 주면 어떠냐.” 부동산으로 큰돈을 쉽게 벌어서 그런지, 시부모님은 돈 문제에서 자식들에게 대체로 너그러운 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모두 시댁에서 사준 것들이다. 남편이 지금이라도 새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면 시부모님께선 당장 사업 자금을 내주실 게 분명하다. 항상 “얼마나 번다고 남 밑에 들어가서 고생하냐”고 하시는 분들이니 말이다. 시댁에서 전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다 보니 당연히 이씨 부부의 ‘발언권’은 거의 없다. 집을 살 때도, 차를 살 때도 그저 ‘감사합니다’ 하며 모든 걸 시부모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씨는 시부모님 눈치를 보느라 어지간해선 ‘싫다’는 기색도 안 하게 된다. 이씨도 이런 상황이 썩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솔직히 “남편이 아들한테 무시받는 아빠가 된 데는 시부모님 탓도 크다”고도 여긴다. “시부모님이 독한 맘 먹고 지원을 끊었더라면 남편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서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나. 시댁으로부터 ‘독립 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다. “새로 뭘 시작하자니 그저 막막하고, 당장 시댁에서 돈이 끊기면 아들 교육비는 어떡하나” 걱정부터 밀려온다. “시댁만 믿고 땡전 한 푼 저축을 안 했던 게 새삼스레 후회스럽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들의 반항은 거세지고 남편의 자격지심은 깊어만 간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데, ‘아들도 남편처럼 생활력 없는 남자로 자라면 어쩌나’ 이씨의 고민도 커져만 간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버림받은 ‘호랑이계 아이돌’ 크레인을 모르나요
■ 진중권, 문·안 단일화 난항에 “안캠 잘못”
■ 김무성 2년전 발언 화제 “박근혜, 대통령 되기엔 부족”
■ 우려했던 일이…‘먹튀’ 론스타, 한국정부 상대 수조원대 ISD 제기
■ “검사 성관계 책임” 서울동부지검장 사의 표명
■ 1100살 은행나무, 값어치 1조7천억 원
■ [화보] 안후보님, 뭐라고요? 궁금한 표정 문재인
“그렇게 놀다가 뭐가 될래?”
말하는 순간 움찔한다
남편처럼 되는 것 아닐까… 시부모 건물 서너채 월세 받아
겉으론 번듯하게 산다지만
제대로 된 직업 한번 없이
의욕·성실과는 담쌓고 살아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래요?” 며칠 전 남편에게 뺨을 맞은 아들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중학교 3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이혜숙(가명·42)씨의 아들은 요즘 남편과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댄다. “그렇게 놀기만 하고 공부 안 하다가 뭐가 되려고 그러냐?”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온 아들에게 남편이 던진 잔소리가 이날의 ‘부자전쟁’에 불을 댕겼다. 말다툼이 오가더니 어느 순간 말릴 새도 없이 남편의 손이 아들 뺨 위로 날아갔다. “왜 때려요! 아빠가 뭘 잘했다고 절 때려요. 할아버지가 대준 돈으로 우리 키웠지 아빠가 한 게 뭐 있다고 이래요?” 남편한테 매를 맞으면 “잘못했다”고 빌던 아들도 더는 맞고만 있지 않는다. 바락바락 대드는 소리에 또다시 날아오는 남편의 손을 아들이 휙하고 낚아챘다. 그 순간 남편의 어깨가 움찔하는 게 이씨에게도 느껴졌다. 훌쩍 커버린 키, 넓어진 어깨. 그러고 보니 아들 덩치가 남편만큼이나 커졌다. 아들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남편을 노려보다가 벽을 내리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날 밤 남편은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씨는 부자 사이에서 속이 썩어들어간다. 강압적으로 아들을 훈육하려는 남편과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 때문에 이씨의 집안은 요즘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아들은 아빠 말에 사사건건 대들고, 그러면 ‘무시당했다’고 느낀 남편이 더 크게 화를 내는, 그런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씨는 호되게 아들을 나무라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아빠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지 않는데 말에 영이 서겠냐.” 이씨가 봐도 남편이 아들에게 썩 좋은 본보기는 아닌 것 같다. 우선 남편은 직업이 없다. ‘실직을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남편은 마흔넷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이란 걸 거의 가져본 일이 없다. 남편은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는커녕, 남에게 월급 받는 일을 단 한 차례도 해본 적이 없다. 시부모님한테 받는 생활비와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건물 관리인’이 직업인 셈이다.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명함까지 찍어 들고 다니지만 딱히 하는 일은 없다. 남들처럼 주5일 꼬박꼬박 시간 맞춰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이래봤자 맘 내킬 때 건물들을 휘휘 둘러보고 오는 게 고작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사무실에 들렀다가, 골프연습장에서 몸 좀 풀고,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게 일주일에도 서너번이다. 아들이 학교 갈 때까지 늦잠이나 자는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남편도 “간혹” 직업이란 걸 가졌던 적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남편은 “사업가”였다. 그 시절 남편은 시내 목 좋은 곳에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결혼을 하려면 뭐든 일을 해야 모양새가 좋을 것 같아 했던 사업”이었지만 말이다. 사업이란 게 이것저것 따져보고 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데, 마음가짐이 이러니 잘될 리가 없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은 크게 손해를 본 뒤 대리점을 정리했다. 그 뒤에도 남편은 당구장이며 커피숍 등 서너번 가게를 차렸지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접었다. 남편은 무언가에서 꼭 성공하겠다는 ‘욕심’도 없지만, 뭘 하고 싶다는 ‘의욕’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사람 만나 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크게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보인다. 이씨는 이런 남편이 영 미덥진 않지만 웬만해선 그 맘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공연히 말해 봤자 서로 맘만 상하고, 마흔 넘은 사람한테 말한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서”다. 어쩌면 더 큰 이유는 “남편이 뭘 어떻게 하더라도 당장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이씨네는 시부모님 소유 건물 서너곳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에 더해 시댁에서 생활비 ‘보조’까지 받고 있다. 아들 과외비는 물론, 이씨 부부가 넉넉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살아도 될 정도로 적잖은 돈이다. “어차피 우리 죽으면 다 자식들 줄 돈, 지금 주면 어떠냐.” 부동산으로 큰돈을 쉽게 벌어서 그런지, 시부모님은 돈 문제에서 자식들에게 대체로 너그러운 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모두 시댁에서 사준 것들이다. 남편이 지금이라도 새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면 시부모님께선 당장 사업 자금을 내주실 게 분명하다. 항상 “얼마나 번다고 남 밑에 들어가서 고생하냐”고 하시는 분들이니 말이다. 시댁에서 전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다 보니 당연히 이씨 부부의 ‘발언권’은 거의 없다. 집을 살 때도, 차를 살 때도 그저 ‘감사합니다’ 하며 모든 걸 시부모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씨는 시부모님 눈치를 보느라 어지간해선 ‘싫다’는 기색도 안 하게 된다. 이씨도 이런 상황이 썩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솔직히 “남편이 아들한테 무시받는 아빠가 된 데는 시부모님 탓도 크다”고도 여긴다. “시부모님이 독한 맘 먹고 지원을 끊었더라면 남편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서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나. 시댁으로부터 ‘독립 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다. “새로 뭘 시작하자니 그저 막막하고, 당장 시댁에서 돈이 끊기면 아들 교육비는 어떡하나” 걱정부터 밀려온다. “시댁만 믿고 땡전 한 푼 저축을 안 했던 게 새삼스레 후회스럽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들의 반항은 거세지고 남편의 자격지심은 깊어만 간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데, ‘아들도 남편처럼 생활력 없는 남자로 자라면 어쩌나’ 이씨의 고민도 커져만 간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버림받은 ‘호랑이계 아이돌’ 크레인을 모르나요
■ 진중권, 문·안 단일화 난항에 “안캠 잘못”
■ 김무성 2년전 발언 화제 “박근혜, 대통령 되기엔 부족”
■ 우려했던 일이…‘먹튀’ 론스타, 한국정부 상대 수조원대 ISD 제기
■ “검사 성관계 책임” 서울동부지검장 사의 표명
■ 1100살 은행나무, 값어치 1조7천억 원
■ [화보] 안후보님, 뭐라고요? 궁금한 표정 문재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