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문 농성촌 24시
원래있던 쌍용차 천막 2동에
강정마을·용산 천막 1동 추가
겨울바람 맞으며 버틴 지 227일 보수언론 불법시설물 비판에
중구청 도로법 내세우며 윽박 시민들·불교계 밤낮으로 응원
“한번 쫓겨난 사람들을 또…”
“빚진 마음으로 주말마다 천배” 초겨울 찬 바람이 불어닥친 17일 아침, 서울시 중구 대한문 앞엔 낙엽이 무더기로 뒹굴었다. 비바람에 시달리고 무심한 행인의 발길에 차인 도심의 낙엽에는 생기가 없었다. 후줄근하게 겨울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그 낙엽을 빗질했다. 쌍용차 해고자, 용산참사 유족,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이었다. 처음 농성 천막을 펼친 지난 4월 말, 대한문 앞에는 꽃잎이 날렸다. 꽃이 지고 잎이 졌어도 천막은 227일을 넘기며 버티고 서 있다. 원래는 쌍용차에서 해고당한 뒤 세상을 뜬 이들을 위한 분향소가 차려졌다. 분향소를 지키려는 해고자들이 그 곁에 천막 2개를 설치했다. “우리라고 여기 있고 싶겠어요. 큰 도로 곁이라 소음과 먼지가 심해서 밤에 잠도 못 자요. 요즘은 날씨도 추워졌고요. 12살 큰애와 9살 작은애가 ‘아빠 언제 오냐’고 매일 전화하는데, 마음이 약해질까봐 집에도 잘 안 갑니다.” 김정욱(41)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외협력부장이 낙엽을 쓰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버텨온 농성장이 철거 위기를 맞았다. 지난 12일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모임, 강정마을 지킴이, 탈핵 환경단체 등이 공동으로 천막 1개를 추가로 세웠다. ‘함께살자 농성촌’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이 득달같이 나섰다. 도로 위 불법시설물을 방치한다며 서울시 등을 비판했다. 화답하듯 서울 중구청은 ‘농성촌’에 대한 강제철거 방침을 밝혔다. 농성장에는 가로 4.5m, 세로 2.5m 정도의 천막 3개가 들어서 있다. 대한문 옆 담을 따라 늘어선 천막은 인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농성단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집회신고가 이뤄진 곳에 천막을 설치했고, 천막 역시 집회물품으로 신고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구청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로는 적법할지 모르지만, 인도에 허가받지 않은 시설물을 설치하면 도로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상충하는 두 법률을 어떻게 적용해야 옳은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 5월에도 중구청은 남대문경찰서와 함께 쌍용차 분향소 철거를 시도했으나 서울시의 중재로 천막 설치를 용인해왔다. 도로 불법점유의 죄를 묻는 벌금 부과와 뒤이은 강제철거가 예상되는 가운데도 천막에는 전국의 시민들이 보내는 성원이 쌓이고 있다. 침낭과 담요가 더미를 이룬 농성 천막 안에는 시민들이 보낸 응원편지, 손난로, 강장음료 등이 곳곳에 놓여 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밝아오고, 지금이 그 새벽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문구가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 벽에 붙어 있다. 농성촌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이 천막 없애는 거? 나도 찬성이야.” 농성장을 찾은 김판수(74)씨가 말했다. “가해자한테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 구제해서 하루빨리 이 천막 없애줘.” 김씨는 농성장 앞에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운동을 함께 벌이는 자원봉사자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여기엔 이미 쫓겨난 사람들이 모였는데, 또 내쫓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이슬이(23)씨가 말했다. 오전 11시부터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10만배 기도’ 행사가 시작됐다.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시작한 기도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들이 매일 1000배씩 100일 동안 사태 해결을 기원한다. “빚진 마음으로 주말마다 올라와 1000배를 하고 돌아갑니다. 이곳 농성촌은 소외된 자들이 누리는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백신옥(39) 변호사가 말했다. 해가 저물어도 시민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밤 9시, 불교계 단체인 불력회 회원 6명이 와서 3000배를 시작했다. 기도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3000배를 하다 보면 극단적 고통의 한계가 오지만, 농성장 사람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하의 밤바람 속에 땀 흘리며 박종린 불력회 대표법사가 말했다. “난로는 못 놔줄망정 나가라고 하는게 참 안타깝네요.” 충북 음성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교사 하아무개(33)씨가 말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고 모두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농성자들과 하루를 함께 머문 시민단체 나눔문화 소속의 김치현(23)씨가 말했다. 천막 안의 기온은 바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문화재 주변이라 전기를 끌어 쓰거나 난방을 할 수가 없다. 24시간을 그들과 함께한 기자는 18일 아침 농성촌을 나섰다. 지쳐 잠든 농성자들은 침낭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었다. 윤형중 최유빈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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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마음으로 주말마다 천배” 초겨울 찬 바람이 불어닥친 17일 아침, 서울시 중구 대한문 앞엔 낙엽이 무더기로 뒹굴었다. 비바람에 시달리고 무심한 행인의 발길에 차인 도심의 낙엽에는 생기가 없었다. 후줄근하게 겨울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그 낙엽을 빗질했다. 쌍용차 해고자, 용산참사 유족,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이었다. 처음 농성 천막을 펼친 지난 4월 말, 대한문 앞에는 꽃잎이 날렸다. 꽃이 지고 잎이 졌어도 천막은 227일을 넘기며 버티고 서 있다. 원래는 쌍용차에서 해고당한 뒤 세상을 뜬 이들을 위한 분향소가 차려졌다. 분향소를 지키려는 해고자들이 그 곁에 천막 2개를 설치했다. “우리라고 여기 있고 싶겠어요. 큰 도로 곁이라 소음과 먼지가 심해서 밤에 잠도 못 자요. 요즘은 날씨도 추워졌고요. 12살 큰애와 9살 작은애가 ‘아빠 언제 오냐’고 매일 전화하는데, 마음이 약해질까봐 집에도 잘 안 갑니다.” 김정욱(41)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외협력부장이 낙엽을 쓰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버텨온 농성장이 철거 위기를 맞았다. 지난 12일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모임, 강정마을 지킴이, 탈핵 환경단체 등이 공동으로 천막 1개를 추가로 세웠다. ‘함께살자 농성촌’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이 득달같이 나섰다. 도로 위 불법시설물을 방치한다며 서울시 등을 비판했다. 화답하듯 서울 중구청은 ‘농성촌’에 대한 강제철거 방침을 밝혔다. 농성장에는 가로 4.5m, 세로 2.5m 정도의 천막 3개가 들어서 있다. 대한문 옆 담을 따라 늘어선 천막은 인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농성단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집회신고가 이뤄진 곳에 천막을 설치했고, 천막 역시 집회물품으로 신고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구청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로는 적법할지 모르지만, 인도에 허가받지 않은 시설물을 설치하면 도로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상충하는 두 법률을 어떻게 적용해야 옳은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 5월에도 중구청은 남대문경찰서와 함께 쌍용차 분향소 철거를 시도했으나 서울시의 중재로 천막 설치를 용인해왔다. 도로 불법점유의 죄를 묻는 벌금 부과와 뒤이은 강제철거가 예상되는 가운데도 천막에는 전국의 시민들이 보내는 성원이 쌓이고 있다. 침낭과 담요가 더미를 이룬 농성 천막 안에는 시민들이 보낸 응원편지, 손난로, 강장음료 등이 곳곳에 놓여 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밝아오고, 지금이 그 새벽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문구가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 벽에 붙어 있다. 농성촌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이 천막 없애는 거? 나도 찬성이야.” 농성장을 찾은 김판수(74)씨가 말했다. “가해자한테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 구제해서 하루빨리 이 천막 없애줘.” 김씨는 농성장 앞에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운동을 함께 벌이는 자원봉사자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여기엔 이미 쫓겨난 사람들이 모였는데, 또 내쫓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이슬이(23)씨가 말했다. 오전 11시부터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10만배 기도’ 행사가 시작됐다.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시작한 기도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들이 매일 1000배씩 100일 동안 사태 해결을 기원한다. “빚진 마음으로 주말마다 올라와 1000배를 하고 돌아갑니다. 이곳 농성촌은 소외된 자들이 누리는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백신옥(39) 변호사가 말했다. 해가 저물어도 시민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밤 9시, 불교계 단체인 불력회 회원 6명이 와서 3000배를 시작했다. 기도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3000배를 하다 보면 극단적 고통의 한계가 오지만, 농성장 사람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하의 밤바람 속에 땀 흘리며 박종린 불력회 대표법사가 말했다. “난로는 못 놔줄망정 나가라고 하는게 참 안타깝네요.” 충북 음성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교사 하아무개(33)씨가 말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고 모두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농성자들과 하루를 함께 머문 시민단체 나눔문화 소속의 김치현(23)씨가 말했다. 천막 안의 기온은 바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문화재 주변이라 전기를 끌어 쓰거나 난방을 할 수가 없다. 24시간을 그들과 함께한 기자는 18일 아침 농성촌을 나섰다. 지쳐 잠든 농성자들은 침낭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었다. 윤형중 최유빈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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