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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혼집에 밤낮없이 오는 어머니 때문에…

등록 2012-11-16 15:20수정 2015-02-09 17:24

[토요판] 가족
이사 가고 싶어요
이름 어려운 아파트로!
본 기사는 2012년 11월 16일에 등록된 기사로 ‘2015년 명량 설날 사용설명서’ 특집으로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이상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불을 켠다. 환한 전등 불빛 아래 드러난 거실은 아침 출근할 때와 어쩐지 조금 달라 보였다. 찬찬히 둘러보니 소파 위 쿠션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테이블 위 잡지들도 한쪽으로 치워졌다.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본다. 못 보던 반찬들이 유리그릇 안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 있다. 과일·채소칸에서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과일들도 흔적을 감췄다. 이런! 안방에 들어갔더니 아침에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무 데나 벗어 던져 놓고 나간 부부의 잠옷이 곱게 개켜져 침대 위에 놓여 있다. “또 오셨네, 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어머니가 다녀가신 게다. 결혼 1년차 김윤경(가명·30)씨는 갑자기 솟구쳐 오르는 짜증을 참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파트 열쇠를 드리는 게 아닌데 그랬어.’ 뒤늦게 후회해봤자 다 소용없다. 이미 열쇠는 시어머니 손안에 있고, 시어머니는 그 열쇠를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으신 것 같으니. “혹시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한다며 남편이 시어머니께 드린 여분의 열쇠가 이렇게 ‘상시 출입용’이 될 줄을 김씨는 꿈에도 몰랐다.

김씨의 집은 시집과 걸어서 10분 거리. ‘친구들이 시집 가까이 살아서 좋을 게 없다’고 말렸지만, 결혼할 무렵 김씨 귀엔 그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예식장 사정 땜에 결혼 날짜를 부랴부랴 잡았는데 회사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대신 집을 알아봐 주신다고 나섰을 때, 김씨는 “그저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가까이 살면서 서로 자주 오가야 엄마처럼, 딸처럼 친해질 수 있을 거 아니냐”며 이 집을 구해주셨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뭐,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을 걸 예상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막진 못했을 거다. 시부모님이 전셋집 비용을 다 대주시는데 ‘이건 좋다, 저건 싫다’ 따따부따 얘기할 처지도 아니었다.

tvN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tvN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아들집 오는데 무슨 연락이냐”
너~무 잦고 갑작스런 방문
청소며 빨래까지 해주시지만
매번 잔소리가 따라온다

시집 근처에서 사는 게 아닌데
열쇠를 드리는 게 아닌데…
후회해도 때늦은 걸 어쩌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
집에서도 맘 편히 쉴 수 없다
 

시어머니의 신혼집 방문은 잦아도 너무 잦다. ‘시도 때도 없다’는 표현이 딱이다. 당신이 원하시면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불쑥불쑥 들이닥치신다. 집에 누가 있건 없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밑반찬을 만들었다”며 갖고 오시고, 오셔선 방 청소며 빨래까지 다 해놓고 가실 때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찬장이며 냉장고 등이 전부 ‘시어머니 스타일’로 정리가 돼 있다. 슬쩍 다시 바꿔놔도 다음에 보면 또 바뀌어 있다. 물건을 찾다가 둔 자리에 없으면 화가 슬그머니 치민다.

김씨의 머리는 ‘시어머니가 맞벌이 부부인 아들·며느리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시려고 하는 거다’ 이해하려고 하는데, 가슴이 영 말을 안 듣는다. 김씨는 시어머니의 이런 ‘친절’이 불편하다. 심지어 시어머니의 ‘불시방문’이 때론 ‘감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밥통에 밥 해먹은 흔적이 없더라. 우리 아들은 30년 넘게 아침밥을 꼭 챙겨 먹고 다니던 아인데, 너희들 밥은 먹고 다니니?” “냉장고에 음식 괜히 오래 쌓아두지 말고 버려라. 그러다 병 걸린다.” “설거지는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해야지. 안 그러면 벌레 끓는다.” “어젠 몇 시에 들어왔니. 저녁 뉴스 끝날 때까지도 안 들어오더라.” 매번 이렇게 잔소리를 듣는데 감시받는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김씨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어머니 때문에 집에서도 맘 편히 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겨울엔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남편 생일이었다. “출근할 때 따끈히 먹고 출근하라”며 시어머니께서 새벽 댓바람부터 미역국을 끓여 갖고 오신 것이다. 초인종은 장식품인지, 시어머니는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샤워하고서 제대로 옷도 안 입고 나오다가 시어머니랑 마주친 김씨는 놀라 허겁지겁 욕실로 다시 뛰어들어가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혹시 아직도 자고 있을까봐 초인종을 안 눌렀다”고 하시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잖은가.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출근하는데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이후론 집에 있을 때마다 보조 잠금쇠 하나를 꼭 더 걸어 놓는다.

은근히 기분 나쁜 건 시어머니께서 남편과 김씨가 함께 사는 신혼집을 꼭 “아들 집”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오실 땐 연락을 먼저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김씨가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도, 시어머니는 “아들 집에 오는데 무슨 연락이냐”고 하셨다. “과일이나 뭐 대접할 거라도 준비해 놓으려고 한다”고 하면 “손님도 아닌데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고만 하신다. 시어머니가 “아들 집” 운운하실 땐, 김씨는 이 집에 사는 건 시어머니고 자신은 “객식구”처럼 느껴져서 맘이 영 언짢다. 도대체 시어머니는 불편해하는 이런 며느리 마음을 진짜 모르시는 걸까, 알면서도 그러시는 걸까. 솔직히 “제 친정 부모님이 이렇게 자주 드나들면 아드님(남편)은 편하겠어요?”란 말이 목까지 치밀어오르던 걸 참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남의 집 시어머니는 김치를 담가 갖고 와도 며느리가 불편해할까봐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놓고 간다는데, 내 팔자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든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는 “평생 말 잘 듣는 효자 아들”로 살아온 남편은 “(내 맘을) 다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시어머니께는 한마디 불평도 못 한다. “옛날 분이라 그러니 자기가 좀만 참아.” 남편은 그냥 애교로 넘어가려고만 든다. ‘하긴 어떤 남자가 자기 엄마를 두고 싫은 소리 하는 걸 좋아하겠나’ 싶어 꾹꾹 참고는 있다. 방법은 하나다. 하루빨리 시집과 거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 “아파트를 얻을 땐 되도록 긴 외국어 이름으로 된 곳으로 골라라. 그래야 시어머니가 잘 찾아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김씨는 요즘 자주 통장을 들여다본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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