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이사 가고 싶어요
이름 어려운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어요
이름 어려운 아파트로!
본 기사는 2012년 11월 16일에 등록된 기사로 ‘2015년 명량 설날 사용설명서’ 특집으로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tvN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너~무 잦고 갑작스런 방문
청소며 빨래까지 해주시지만
매번 잔소리가 따라온다 시집 근처에서 사는 게 아닌데
열쇠를 드리는 게 아닌데…
후회해도 때늦은 걸 어쩌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
집에서도 맘 편히 쉴 수 없다 시어머니의 신혼집 방문은 잦아도 너무 잦다. ‘시도 때도 없다’는 표현이 딱이다. 당신이 원하시면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불쑥불쑥 들이닥치신다. 집에 누가 있건 없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밑반찬을 만들었다”며 갖고 오시고, 오셔선 방 청소며 빨래까지 다 해놓고 가실 때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찬장이며 냉장고 등이 전부 ‘시어머니 스타일’로 정리가 돼 있다. 슬쩍 다시 바꿔놔도 다음에 보면 또 바뀌어 있다. 물건을 찾다가 둔 자리에 없으면 화가 슬그머니 치민다. 김씨의 머리는 ‘시어머니가 맞벌이 부부인 아들·며느리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시려고 하는 거다’ 이해하려고 하는데, 가슴이 영 말을 안 듣는다. 김씨는 시어머니의 이런 ‘친절’이 불편하다. 심지어 시어머니의 ‘불시방문’이 때론 ‘감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밥통에 밥 해먹은 흔적이 없더라. 우리 아들은 30년 넘게 아침밥을 꼭 챙겨 먹고 다니던 아인데, 너희들 밥은 먹고 다니니?” “냉장고에 음식 괜히 오래 쌓아두지 말고 버려라. 그러다 병 걸린다.” “설거지는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해야지. 안 그러면 벌레 끓는다.” “어젠 몇 시에 들어왔니. 저녁 뉴스 끝날 때까지도 안 들어오더라.” 매번 이렇게 잔소리를 듣는데 감시받는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김씨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어머니 때문에 집에서도 맘 편히 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겨울엔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남편 생일이었다. “출근할 때 따끈히 먹고 출근하라”며 시어머니께서 새벽 댓바람부터 미역국을 끓여 갖고 오신 것이다. 초인종은 장식품인지, 시어머니는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샤워하고서 제대로 옷도 안 입고 나오다가 시어머니랑 마주친 김씨는 놀라 허겁지겁 욕실로 다시 뛰어들어가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혹시 아직도 자고 있을까봐 초인종을 안 눌렀다”고 하시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잖은가.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출근하는데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이후론 집에 있을 때마다 보조 잠금쇠 하나를 꼭 더 걸어 놓는다. 은근히 기분 나쁜 건 시어머니께서 남편과 김씨가 함께 사는 신혼집을 꼭 “아들 집”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오실 땐 연락을 먼저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김씨가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도, 시어머니는 “아들 집에 오는데 무슨 연락이냐”고 하셨다. “과일이나 뭐 대접할 거라도 준비해 놓으려고 한다”고 하면 “손님도 아닌데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고만 하신다. 시어머니가 “아들 집” 운운하실 땐, 김씨는 이 집에 사는 건 시어머니고 자신은 “객식구”처럼 느껴져서 맘이 영 언짢다. 도대체 시어머니는 불편해하는 이런 며느리 마음을 진짜 모르시는 걸까, 알면서도 그러시는 걸까. 솔직히 “제 친정 부모님이 이렇게 자주 드나들면 아드님(남편)은 편하겠어요?”란 말이 목까지 치밀어오르던 걸 참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남의 집 시어머니는 김치를 담가 갖고 와도 며느리가 불편해할까봐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놓고 간다는데, 내 팔자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든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는 “평생 말 잘 듣는 효자 아들”로 살아온 남편은 “(내 맘을) 다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시어머니께는 한마디 불평도 못 한다. “옛날 분이라 그러니 자기가 좀만 참아.” 남편은 그냥 애교로 넘어가려고만 든다. ‘하긴 어떤 남자가 자기 엄마를 두고 싫은 소리 하는 걸 좋아하겠나’ 싶어 꾹꾹 참고는 있다. 방법은 하나다. 하루빨리 시집과 거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 “아파트를 얻을 땐 되도록 긴 외국어 이름으로 된 곳으로 골라라. 그래야 시어머니가 잘 찾아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김씨는 요즘 자주 통장을 들여다본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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