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토요판] 가족 / 엄마의 콤플렉스
“대장장이 집에 식칼 없다”더니, 대학에서 미디어학을 가르치는 어미가 정작 제 자식한테 제대로 된 미디어 교육을 못 시키고 있다.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나 효과가 미미하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미키 마우스 모노폴리>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곤 하는데, 이걸 집에서 아이랑 같이 보며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미키 마우스 모노폴리>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바이블이 되다시피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인종과 성(性), 소수자 문화에 대해 얼마나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주는지, 많은 이들이 디즈니 만화를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향수로 간직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뒤에도 그 편견을 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회교권 대부분의 나라에서 좀도둑의 손목을 끊는 처벌을 하는 곳이 없음에도 디즈니의 <알라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이유 없는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 원주민의 후예이면서 교육 전문가인 낸시 엘드레지는 실제로 미국 인디언은 <피터팬>에서처럼 입을 손으로 두드리며 “워…” 소리를 내지 않지만 이것을 전세계 아이들이 흉내내고 있다며 개탄한다. <정글북>의 오랑우탄과 <라이언킹>의 비열한 하이에나는 흑인 억양으로, <레이디와 트램프>의 교활한 샴고양이는 동양인의 억양으로 더빙해 인종적 편견을 조장하고 <미녀와 야수>는 난폭하고 살기 어린 야수를 사랑으로 구원하는 여성상을 이상으로 제시한다.
“늑대한테 쫓겨 들어온 벨 아버지를 도와주기는커녕 가두고 죽이려 드는구나…여자를 감금하고 명령하는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미녀와 야수>의 나쁜 남자 신드롬이 어린 딸에게 전염되지 않길 바라는 맘에 말을 붙여보지만, 딸은 벌써 만화에 푹 빠져서는 “응, 알아요 알아…” 건성이더니 “근데 엄마, 좀 조용히 해줄래요?” 한다. 휴우! 유년기부터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데, 이론은 멀고 미디어는 강력하다.
요즘 우리 집의 새로운 쟁점은 <런닝맨>이다. 유재석과 하하를 좋아하는 아이는 <런닝맨>의 열성팬인데, 이게 난 영 못마땅하다. 친구인 척하다가 배신하고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서로를 아웃시키고, 일단 아웃된 사람은 보안요원한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 나가고 팀원들로부터 격리된다. 누가 위험인물인지 정보를 공유하는 건 금지되고 최후의 승자는 한 명뿐,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며 죽어라 달리고 경계하고 공격한다. 힘센 김종국에게 모두는 밥이고, 힘없는 자들이 살아남는 길은 아부나 배신뿐이다. 상생과 소통은 거기 없다. <런닝맨>을 못 보게 했더니 아이 입이 댓 발은 나와 “딴 애들은 다 보는데 엄만 괜히 그래” 하고는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간다.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하기야 티브이 밖의 세상 전체가 미쳐 내달리는 런닝맨으로 가득하다. 이런 세상을 티브이 끄듯 딱 꺼버리지도 못하면서 난 오늘도 애만 나무란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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