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아무르호랑이가 사육사가 던져준 빈 종이상자를 물어뜯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과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생명 서울동물원 ‘행동 풍부화 사업’
▶ 가출했다 붙잡혀 온 서울동물원의 말레이곰 꼬마는 고무공, 샤워기에 해먹까지 갖춘 사육장에서 산다. 다시는 야생을 꿈꾸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기린은 여물통이 아니라 공중에 매달아 놓은 바구니 속 풀을 긴 혀를 내밀어 빼먹는다. 반달가슴곰은 통나무 구멍에 주입한 꿀을 빨아먹는 재미에 빠졌다. 행동 풍부화 사업 때문에 동물들이 살맛 난다
비좁은 우리와 기나긴 폭염으로
무기력에 빠진 맹수들
종이상자·코끼리 똥 던져주니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앵무새는 직접 집을 짓고
원숭이와 이구아나 색다른 동거
탐방객들도 덩달아 신났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과천 서울동물원 맹수사에 구경꾼이 몰렸다. 사육사가 빈 종이상자에 돼지 등뼈를 넣어 집어던지자 살아 있는 토끼라도 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에 실망감이 비쳤다. 하지만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3마리는 달랐다. 눈빛을 반짝이며 꼬리를 치켜세우고 상자에 덤벼들었다. 돼지뼈는 본체만체, 종이상자를 물어뜯으며 강아지처럼 겅중겅중 사육장을 뛰어다녔다. 탐방객들은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누워 있는 것만 봤지 뛰어다니는 건 처음”이라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12년째 호랑이를 돌봐 온 사육사 한효동씨는 “하찮은 파지로 호랑이가 이렇게 활발해진 게 놀랍다”고 말했다. 매일 호랑이의 배설물을 치우고 먹이를 주는 등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성근(19·대학생)씨도 “2주 전 새 프로그램을 도입하고부터 동물들이 진짜 좋아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동물원이 변하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는 ‘행동 풍부화’이다.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 있는 동물들에게 먹이나 환경 변화 등으로 자극을 주어 동물의 자연스런 행동을 살려내자는 것이다.
아무르호랑이는 먹이를 찾고 영역을 지키기 위해 최고 1000㎞까지 이동한다. 아프리카코끼리는 하루 60㎞까지 돌아다닌다. 먼 거리를 걷는 대표적인 육식동물인 북극곰에게 사육장은 가장 작은 서식공간에 비해서도 100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동물 상당수가 야생에서의 먹이 찾기 노력과 성취감, 경쟁 등이 사라진 비좁은 우리에서 아무 목적도 없이 끝없이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정형 행동’을 한다. 198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시작돼 최근 국내 동물원에서도 본격 도입되고 있는 행동 풍부화 사업은 이를 막기 위한 동물 복지 사업이기도 하다.
이날 열린 ‘동물행동 풍부화 특별대책팀’ 월말 회의에는 생생한 현장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살코기째 던져주던 닭과 쇠고기보다 먹기는 힘들어도 ‘먹는 재미’가 있는 돼지 등뼈가 동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시큰둥해졌다.” “빈 종이상자는 맹수에게 인기가 높지만 퓨마는 겁을 내고 표범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호랑이 승리는 향수 냄새를 좋아한다.” “사자에게 코끼리 똥을 줬더니 먹고 몸에 바르고 너무 좋아한다. 초식동물 배설물을 활용해 보자.” “종이상자 안에 칡넝쿨이나 닭고기 가루 같은 새로운 내용물로 변화를 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하자.”
맹수가 행동 풍부화 사업의 첫 대상이 된 건 맹수의 활동적인 모습을 기대하다 실망하는 탐방객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동물원은 맹수에 이어 고릴라, 침팬지 등 영장류를 위한 행동 풍부화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열대 조류관은 처음부터 이런 발상으로 설계했다. 집 짓는 습성이 있는 뭉크앵무에게 보릿단 등 재료를 넣어주자 집을 짓고 인공둥지에선 하지 않던 번식을 해 11마리가 벌써 17마리로 불어났다. 오색앵무사는 사람이 새장 속으로 들어가는 얼개인데, 호기심 많은 이 새들은 사람 머리에 앉거나 모자를 잡아당기는 등 사람을 재미난 소품으로 간주한다.
서로 다른 종을 함께 두는 방법도 동물에게 자극이 된다. 가장 작은 원숭이인 코먼마모셋은 파충류인 이구아나와 함께 두는데, 마모셋은 이구아나의 꼬리를 당기며 장난을 치고 맹금류가 천적인 이구아나는 늘 위를 경계하는 마모셋이 가까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행동 풍부화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사육사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20명의 자원봉사자가 칡넝쿨과 아까시나무 잎을 베고 동물을 위한 ‘장난감’을 만들고 있다. 시민공모전으로 행동 풍부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반면 행동 풍부화는 먹이를 빼먹도록 뚫어놓은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어 부상을 당하는 등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원효 서울대공원장은 “행동 풍부화는 동물은 물론 탐방객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동물원에 와서 동물을 그저 구경하는 것을 넘어 생각하도록 만든다”며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이대통령 전격 독도 방문…‘조용한 외교’ 뒤엎었다
■ MB 독도방문에 “화난다” 분노하는 일본
■ 낙동강 녹조…왜 자꾸 하늘 탓할까
■ 금메달 따면 부자 되나요?
■ ‘현영희 리스트’ 부산 친박 의원들 좌불안석
■ 사람이 아니무니다
■ [화보] 요정에서 여신으로~ 손연재의 환상 연기
무기력에 빠진 맹수들
종이상자·코끼리 똥 던져주니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앵무새는 직접 집을 짓고
원숭이와 이구아나 색다른 동거
탐방객들도 덩달아 신났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과천 서울동물원 맹수사에 구경꾼이 몰렸다. 사육사가 빈 종이상자에 돼지 등뼈를 넣어 집어던지자 살아 있는 토끼라도 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에 실망감이 비쳤다. 하지만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3마리는 달랐다. 눈빛을 반짝이며 꼬리를 치켜세우고 상자에 덤벼들었다. 돼지뼈는 본체만체, 종이상자를 물어뜯으며 강아지처럼 겅중겅중 사육장을 뛰어다녔다. 탐방객들은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누워 있는 것만 봤지 뛰어다니는 건 처음”이라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12년째 호랑이를 돌봐 온 사육사 한효동씨는 “하찮은 파지로 호랑이가 이렇게 활발해진 게 놀랍다”고 말했다. 매일 호랑이의 배설물을 치우고 먹이를 주는 등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성근(19·대학생)씨도 “2주 전 새 프로그램을 도입하고부터 동물들이 진짜 좋아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동물원이 변하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는 ‘행동 풍부화’이다.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 있는 동물들에게 먹이나 환경 변화 등으로 자극을 주어 동물의 자연스런 행동을 살려내자는 것이다.
유럽불곰에게는 먹이를 나무에 숨겨놓고 찾아먹게 한다. 과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열대조류관의 오색앵무가 관람객이 준 설탕물을 꽃꿀처럼 빨아먹고 있다. 앵무와 사람은 서로가 즐거움의 대상이다. 과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이대통령 전격 독도 방문…‘조용한 외교’ 뒤엎었다
■ MB 독도방문에 “화난다” 분노하는 일본
■ 낙동강 녹조…왜 자꾸 하늘 탓할까
■ 금메달 따면 부자 되나요?
■ ‘현영희 리스트’ 부산 친박 의원들 좌불안석
■ 사람이 아니무니다
■ [화보] 요정에서 여신으로~ 손연재의 환상 연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