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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꺽꺽’ 울던 엄마 가방 속엔 늘 농약담은 병이…

등록 2012-06-29 17:23수정 2012-07-01 18:50

[토요판] 가족 엄마의 우울증, 딸의 마음
엄마, 왜 그렇게 슬피 울었나요?
콩나물시루 같은 퇴근길 지하철 안, 최윤영(가명·34)씨의 휴대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진주(가명·54)씨 따님이신가요?” 짧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여기는 산본역인데요, 어머님을 모셔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산본역?’ 최씨가 사는 곳도, 직장이 있는 곳도 아닌 그곳, 엄마는 왜 낯선 그곳에 계신 걸까? 최씨는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서둘러 지하철을 갈아타고 산본역으로 달려갔다. 플랫폼 저쪽, 흘끔흘끔 돌아보는 사람들 어깨 너머로 목놓아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까 전화를 드리기 전부터 저렇게 울고 계시네요.” 역무원이 말했다. 엄마, 왜 울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다. 엄마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엄마가 우울증이란 진단을 받은 건 10년 전이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엄마의 ‘병’을 알게 된 건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말짱한데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의사는 우울증이란 진단을 내렸다. 그는 “병이 꽤 깊어진 것 같다”며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교통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엄마가 우울증이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명색이 간호사인데 엄마의 병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니….’ 최씨는 죄책감으로 가슴을 쳤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병
IMF 시절부터 울적해져
몇년 뒤 의사는 ‘병’이라 했지만
식구들은 제 살기도 버거웠다

늘 가방 속엔 농약 담은 드링크제…
10년을 외롭게 견뎌왔다니
좀더 말해주고 들어줬더라면

‘깊은 병’이라고 했지만, 최씨의 가족 중 누구도 엄마의 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았다고 한들 보듬어줄 형편이 안 됐다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터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부쩍 울적해하기 시작했던 건 아이엠에프(IMF)가 한창이었던 1998년께부터인 듯하다. 그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연거푸 실패로 끝나면서 최씨의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금실 좋았던 부모님이 치고 박고 하며 다툴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고, 죽자 살자 달려드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온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기도 했다. 엄마가 울적해할 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그땐 다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만도 버거울 때였다. 가족 중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엄마의 울적함이 유독 병의 신호로 읽히기도 어려웠을 게다. ‘잠깐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새 엄마의 병은 깊어졌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도 극적인 치료에 나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단 엄마가 우울증이란 병명을 진료기록에 남기길 거부한 까닭도 있다. “우울증을 앓았다는 기록이 남으면 나중에 보험 혜택을 받는 데 문제가 생긴다더라.” 엄마는 그 순간에도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 염려하고 있었다. 아! 그래도 엄마 손을 붙들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도록 했어야 했다. 최씨는 처음엔 머뭇거렸다. “남들이 정신병이라고 쉬쉬하는 우울증을 우리 엄마가 앓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엄마와 병원 앞까지 같이 가고서도 밖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고 최씨가 털어놨다. 오히려 밖에서 시달린 아버지는 되레 엄마에게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풀기 일쑤였고, 사춘기 남동생에겐 무능한 부모가 원망의 대상이었다. 최씨는 그 무렵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멀리 있어서 엄마의 상태를 몰랐다”고 얘기하진 않았다. “그땐 나도 내 자신이 감당이 안 돼, 알았다고 해도 피하고만 싶었을 것”이라고 최씨가 말했다. 그 시절, 엄마는 처절히 혼자였을 거다.

우울 증상이 심할 때면 엄마는 정말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활달하던 성격이었던 엄마는 몰라보게 말수가 줄었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 물끄러미 방바닥만 바라보는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말을 시켜도 건성건성 맥락 없는 말을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멍하니 있다가 “한 10분쯤 지났는 줄 알았다”며 놀라기 일쑤였다. 한밤중에 사라졌다가 낯선 건물 앞에서 발견되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엄마의 울음은 한번 터져 나오면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온몸의 수분을 모조리 빼기라도 하듯,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음은 계속되곤 했다. “왜 그렇게 슬피 울었냐”고 물으면 “내가 왜 그랬을까” 엄마는 되레 반문하곤 한다. 그 무렵 엄마는 늘 가방 속에 농약을 담은 드링크제를 갖고 다녔다고 한다.

가족들은 행여 엄마가 무슨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싶어 24시간 엄마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는 최씨를 대신해 아버지와 남동생이 엄마 곁을 지켰다. 아버지는 낮 동안 엄마를 돌보다 밤이 돼 동생이 돌아오면 대리운전을 하러 나갔다. 집안 형편은 형편대로, 엄마의 상태는 상태대로 여전히 바닥이었다. 순하고 애교 많던 동생은 버럭버럭 성질을 내는 일이 잦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니들은 엄마 걱정만 한다”고 짜증을 냈다. 멀리 있다고 맘이 편한 건 아니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속상한 얘기들을 털어놨다. 다정하게 엄마 얘길 들어줘야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최씨도 이내 짜증을 내며 무너지기 일쑤였다. 엄마를 달래고 달래다 지친 동생이 하소연할 곳도 최씨뿐이었다. “우울증 진단은 엄마가 받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피하고도 싶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최씨가 스물여섯, 이른 나이에 결혼을 서둘렀던 것도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할 땐 남편에게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어쩐지 부끄럽기도 했고, 엄마도 얘기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우울증”이라고 탁 털어놓은 건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숨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장모님 우울증이신 것 같아. 치료를 받게 하셔야 할 것 같다”고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내왔다. 다행히 남편은 엄마와 마주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제법 엄마의 비위를 맞춰준다. 엄마가 울면서 하소연을 하면 “장모님 그러셨어요?”라며 얘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남편과 대화를 하고 나면 엄마의 얼굴은 조금 더 편안해 보인다. 최씨는 그런 남편이 참 고맙다. 때론 “자식보다, 남편(아버지)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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