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지난 4·11 총선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필자처럼 정치를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보면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고 승패의 요인도 비교적 명백한데, 정치평론가나 정치인들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수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켜 놓고, 석고대죄는커녕 심지어는 “야당이 총득표수에서 이겼으니 졌다고 할 수 없다”는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더 할 말이 없다. 배구 경기에서 3 대 2로 역전패당하고 야구처럼 총점으로 승부를 정하면 이겼다는 주장이다. 총선과 대선은 다른 게임인데 여당이 대선 때도 야구장에 배구공 들고나와 운동장 한가운데 네트를 칠 줄 아는 모양이다. 여당도 대선 때는 글러브 끼고 야구 배트 들고서 나온다.
20대 투표율이 어떠니, 수도권이 어떠니, 부산 득표율이 어떠니 하면서 민주당이 12월 대선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들을 한다. 총선 패배로 풀이 죽어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당이 심기일전, 희망을 잃지 말고 다시 한번 잘해보자는 취지로 한 말이라면 이해가 간다. 패배 속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아 더 열심히 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이만큼 지원해준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빌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우선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 철저한 반성과 자기 쇄신이 앞서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반성과 자기 쇄신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이 모든 말들이 각 계파 간의 정치적 이해득실의 계산을 깔고 하는 말 같아서 영 찜찜하다. 이대로 간다면 필자가 보기에는 민주당이 대선에서도 패배할 것이 거의 틀림없다. 게임이론으로 보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진 이유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인데, 총선 이후에도 여전히 ‘죄수의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면 모두 다 잘될 수 있는데 상대방에 피해를 주더라도 자기만 좀더 먹겠다고 하거나 또는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고 내 것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서로 불신하고 비협력적으로 싸우면 모두 개미지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비협력적 게임에 관한 이론이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죄수의 딜레마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의 공천은 네가 하나 먹으니 나도 하나 먹어야 하고, 누구에게는 비토세력이 있고, 이 자리는 누구 건데 사정상 못 나오니 그 자리를 맡아놓아야 하고 하는 식이었던 것 같다. 지역구가 명동의 좌판도 아닌데 조폭들이 좌판을 내 자리라고 하면서 자릿세를 받듯이 이 지역구는 누구 것이니 그 사람이 지명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끊임없는 공천 잡음 속에 경제민주화, 민생, 복지, 불법사찰 등 유권자들이 바라는 중요한 총선이슈는 모두 실종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차려준 밥상을 민주당이 발로 걷어찼다는 평가마저 나왔겠는가.
총선 이후 새누리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무언가 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대선 정지작업을 하는데, 민주당은 계파 간에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또다시 빠져드는 것 같다. 새누리당은 좌클릭한 반면 민주당은 민생정책의 내용이 부실해서 총선에서 졌는데도 내부에서는 벌써 좌클릭이 심해서 졌으니 중도로 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 중도라도 잘하시든지.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총선, 대선을 빙자한 계파 간 세력싸움과 같은 단판 승부에서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이론적 해결방법이 없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사심을 버리든지, 아니면 모든 플레이어들의 이해를 모아서 조정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이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또다시 국민들을 배신하지 않으려면 죄수의 딜레마를 풀어야 한다. 안 되면 밖에서라도 사람을 불러야 한다. 새해를 맞아 지난 1월2일치 본 칼럼에서 필자가 노파심에서 말했다. “올 한해 국민의 감시가 필요한 곳은 집권 보수여당이 아니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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