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생명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종종 동물실험윤리위원 자격으로 몇 곳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 참석한다. 그런데 거기만 다녀오면 늘 마음이 좋지 않다. 나의 승인 서명과 함께 실험 계획서 속 동물들의 생사가 갈리기 때문이다. 승인하게 되는 실험에 사용될 생명들을 생각하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나 후회한다. 현재 동물실험을 하는 모든 기관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두어야 하고, 위원회에는 동물단체가 추천한 한 사람이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교육을 이수하고 동물단체가 추천한 윤리위원 자격으로 몇 곳의 학교와 기업체의 회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도 첫 회의 때의 기운을 생생히 기억한다. 참석자들의 거부감으로 회의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동안 자유롭게 진행하던 일인데 동물단체까지 낀 새로운 절차가 생긴 것이 불쾌한 것이었다. 동물실험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험동물이 지내는 곳의 환경 관리도 중요하다고 하니 별걸 다 관여한다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실험동물의 관리는 좋은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물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의 수는 150만, 비공식적인 것을 합하면 500만 정도이다. 그 비공식적인 실험에 쓰였던 실험견 쿵쿵따를 알고 있다. 쿵쿵따는 동물병원에서 각종 수술의 실험견으로 쓰였다. 어려운 실험의 실험견으로 또는 값비싼 품종의 수술을 앞두고 실습용으로 잡종견 쿵쿵따가 먼저 수술대에 올랐다. 그렇게 한 달에 한두 번씩 수술대와 케이지를 오가며 7년을 보냈다. 옆 케이지의 실험견들이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쿵쿵따는 마침내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찾아 입양되었다. 쿵쿵따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는 아이가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같이 살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얼마 전 쿵쿵따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수술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나의 의견에 가족은 쿵쿵따를 다시 수술대에 올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 생각이 짧았구나. 쿵쿵따네 집은 너른 땅을 가지고 있는데 쿵쿵따는 일정 공간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 그 경계를 넘는 순간 다시 병원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그래, 쿵쿵따를 다시 수술대에 올리는 일은 너무 잔인하다. 개는 경이로운 후각, 청각 능력을 갖고 있으니 쿵쿵따는 병원에서 살아남았던 것처럼 또 멋지게 살아갈 것이다.
며칠 후에 또다른 병원 실험견을 만났다. 성대 수술 실습용이기도 했던 아이는 목소리를 잃었고 봄날의 산책에 흥분해서 짖었지만 천식 환자 같은 쇳소리만 낼 뿐이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 때문에 더 처연했다.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동물단체의 주장처럼 동물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동물실험이 오히려 사람을 더 위험하게 만든 경우도 있음을, 동물실험의 역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진행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화장품, 생활용품의 동물실험은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의약품에 대한 동물실험 무용론을 펼칠 논리를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 결국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동물실험윤리위원으로 활동하는 것 정도이다. 또다른 쿵쿵따를 위해서!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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