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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의금까지 법대로?
형제들의 난이 시작됐다

등록 2012-03-23 21:01수정 2012-04-18 11:28

[토요판] 가족
유산싸움, 감정싸움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더니 정작 제 가족은 못 챙겼나 봐요. 2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가족끼리 다툼 중인 삼성 얘기예요. 삼성처럼 큰 가족기업이 흔들릴 경우 자칫 국가경제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주장까지 나와요. 보통사람들은 내 집안일로도 머리가 아픈데, 삼성 걱정까지 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여쭐게요. “이건희 회장님, 지난번 하와이 회동 때 가족끼리 화해할 방법은 찾으셨나요?”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 공유물 분할 및 건물명도 소송, 부의금 소송, 임치금 반환 소송, 임차 보증금 반환 소송. 지난 1년 새 소송만 5건이다. 생판 남 혹은 철천지원수끼리 벌이는 소송이 아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민망한 얘기”지만, 부모에게서 피를 나눈 4형제는 지금 ‘전쟁’ 중이다. 소송 말이 나오자 네 형제는 저마다 깊은 속에서 끌어올린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남부럽지 않은 우애를 자랑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정말 그랬던 시절이 있나 싶게 아득하다.

두살 터울씩인 4형제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돌아가셨다. 홀어머니와 네 아들, 당연히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형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문배달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학비를 보탰다. 막내(넷째) 부부가 외국 유학을 갈 땐, 둘째 형이 유학비를 도울 정도로 우애가 도타웠다. 넷째 부부는 그런 둘째 형을 “아버지 같은 형님”이라 여기며 따랐다. 사업체를 일구며 형제 중 경제적으로 비교적 성공한 둘째가 외국에 나가 사는 큰형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형이 동생에게, 동생이 형에게 기댈 언덕이었던 시절이었다. 형제의 훈훈한 사연은 한때 ‘행복한 가족’의 모범으로 방송에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형제 사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틀어졌다. ‘어머니 앞으로 남은 빌라를 어떻게 처분할 것이냐’는 문제가 형제간 불화의 발단이었다. 첫째·셋째·넷째가 한편이 돼 둘째와 맞서는 모양새가 됐다. 첫째 등 3형제는 “어머니 재산이니, 생전 어머니 뜻대로 셋째 아들에게 상속하는 게 맞다”고 했다. 어머니는 평소 지체장애인인 셋째 아들의 생계를 걱정했던 터였다. 하지만 둘째는 “어머니 명의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내 돈으로 장만해드린 집”이라며, 15년간 작성해온 장부를 내밀었다. 격론 끝에 빌라의 지분 3분의 1을 셋째의 이름으로 돌리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사건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이번엔 큰형이 나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살았던 아파트의 전세금을 공평히 나눠 내 몫을 찾아야겠다는 거였다.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자식들 보기 민망하다”며 말리던 셋째와 넷째도 고압적인 둘째의 태도에 화가 나 합세했다. 결국 형제는 법정으로 갔다. 셋째는 소송 제기 넉달 뒤에 어머니 빌라를 분할해달라고 또 소송을 걸었다. 빌라에 살고 있던 둘째의 장인에게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소송과 함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네 형제
방송까지 탄 끈끈한 우애
서로가 서로의 학비를 보탰다

빌라 한 채로 시작해 소송 5건
가장노릇 둘째와 삼형제 대결
해묵은 불만들이 폭발했다

둘째도 가만히 당하진 않았다. “그럼 어머니 장례식 때 들어온 부의금도 제대로 정산하자”고 넷째에게 따졌다. “넷째가 직위를 이용해 거액의 부의금을 챙겼는데, 방명록·부의금 내역서도 공개하지 않고 형제끼리 나눠야 할 몫을 독차지했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둘째는 형과 동생들이 “배은망덕하고 괘씸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장애인인 셋째 동생이 자립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했고, 큰형에게도 사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큰돈을 선뜻 빌려줬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거다. 또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형편이 넉넉한 넷째가 첫째, 셋째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무릎 꿇고 빌 때까지 형제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형제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오죽하면 우리가 소송까지 가게 됐는지 둘째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둘째 형이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 이후부터 형제 사이가 나빠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도와준다는 이유로 자식들 앞에서도 심한 하대를 하며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먹고살게 도와줬다지만 그동안 나는 사실상 형의 집사나 다름없었다”고 하소연도 했다. 특히 이번 일을 겪으면서 둘째에게서 “‘병신 새끼’라는 욕을 들은 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 다 말할 순 없지만, 어머니 부양 문제, 고부간의 갈등, 며느리간의 갈등,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불만 등 온갖 문제들이 뒤엉켜 오래전부터 쌓여온 해묵은 불만까지 모조리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제 형제는 법원의 조정 날이 아니면 만나지도 않는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싸움, 소송은 ‘맞불’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리겠다”는 으름장에 ‘파렴치한’ ‘패륜아’란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할퀴고 있다. 더 깊은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끔찍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 말마따나 “남보다 못한 가족”이 돼가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byul@hani.co.kr

▶유언장 미리 작성하라, 그러나…

삼성 일가처럼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는 형제들이나 ‘소송전’을 벌이는 건 아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지난해 상담 통계를 보면, 2010년에 비해 지난 한해 동안 상속 관련 상담 건수는 3.4배(185→632건)로 증가했다. 경제 상황 악화와 더불어 부모의 재산 중 자신이 얼마나 상속을 받을 수 있을지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부모 사후에 자식들끼리 유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진 않을까 우려해, 부모가 직접 유언 절차나 상속분 등을 문의해 오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상담소는 밝혔다. 또한 연락이 끊겼던 부모나 형제, 자녀들이 사후 재산이나 빚을 남긴 경우, 얼마를 상속받을 수 있는지, 한정 승인이나 상속 포기가 가능한지를 물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조경애 법률구조1팀장은 “가족 문제를 법정에 들고 가는 것을 정서적으로 꺼리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법을 통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를 찾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상속 문제가 소송으로 비화될 경우, 부모와 자식, 형제들의 양쪽 가족까지 얽히게 되면서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으로까지 치닫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핵가족화 심화와 더불어, 부양을 조건으로 생전에 미리 자식에게 상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되레 가족간 불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더라는 게 조 팀장의 얘기다. 상속 재산을 둘러싸고 자식들의 분란을 막기 위해서는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두는 게 좋다. 하지만 유언장이 있다고 해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조 팀장은 “원론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남녀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가 자리잡지 않는 가운데선 상속을 둘러싼 분란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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