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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권력형 국기문란 범죄다. 민간인에 대한 아무런 수사권도 없는 정부조직이 대통령에 대한 비방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동원해 한 개인을 유린한 사건이다.
또한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정부조직이 얽혀 벌인 이 사건의 광범위한 은폐·축소 시도는 세간을 더 경악하게 만들었다.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 중인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 주무관이 고백을 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검찰은 결국 재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은 과연 이 사건의 엄정한 제3자로서 수사할 수 있을까? 검찰은 무엇보다 ‘검찰이 수사 대상자’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장 전 주무관의 증언과 증거인멸 재판의 상고이유서 등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검찰이 증거인멸에 공조했다는 의심을 충분히 살 정황이 나온다. 특히 의혹을 풀 핵심 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이 현 법무부 장관이다. 민정수석실은 당시 은폐·무마 의혹의 중요한 축이다.
<한겨레> 디지털뉴스부는 장진수 전 주무관의 증언과 기록 등을 중심으로 민간인 사찰 은폐·축소 시도와 검찰 수사의 문제점 등을 그래픽으로 정리했다.
#예견된 부실수사
김종익(58·사진)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지원관실로부터 불법적인 사찰을 당했다. 2010년 7월 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4명을 형사처벌 하는 수준에서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수사를 방해한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도 진경락 전 총괄지원과장과 장진수 전 주무관 등 3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몸통은커녕 깃털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뒤늦게 드러난 당시 수사 상황을 보면 ‘부실수사’는 예견된 것이었다. 장 전 주무관의 증언을 보면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은 검찰 압수수색이 언제 들어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는 압수수색 이틀 전 장 전 주무관에게 “지원관실 컴퓨터를 물리적으로 조치하라”라고 지시했다.
최종석 행정관은 증거인멸 과정에 이용한 대포폰을 만들어 건넨 인물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직속 부하다. 최 전 행정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시내 한 호텔에서 ‘출장 서비스’ 형식으로 이뤄졌다. ‘청와대 대포폰’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검찰이 먼저 증거인멸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이 ‘검찰이 먼저 (증거인멸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이뤄진 압수수색 당시에도 “검찰이 서류를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검찰은 압수물을 담을 박스가 텅텅 비자 신문지를 구겨서 채워넣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노환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법무연수원장)이 이 사건을 청와대에 ‘직보’하며 수사를 조율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노환균 지검장이 세상에 미칠 파급 충격을 우려해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상의한 후 대포폰을 덮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을 거치지 않고 지검장이 청와대에 직접 보고를 했다는 의혹이다.
‘부실수사’ 논란이 끓었지만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10년 11월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미 다 수사했던 것을 다시 반복해봐야 똑같은 결론”이라며 “재수사는 불필요하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의혹의 대상이 된 권재진 법무부 장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 증거인멸 과정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민정수석실은 검찰을 비롯한 대한민국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곳으로 검찰과의 수사 조율 등이 이곳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 장 전 주무관의 주장이다. 2010년 7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은폐·무마를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던 최 전 행정관은 김진모 민정2비서관을 찾아가 “내가 연루돼 들어가면 민정수석실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김 비서관은 검찰 관계자에게 전화해 “어찌하여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질책했다는 게 장 전 주무관의 설명이다. 민정2비서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으로 김진모 당시 비서관은 현재 서울고검 검사로 재직 중이다.
민정수석실이 ‘입막음용’으로 장 전 주무관에게 돈까지 건넸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장 전 주무관은 “2011년 4월 중순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내게 5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그가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은 지 며칠 지난 시점이었다. 앞서 수사에서 사찰 보고라인으로 지목된 이영호-최종석은 모두 ‘영포라인’ 출신의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소속으로 비공식 조직 성격이 짙었다. 이 때문에 그 윗선이 영포라인의 ‘정점’인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과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이 나섰다면 이는 ‘비선조직’의 사찰에서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확대되는 문제다. 돈을 건넸다는 장석명 비서관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기도 하다.
문제는 당시 민정수석이 권재진 지금 법무부 장관(위 사진)이라는 점이다. 의혹의 핵으로 떠오른 민정수석실의 책임자가 검찰의 직속상관으로 앉아 있는 상황에서 서열과 조직을 중시하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노환균 지검장이 청와대와 ‘직접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청와대 쪽 당사자도 권 장관이었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검찰이 검찰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저 자리에 있는 경우에 수사가 제대로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2010년 9월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은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구속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진경락 지원관실 총괄기획과장의 가족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금일봉을 직접 전달한 사람은 최 전 행정관이었다. 대통령실장이 금일봉을 건네고 민정수석실의 검찰 수사 조율 움직임이 여럿 포착된 상황에서 수장인 민정수석이 돌아가는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권 장관 본인이 사건의 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새 특별수사팀은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이런 배경에 더불어 새로 꾸려진 특별수사팀 구성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우선 지휘라인이 대부분 고려대·티케이(TK) 출신이다. 권 법무장관은 대구 출신이고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오랜 고대 출신이다.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같은 고대 출신이다.
특별수사팀장인 박윤해 형사3부장은 축소 수사 의혹을 받았던 지난 수사 때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노환균 법무연수원장과 동향이다. 또 최종석 전 행정관이 “민정수석실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라고 따졌다는 김진모 민정2비서관과는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박 팀장은 경북 상주 출신인데 수사 대상자들이 주로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인 ‘영포라인’이다. 박 부장검사는 ‘공안통’으로 특수수사 경험은 거의 없다. 팀장 외 검사 3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의 수사력도 ‘살아있는 권력’을 대상으로 실체를 밝혀야 하는 사건의 중량에 비교하면 약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부실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또 장 전 주무관의 청와대 개입 폭로가 나왔지만 이번 재수사는 폭로 13일 만에 ‘떠밀리 듯’ 결정됐다. 검찰의 수사 의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법하다. 수사 독립성 보장을 위해 특임검사를 지명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입을 닫고 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위 사진)은 검찰 재수사 발표 뒤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내가 자료삭제를 지시하고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2000만원을 줬다”며 자신이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지원관실 활동을) 민간인 불법사찰로 왜곡하는 것은 현 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민주통합당의 정치공작”이라고 적반하장식 주장을 펼쳤다. 지난 수사에서 이영호 전 비서관과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며 그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던 것은 검찰이다. 이번 수사는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그래픽 조승현 sh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