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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오영자·임분이씨 끝내 실형…135일만에 농성 접어 / 박정기

등록 2012-03-11 19:55수정 2012-03-11 19:57

1988년 10월17일부터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에 들어간 유가협 회원들은 89년 2월27일 135일 만에 농성을 풀었다. 농성 열흘 만인 10월27일 이소선 회장(오른쪽)과 박정기 부회장(왼쪽)이 ‘진상규명 촉구 및 폭로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10월17일부터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에 들어간 유가협 회원들은 89년 2월27일 135일 만에 농성을 풀었다. 농성 열흘 만인 10월27일 이소선 회장(오른쪽)과 박정기 부회장(왼쪽)이 ‘진상규명 촉구 및 폭로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68
1989년 1월15일 유가협 임시총회에서 의문사 유가족들의 회원 인정 범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박정기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단체의 이름에서 실마리를 잡았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명칭 그대로 유가협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이의 유가족이 모인 단체이며, 현재 민주화운동에 나선 유가족의 모임이다. 군 의문사 사례를 보면 5공화국 시절 군 생활 도중 녹화사업 등에 의해 희생된 이들도 있지만, 민주화운동과 직접적인 연관 없이 희생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에 참여해온 유가족들은 이미 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유가협 회원들과 의문사 유가족들은 하나의 투쟁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회원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박정기가 말했다.

“다 같이 죽은 자식 끌어안고 사는 가족들인데 구분이 무에 필요합니껴? 이 자리에서 함께 밥 먹고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분들은 이미 우리 가족이에요.”

다시 반론이 펼쳐지면서 회의가 길게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논의를 마치고 투표로 이 문제를 결정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찬성으로 의문사 유가족들을 새 식구로 맞아들였다. 아울러 유가협 내에 의문사지회를 설립했다. 이로써 유가협은 배은심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호남지회에 이어 의문사지회를 두게 됐다. 이날 새로 가입한 회원들의 대다수는 지금까지 유가협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가협은 그 후 유가족 회원의 범위를 꾸준히 넓혀왔다. 마지막으로 회원이 된 이들은 2009년 1월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이다. 유가협은 참사가 벌어진 날부터 장례를 마칠 때까지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지난한 투쟁의 여정에서 시나브로 이들도 유가협의 일원이 되었다.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의한 희생자가 있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외연을 넓혀갈 것이다. 하지만 박정기의 바람대로 유가협이 꿈꾸는 세상은 ‘더이상 회원이 늘지 않는 세상’이다. 국가와 자본에 의한 죽음이 없는 세상이다.

그해 2월2일 국회의 3대 특위 중 하나인 ‘양대선거부정 조사특위’에 정명화(정연관의 아버지)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의 증언은 아들 정연관이 군 복무 중이던 87년 12월14일 부재자투표 직후 죽음에 이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2월22일 민정당이 불참한 ‘5공비리 조사특위’에서 야3당 의원들은 의문사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는 3월22일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청문회는 열리지 못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유가족들이 청문회 연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이유는 민정당 의원들과 가해자 쪽 증인들의 불참, 그리고 텔레비전 생중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5공특위 위원장이었던 이기택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없을지도 모르니 재고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유가족들은 이를 거부했다. 유가협은 회의를 통해 ‘공정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면 반쪽짜리 청문회를 하느니 일정이 연기되더라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로써 의문사 진상 규명 문제는 앞을 알 수 없게 되었다.

2월27일, 유가족들은 5공특위 야3당 의원들이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기독교회관 농성을 끝냈다. 135일 만이었다. 이틀 전 재판에서 오영자·임분이가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한 요인이었다. “오영자·임분이가 석방될 때까지 농성을 풀지 않겠다”고 구호를 외쳐왔지만, 8개월형을 다 채울 때까지 마냥 농성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기는 두 어머니가 구속된 채 농성을 끝내는 심정이 편치 않았다. 지난 석달 동안 유가족들은 번갈아가며 매일 두 어머니를 면회하고 검찰청과 법원 등에 찾아가 항의시위를 했다. 그리고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5000여명에게 지지서명도 받았다.

그 며칠 전 면회를 통해 만난 두 어머니는 수십일에 걸친 단식농성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오영자는 유서까지 써놓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문익환 목사 등 재야 원로들이 방문했을 때 “전두환·이순자를 구속하라!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내 자식을 살려내라!”고 쓴 혈서를 건네주려다 교도관에게 압수당하기도 했다.

그동안 유가족들은 험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숱하게 연행되었지만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두 어머니의 실형은 불가항력이었다. 박정기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이 백담사로 도망칠 때보다 억울하고 가슴이 아팠지. 어떤 어마이가 유치장에 갇혀도 다 석방시켰는데 두 어마이만 빼낼 수 없었으이. 유서를 쓰는 심정이 어땠을지 말로 다 어떻게 표현하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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