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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결혼도 일도 못하는 37살…간병이라는 족쇄

등록 2012-03-02 21:42수정 2012-04-18 10:56

서울북부병원의 한 병실에서 지난달 20일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를 딸이 간병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긴 간병을 하면서 가족들까지 신체적·정신적으로 병을 얻는 경우도 다반사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서울북부병원의 한 병실에서 지난달 20일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를 딸이 간병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긴 간병을 하면서 가족들까지 신체적·정신적으로 병을 얻는 경우도 다반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가족
2007년 11월5일. 날짜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을 기점으로 정유민(37·가명)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찬바람이 불던 그날은 여느 날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저녁식사 준비에 한창이었고, 정씨는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휴가를 떠날 생각에 들떠 여행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반신욕을 하겠다고 욕실에 들어간 아버지가 한 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그날은 조용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기록해도 될 만한 날이었다.

6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중증장애인이 되셨죠

똑똑, 노크를 했지만 기척이 없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욕실 바닥에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놀라서 비명을 질렀던가. 어떻게 119구조대에 전화를 걸고, 병원으로 달려갔는지 황망한 기억은 남의 일인 듯 희미하다. 그날 밤, 아버지에겐 급성뇌경색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혈전용해제로도 막힌 혈관은 뚫리지 않았고, 뇌부종이 심해져 두개골을 여는 수술까지 이어졌다. 은퇴 뒤 매일 등산을 하며 ‘건강 하나는 자신있다’던 아버지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이미 뇌의 80%가 손상됐다고 했다. 오른쪽 신체 마비, 언어능력 상실, 연하(삼킴) 곤란 증 등 생경한 말들도 쏟아냈다. 실질적으로 ‘식물인간’이란다. “임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꺼냈다. “너무 늦게 발견해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의사의 말이 맘을 후벼팠다. 상상도 못 했던 아버지와의 ‘이별’이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꿈쩍도 않던 아버지의 왼손이 움직인 건 입원 23일째 되는 날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기적”이라고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 생활의 시작이었다. 병원에 머물던 첫 6개월엔 전문 간병인을 썼다. 재활병원으로 옮긴 뒤 3년 동안 낮에는 간병인이, 밤에는 정씨가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아버지를 돌보는 생활을 했다. 나날이 불어나는 치료비도 부담스러웠거니와 아버지에게 살갑지 못한 딸이었다는 후회 때문에 결심한 일이었다. 퇴원 뒤 집에서 간병이 시작되면서 간병은 전적으로 정씨와 어머니의 몫이었다.

스스로 각오한 일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간병은 쉽지 않았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는 오롯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중증장애인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식사와 재활훈련은 물론 양말 한쪽 꿰는 일까지 전적으로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잠자는 시간조차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소변통을 비우기 위해 새벽에도 두어차례 일어나다 보니,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렸고 바이오리듬이 깨지면서 신경도 예민해졌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아버지의 벗은 몸을 씻기는 일은 미혼인 그에게 육체적 고단함을 넘어 정신적 버거움까지 안겨주는 일이기도 했다.

끝도 없이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 마음은 만신창이가 돼갔다. 한 발 전진했다가 두 발 후퇴하는 일이 반복됐다. 아버지는 왼손을 움직이고 눈을 떴지만, 일주일 만에 요로결석으로 전신마취를 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결석은 세번씩이나 아버지를 수술실로 내몰았다. 1년여의 재활훈련을 통해 스스로 음식을 씹어 넘기기 시작했던 아버지는 2010년 결석 제거 수술 도중 과다 출혈로 인한 후유증으로 다시 콧줄을 통해 유동식을 섭취하는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병원 생활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언제까지 물을 부어야 하나. 그저 모두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쑥 화나고 우울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열심히 살아요

그 무렵 감정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밤마다 좁은 보호자 침상에 누워, 같은 병실의 환자나 보호자가 코 고는 소리, 잠꼬대하는 소리에 잠 못 드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불쑥불쑥 짜증이 치솟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발끈했다. 별일 아닌 일로 병실 사람들과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자”고 말이라도 꺼낸 날엔 분노가 폭발해 고함까지 내질렀다. 함께 간병을 하는 어머니가 가장 많이 부딪치는 상대가 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주말에나 삐죽 얼굴을 비치는 오빠 부부한테 서운한 마음도 쌓였다. 따뜻하게 아버지 손 한번 잡아주지 않고 왔다가 휙 가버리는 오빠 부부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저 의무감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 같았다. 치료비 등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이유로 오빠가 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온몸 바쳐 간병을 하는 나는 뭔가’ 울컥해지기도 했다.

병상 옆에 묶인 일상에 ‘나’는 한없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그 생각에 우울했다. 30대 초반에 간병을 시작했는데 벌써 37살이다. 결혼도 못 했고, 프리랜서로 간혹 일을 하지만 안정적이진 않다. 미래가 불안하다. 경제적 안정을 찾으며 차곡차곡 인생 설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자연히 친구들과의 만남 횟수도 줄어들었다. 솔직히, 결혼에 대한 생각은 많이 접었다. 오랜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처지는 남들과 다르다’는 자격지심 같은 것도 생겼다.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싶어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하다. ‘간병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아버지를 지켰는데 지금 손을 뗀다면…’ 하는 걱정이 그런 맘을 금세 덮는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족쇄처럼 들러붙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가 방긋 웃는다.

불안할 때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아버지를 간병하는 딸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답은 같다.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 그렇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살지는 못했을 거야.’ 그 생각으로 제2의 인생 설계도 해본다. 기왕 아버지를 간병하는 게 ‘직업’처럼 돼 버렸으니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매번 같은 답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최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야말로 또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이기도 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회복 기미가 보이질 않는 환자를 보며 간병하는 가족은 ‘정성이 부족했나’ 공연히 화살을 제게 겨누고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런 좌절감, 자책감, 우울감은 간병이 시작된 뒤 3~6개월에 최고조에 이릅니다. “완전히 바뀐 환경에적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서울북부병원의 길민정 의료사회복지사는 설명합니다. 이런 감정을 묵히면 병이됩니다. 이럴 땐 병원 상담실을 노크하세요. 툭 털어놓고 심경을 얘기하는 것, 치유는 거기서도 시작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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