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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왕 없는 1박2일공주들 반란을 진압하라

등록 2012-02-24 20:20수정 2012-04-18 10:46

밸런타인데이 때 아빠를 외롭게 한 무심한 세 공주님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아빠가 야심차게 준비한 요리 함께 하기 대작전! 온갖 재료에 사랑까지 듬뿍 말았더니 ‘꼬마김밥’이 ‘왕김밥’으로 커져버렸네요.
밸런타인데이 때 아빠를 외롭게 한 무심한 세 공주님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아빠가 야심차게 준비한 요리 함께 하기 대작전! 온갖 재료에 사랑까지 듬뿍 말았더니 ‘꼬마김밥’이 ‘왕김밥’으로 커져버렸네요.
[토요판] 가족
▶ 아빠의 OTL, 존재감 프로젝트

‘하니’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밤낮없이 울면서 달립니다. ‘아기공룡 둘리’와 <은하철도 999>의 ‘철이’는 엄마 찾는다고 ‘1억년 전 옛날’과 ‘머나먼 우주’를 헤맵니다. 그런데 하니랑 둘리, 철이가 아빠 찾는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예, 엄마만 찾습니다.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란. 아, 어쩌다 우리 아빠들은 집에서 ‘왕따’가 됐을까요?

“아빠는 나쁜 녀석이야.” 아이들 방에서 갑자기 들려온 험담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아하!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가 아직 한글을 못 깨친 6살 셋째한테 책을 읽어준 것이군요. 동화작가로도 활동하는 선배가 몇 해 전 선물한 책의 제목을 읽은 것뿐인데 평소 아이들에게 해준 것 없는 아빠여서 그런지 ‘뜨끔’했습니다.

제 집에는 공주님 세 분과 여왕님 한 분이 계십니다. 표현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실, 전 집에서만큼은 제왕입니다. 요즘 세상에 아이 셋 키우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빠는 평일이면 술병과 더불어 별보기 운동을 실천합니다. 무슨 구국운동을 하듯 말이죠. 연일 달렸으니 주말에는 늘어져 있기 십상입니다. ‘놀아줘 대마왕’ 공주님들과 일상에 치여 사는 ‘눈이 찢어진’ 여왕님은 그런 제왕 아빠에게 반란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공주님들과 여왕님은 얼마 전 반란을 실천했습니다. 디데이는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그 전날, 여지없이 별보기 운동에 매진하던 제왕에게 둘째가 전화를 합니다. 내일이 밸런타인데이이니 선생님 선물용으로 초콜릿을 사달라는군요. 귀갓길, 동네슈퍼에서 ‘기왕이면 큰 것으로 사다 주자’ 싶어 잘 포장된 2통을 삽니다. ‘선생님한테 선물도 하니, 설날 받은 용돈으로 내 것도 있겠지?’ 하는 은근한 기대를 안고 말입니다.

밸런타인데이의 충격 만회
꼬마들에게 점수따기 작정
함께 장 보고 요리해볼까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일찍 귀가했건만 국물도 없습니다. 심지어 둘째와 셋째는 아빠 앞에서 자기들끼리 초콜릿을 나눠먹는 ‘자매애’까지 펼쳐 보입니다. 저, 초콜릿 완전 좋아하는데 말이죠.

이쯤 되면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감을 다시 알려주어야 할 때가 온 같습니다. 마침 주말에 반란 방조자(?)인 아내가 1박2일로 집을 비운다니 점수 좀 따서 ‘진압’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뭘 하죠? 아마도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겠죠? 놀이공원? 날씨를 확인해볼까? 이런, 우수를 앞두고 최강 추위가 찾아온다는군요. 그림 전시회?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문제가 있군요.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 큰아이가 요즘 사춘기입니다. 사람 많은 곳을 자꾸 피하네요. 갑자기 피로가 몰려옵니다. 눈가의 주름 한 줄 추가!

급하게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구조 요청을 해봅니다. “영화 한 편 본 뒤 외식 어때요?” “스케이트장 어떨까요?” “난 아이들 데리고 근교 딸기농장 체험 간다. 너도 가봐.” 아, 더 피곤해집니다. 뚜벅이족인 저로서는 엄두가 안 납니다. 특히 딸기농장 간다는 학교 동기의 메시지에는 주눅까지 듭니다. 확 친구 끊어?

“예쁜 따님들과 장을 같이 보고 요리를 함께 하는 것은 어때요?” 오호, 솔깃한 제안입니다. 요리 함께 하기로 낙찰! 아이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듣습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각종 요리 이름이 다 튀어나옵니다. ‘내가 그걸 할 수 있었으면 식당을 냈지.’

마침내 식단 결정. 아이들이 함께 만들 수 있는 요리로 결정합니다. 주말이니 ‘아점’(아침 겸 점심)으로 꼬마김밥 만들기, 간식은 식빵피자 만들기, 저녁은 무조건 외식!(아빠도 좀 살자.) 다음날 아점은 해물만두 만들기.

아랫집 아이들까지 총출동
돌아온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

식단을 짰으니 재료 구입을 위해 출동. 그런데 뭘 사야 하나? 다시 급하게 포털사이트 뒤지기 돌입. 레시피 확인하고, 메모지에 적어 장을 보러 갑니다. “아빠, 난 오이 넣는 거 싫어. 당근도.” “식빵피자에 꼭 피망 넣어야 해요?” 흐음. 시작부터 난항입니다.

좋다. 일단 레시피에 있는 대로 재료를 사 준비한 뒤 각자 먹고 싶은 것만 넣기로 합니다. 잘한 결정인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들과 식사를 할 때 아빠는 가장 제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채소가 얼마나 좋은 건데” 등등 시시콜콜 지적질 대마왕으로 변신합니다. 이번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드니 맛이나 모양보다는 만족감이 최고입니다. 비록 처음 계획이었던 꼬마김밥은 이것저것 넣은 탓에 ‘왕김밥’이 됐지만 말입니다.

난이도 중급으로 여겼던 식빵피자 만들기는 더 쉽습니다. 이미 요리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식빵에 그림 형식으로 토핑을 얻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햄만 잔뜩 넣는 녀석도 있습니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맛이 기가 막힙니다. 조금 더 만들어 아랫집 친구에게 호기 있게 선물까지 합니다.

그나저나 요리 만들기의 재미가 끝난 뒤 눈에 들어온 산더미 같은 설거지의 중압감은 어찌하나. 전 이미 배터리가 바닥입니다. “아빠, 내가 도와줄게.” 고사리 같던 아이들의 손이 언제 저렇게 큰 것일까요. 울컥합니다.

다음날, 난이도 상급 해물만두 만들기는 벌써 입소문을 낸 아이들의 재잘거림 탓에 윗집, 아랫집 아이들까지 총동원됩니다. “자기가 만든 것은 집에 가져가는 거다.” “네, 좋아요.” 갑작스럽게 어린이집을 차린 느낌입니다. 모양도 가지가지, 세상에 둘도 없는 오만가지 만두가 만들어집니다.

부산했던 1박2일이 지나고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아빠와 보낸 시간을 엄마에게 재잘재잘 이야기해 줍니다. 아내가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절 쳐다봅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 남아 있던 만두는 아내가 폭풍 흡입으로 처리해 줍니다. “여보, 다음 주말에는 날 위해 부탁해.” 앗, 그건 아닙니다.

밸런타인데이 반란 진압작전으로 시작된 아빠 존재감 심어주기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습니다. 아이들에게 ‘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받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화이트데이에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제가 먼저 사탕을 돌려야겠습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달콤하답니다.

세 공주님의 아빠 이영환 cham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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