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49)씨는 지난해 6월 결혼했다. 세번째 결혼이었다.
예상하듯,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만 행복하면 되지 부끄러울 게 뭐람’ 하다가도 ‘오죽하면 세번이나 결혼을 하겠냐’는 수군거림이 신경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한 여성 작가의 정치적 발언이 도마에 오르자 인터넷 검색창에 ‘○○○의 전남편들’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 게 이 나라가 아니던가. 심지어 “세번째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도 상대방은 삼혼이 아니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는 게 결혼 정보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씨의 첫번째 결혼 상대는 4살 차이 나는 교사였다. 고향 친지의 소개였다. “남자는 다른 것 없다. 성실하고 똑똑하면 그만이다.” 그 말 한마디에 떠밀리다시피 한 결혼이었다. 만난 지 딱 한 달 만, 24살 되던 해인 1987년의 일이다. 남편은 술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신혼에도 밤 12시를 넘겨 들어오기 일쑤였고, 마셨다 하면 인사불성이었다. 그런 날이면 남편은 꺼이꺼이 울면서 새어머니에게 구박받았던 어린 시절 얘기를 하고 또 했다. 지나치리만큼 말수도 적었다. 쉬는 날에도 말없이 텔레비전만 봤다.
결혼 1년 만에 첫딸이, 3년 만에 둘째 딸이 태어났다. 아빠 없는 아이들로 키울 수는 없었다. 아이들만 보고 살겠노라 다짐했다.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술에 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울었다. ‘사랑한다’는 표현은커녕, 결혼기념일에도 형식적인 선물 한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까짓, 그런 건 참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은 견디기 힘들었다. ‘공부는 잘하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남편은 아이들에 대해 묻는 법이 없었다. 우울증이 깊어져 병원까지 드나들었다. 그 무렵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댔다. 10원도 가져다주지 않는 생활이 계속됐다. 차라리 애들 키우며 혼자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19년간의 결혼이 그렇게 끝났다.
“날아갈 것처럼 시원했다.” 이혼 뒤 느낀 솔직한 감정이다. 두 아이랑 먹고살기 위해 옷가게를 차렸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옷먼지 속에 파묻혀 살았다. 이혼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외로움’은 어쩌지 못했다. 아이들이 집을 비운 날,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 어두운 집으로 걸어들어가는 쓸쓸함이 싫었다.
그 무렵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다.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했다”는 그는, 느낌이 좋은 사람이었다. 전남편과는 달리 술은커녕 담배도 멀리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에게만 자상한 아빠가 돼 준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고 여겼다. 서두르는 그 남자와 혼인신고를 했다. 행복은 몇달 가지 못했다. 그는 출근한 직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댔다. ‘어디냐’, ‘누구와 함께 있냐’는 질문과 의심이 끝없이 이어졌다. 전부인의 외도에서 받은 상처에서 미처 벗어나지도 못한 것이다. 알고 봤더니 부인과의 관계도 모두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두번째 결혼도 이렇게 끝났다. 다시는 결혼을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또다시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2번의 실패, 남들 말처럼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매일 술만 마시던 첫번째 남편에 대한 연민도 생겨났다.
가슴속 불길이 잦아들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다섯살 연상의 그도 2번의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사사건건 따져 묻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데 지쳐 전부인들과 이혼했다고 했다. “혼자서 아이들을 참 잘 키웠다”는 별것도 아닌 그의 말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또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겠다”는 청혼도 든든했다.
1년을 망설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딸들이었다. “엄마, 이혼 뒤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젠 엄마도 좋은 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부모의 이혼 뒤 비뚤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이렇게 자라 있었다. 세번째 새 출발에 용기를 냈다.
서둘지는 않기로 했다. 그에게도 장성한 1남1녀가 있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더러 부모가 결혼했으니 무조건 가족이 되자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두 집 살림’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뒤 살림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두 집을 오가는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내 얘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탁에서 주고받는 소소한 대화가 이렇게 큰 기쁨이란 걸 새삼 깨닫고 있다. 남편에게 맞추다 보니 못 마시던 소주도 이젠 2~3잔은 비울 수 있게 됐다. “오늘은 회식이 있어 늦을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먼저 얘기해주는 것도 참 고맙다. 늦는다고 굳이 꼬치꼬치 따져 묻기보다, 그의 말을 믿어주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낯선 이씨와는 달리 남편은 표현에도 적극적이다. “사랑 표현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그를 위해 요즘은 문자메시지로라도 사랑 표현을 하려고 한다.
이제 고작 결혼 7개월 차. 허니문의 단꿈이 지나고 나면 갈등과 권태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그도 잘 안다. 중요한 건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대화를 통해 풀어갈 작정”이다. 어차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게 결혼 아닌가. “망설이고 있다면 용기를 내라.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 그가 굳이 실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까닭이다.
글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취재 및 촬영협조: 행복출발 더원, 듀오, 반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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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베테랑 백순영 커플매니저에게 들어봤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삼혼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며느리도 모른다.’ 2010년 전체 결혼 가운데 재혼의 비율은 21.86%(통계청). 이 가운데 삼혼(혹은 이상)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삼혼자 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만큼 많다고 여기지 않아 따로 조사하지 않는다”는 게 통계청 관계자의 답변이다. 결혼 정보업체 듀오의 백순영 팀장도 “삼혼을 희망하는 고객은 아직까지는 그리 많지 않다”고 얘기한다. “사회의 부정적인 편견과 오해 때문에 굳이 삼혼이라고 밝히지 않거나,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삼혼자들에게 따라붙는 ‘유별나고 이해심 부족한 사람’이라는 편견은 타당할까? 사람 나름이다. 분명한 건 처음부터 이혼을 작정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백 팀장은 “되레 세번째 결혼을 희망하는 이들 가운데는 행복한 삶의 기준을 조건보다는 가정과 사랑에 두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재혼(두번째 결혼) 희망자들 상당수는 전 배우자보다 외모나 ‘스펙’이 나은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재혼을 통해 실패를 만회하고자 하는 ‘보상심리’ 때문”이란 게 백 팀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새로운 결혼으로 상처를 덮겠다는 생각은 또다른 실패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선 “누구의 잘못으로 이혼을 했든 새 사람을 만나기 전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삼혼의 경우, 특히 가족의 지지가 성공의 필수적 요건이다. 당사자들이 서로 마음에 들어하는데도, ‘또 한 번의 실패’를 염려한 가족들의 만류로 삼혼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게 백 팀장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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