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캐럴과 캠프 머서(경기 부천), 캠프 페이지(강원 춘천)의 환경오염공동조사단 일원으로 활동한 양임석 환경위해성연구원장이 고엽제의 성분과 조사 현황 등에 대해 칠판에 직접 써가며 설명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양임석 환경위해성연구원장
미군기지 고엽제 조사 참여…“안심 못한다”
군기지 환경 종합조사해 백서·복원대책 필요
미, 한국매립 고엽제 처리진상 빨리 밝히길 지난 5월 온 나라가 고엽제 논란으로 뜨거웠다. 경북 칠곡군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 드럼통 250여개를 직접 묻었다는 퇴역 미군병사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이 극도로 팽배해진 것이다. 한·미 두 나라가 조사에 나섰고, 9월 초 고엽제 물질은 제거된 것으로 보이며 인체에 무해할 정도의 일부 성분만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럼 이제 모두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1990년대 시작된 군기지 환경오염 논란과 치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으며 캠프 캐럴과 캠프 머서(경기 부천), 캠프 페이지(강원 춘천)의 환경오염 공동조사단원으로 참여한 양임석 환경위해성평가연구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군뿐 아니라 우리 군기지를 포함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관리와 복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좀 잠잠해졌지만 아무래도 고엽제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군기지 세 곳 조사에 참여하셨는데, 결과가 발표된 뒤에도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나름 열심히 조사했다. (고엽제 매립 증언자인) 하우스가 지목한 후보 지역 세 곳도 살펴봤지만 고엽제 수백 드럼은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고엽제의 원재료인 2,4-D와 2,4,5-T라는 제초제 성분이 미량 검출됐다.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는 이 두 가지 제초제를 섞은 물질이다. 그래서 고엽제가 매몰돼 있었던 가능성은 큰데 반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런데 미국이 매립했던 고엽제를 어디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한 기록을 찾아서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못 찾았는지 주지 않고 있다. 수많은 종류의 다이옥신 중 고엽제에 들어 있는 다이옥신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정말 안전하게 처리했는지 최대한 빨리 진상을 공개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없나?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주한미군 누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매번 조사해야 하나? 캠프 캐럴 조사에 우리 쪽 예산만 15억원가량 들었다. 지금이라도 고엽제에 관한 광범한 조사를 선제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전문가를 모으고 미국 쪽 협력도 끌어내고 해서 들여온 고엽제의 전체 분량과 사용량, 나머지 처리 내역 등이 모두 담긴 고엽제 백서를 내야 한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일대에 살포한 제초제와 고엽제는 수십년 동안 다 씻겨 내려가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포지역 환경조사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군기지 전반의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 같다. “안타까운 점이 많다. 우선 역사를 살펴보자. 1967년 발효된 소파(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는 ‘대한민국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미국은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원상회복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들어 미군이 2000년 이전 기지를 반환할 때 오염정화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조항은 환경오염이 아닌 시설 원상복구와 관련된 것이다. 미군이 기지 내에 다리를 놓거나 산비탈을 깎아 탄약고를 만들었다고 치자. 반환할 때 다리와 탄약고를 철거해야 할까? 그럴 필요 없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오염시킨 땅을 정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었다. 참고로 토양오염 정화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법률이 만들어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미국이 1980년, 우리나라는 1996년에 토양환경보전법이 제정됐다.” -협상을 잘못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2000년 용산 미군기지에서 포르말린 방류 사건이 일어나고) 2001년 소파 부속서에 환경 조항이 들어갔다.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 Known, Imminent & Substantial Endangerment for Human Health and Environment), 이른바 ‘키세’ 조항이다. 이 경우에만 미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인데 이 또한 잘못됐다.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 “키세가 무엇이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전세계 1만4000여개 기지의 환경오염 정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화 우선순위를 정했다. 바로 엔피엘(NPL: National Priority List)이다. 이를 위해 위해성 평가(Risk Assessment)를 하는데, 여기서 키세의 경우 1순위 정화 대상으로 삼게 했다. 미국은 땅이 넓다. 유엔 화학무기금지기구에 근무할 때 유타주, 네바다주 등의 군기지 환경정화 현장에 가봤는데, 땅을 다 파헤쳐놓은 게 전부더라. 수십년에 걸쳐 비 맞게 하고 햇볕 쬐고 그냥 그렇게 자연정화를 하는 것이다. 주거지역까지 거리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그렇게 한다더라. 반대로 오염도 심하고 주변에 사람도 많이 있어 키세 조항에 해당하는 지역은 최우선 정화 대상이다. 정화 우선순위를 정하는 개념이지 복구를 하고 말고 하는 기준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냐. 땅이 좁다. 어디나 사람이 살고 (오염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어디서든 올 수 있다. 우리의 오염정화 기준은 키세 같은 게 아니다. 전체 국토를 주거지, 농지, 학교, 병원 등인 ‘가’급과 군용지, 잡종지 등인 ‘나’급으로 나눠 각각의 환경기준을 정해 놓고 관리한다. 우리는 미국과 경우가 다르고 미국에서 키세의 의미도 그게 아닌데, 그냥 덜컥 받아버린 것이다.” -당시에 말리지 않고 뭐 하셨나?(웃음) “국방부 환경과장 마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화학무기금지기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누구라도 와서 물었으면 이런 얘기 다 해줬을 텐데, 아무도 안 물어오더라. 결국 협상의 프로페셔널리스트(전문가)가 없었던 게 문제다.” -그럼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에스시엠(SCM,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의제에 넣든지 해야지. 부산의 캠프 하얄리아의 위해성 평가(RA)를 캐나다 업체에 맡겼는데 3억원 넘는 돈이 들었다. 조사 결과 딱 세 군데만 리스크가 있다고 나왔다. 그 세 곳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면 작업자와 그 주변 인부들이 위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위해성을 없애고 예방하기 위한 비용이 3억원 든다는 결론을 내놨다. 3억몇천만원을 들여 조사해 3억원 투입하라는 결론을 내놓는 것도 우습지만, 미국은 3억원도 왜 내냐며 버텼다. 묻은 상태로는 리스크가 없지 않으냐, 키세 조항에 해당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아니더라도 기준 초과면 복원해야 한다. 3곳 말고도 기준치 넘은 곳은 다 정화작업을 해야 했다. 그 예산이 130억원이다. 이런 식으로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1차 반환된 기지 토양 및 지하수 정화비만 약 1400억원이고, 기타 철거비 등을 합친 복구비용은 약 2000억원이다.” -군 출신이신데, 미국에 할 소리는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뭔가 새로운 것 같다. “요구할 건 분명히 요구해야지. 미국이란 핵우산 속에서 우리가 이만큼 커오지 않았나. 그리고 외국에서 살아 보니 미국이란 나라가 참 무섭더라. 화학무기금지기구에서 일할 때 사무총장이 브라질 외교관 출신이었다. 이 사람이 요르단에서 이라크 장관을 만나 미국에 미운털이 박혔다. 미국이 곧바로 작업에 나서더라. 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 폴란드 등이 행동대원으로 나서서 업무 과실을 핑계로 ‘사무총장 물러나야 한다’고 흔들었다. 미국은 배후에서 조용히 있고. 중국 같은 나라가 반대 좀 하다가 결국 표결로 갔는데, 상당수 국가가 기권하고 서방권과 한국·일본 등이 사임 쪽에 서니,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우리 군기지 환경복원 문제는 어떤가? “첫 사례가 1999년부터 추진된 부산 문현동 군수기지사령부 제2정비창이다. 국방부 환경과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기름이 나온다고 해서 가봤더니 정말 엉망진창이더라. 당시 오염 정화 비용으로 80억원을 신청했는데, 장관이 놀라더라. 지금 돈으로 따지면 수백억원 되는 큰돈이었다. 조사하고 복원계획까지 세우고, 이듬해 난 화학무기금지기구로 파견을 갔다. 다녀와서 보니 정화비용이 애초 계획보다 50억원 늘어 130억원이 됐고, 여기에 토양오염 복구하느라 사업이 지연되는 바람에 금융비용 250억원을 물어냈더라. 기지 하나 정화 복원에 400억원 가까운 돈을 들인 셈이지. 환경문제란 게 놔둘수록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유엔 화학무기금지기구에는 어떻게 가게 되셨나?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2000년 파견 형식으로 국방부를 떠났다. 환경과장 6년 하고 나니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3년을 예상하고 갔는데 2008년까지 꼬박 8년2개월 동안 일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기술지원부장으로 일했다. 직원 30여명과 함께 화학무기 사찰관용 장비와 물자 구입, 사찰관 훈련, 전세계 20여곳 화학실험실 관리, 화학무기 폐기 공장 주변지역 환경위해성 평가 등을 했다.”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해봤는데, 환경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환경은 한 개인이나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 마인드와 개념이 중요하고 이를 실행하는 정책 수립이 중요하다. 환경부를 두는 것보다도 농림부, 국토해양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모든 부서에 환경 부서를 만들고 부처별 특성에 맞는 개념 정립과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즉 모든 부처가 환경에 대한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미국을 봐라. 환경부가 없다. 환경청이 있다. 영어로는 이피에이(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인데, 디파트먼트(부)가 아니라, 중앙정보국처럼 에이전시(국)다. 그래서 여기서 내려가는 환경 관련 문서는 모두 대통령 지시로 내려간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가야 한다.” -오래 외국생활을 했는데, 바깥에서 바라본 남북문제는 어떻던가? “북한은 200여개 유엔 회원국 중에서 앙골라, 이집트, 소말리아, 시리아와 함께 화학무기금지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5개 나라 가운데 하나다. 북한에 화학무기가 2500톤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한이 기술과 인력을 제공하겠다며 화학무기금지협약 가입을 설득해 화학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도 용기 부식 등으로 인해 화학무기가 자체적으로도 큰 재앙이 될 수 있어 응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웃음)” 모든 부처가 환경마인드 갖추고 정책 마련해야
북한 화학무기 2500t…남한서 금지협약 설득을
화학무기와 환경문제, 남북협력 계기 될 수 있어 -화학무기가 남북 협력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니 역설적이다. “화학무기뿐 아니라 환경문제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군기지 정화 노하우로 북한의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 정화를 도울 수 있고, 지력 회복 사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위 면적당 농업생산력이 북한은 남한의 5분의 1에 불과한데, 나무를 땔감으로 써 산이 벌거숭이고 비가 오면 표토와 퇴적토가 다 쓸려가기 때문이다. 남한에 넘쳐나는 음식물쓰레기 등을 활용해 부식토를 만들어 지원하면 어떨까 싶다. 정치적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이런 환경협력 사업 등을 통해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과 북이 격차를 줄여야 통일도 가능하다. 현금 지원은 반대하지만, 여러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을 잘살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격차가 나면 남한은 재정부담 걱정에, 북한은 완전히 먹힌다는 생각에 통일을 꺼릴 수밖에 없다.” -다방면으로 여러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2009년 귀국 뒤엔 어떤 활동을 하셨나? “비상재난안전협회 소속 녹색재난안전연구원장으로 일하다가 최근엔 환경위해성연구원을 만들어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군·관 환경협력 강화 방안, 고엽제 사용 기초조사, 환경 관련 각종 용역보고서를 작성했고, 재난관리 기본교범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재난별로 법령 체계와 관련 부서들이 너무 복잡해 재난관리 시스템을 좀더 단순하게 해야 한다. 식량, 환경, 에너지 등 안보 요소가 다양해졌고, 정전 사태에서 보듯이 기술개발에 따른 테크놀로지 재앙과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도 많아졌다. 이런 각종 재난에 대비해 군의 지휘·명령체계처럼 간명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30년 동안 군인으로 일하셨고 외국에서도 오래 사셨다. 지금 한국 사회가 어때 보이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줄 말이 있다면? “한마디로 시끄럽고 복잡하며 너무 사회가 들떠 있다. 이제 국가나 개인이 내면적 성숙도를 가꾸어야 할 때다. 임관한 뒤 10년간 공부를 했고, 10년은 연구·교육·정책 수행했고, 나머지 10년은 국제기구에서 보냈다. 세금으로 공부했고, 나라가 밀어줘 국제기구에서도 일할 수 있었다. 국민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산다.” 인터뷰/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군기지 환경 종합조사해 백서·복원대책 필요
미, 한국매립 고엽제 처리진상 빨리 밝히길 지난 5월 온 나라가 고엽제 논란으로 뜨거웠다. 경북 칠곡군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 드럼통 250여개를 직접 묻었다는 퇴역 미군병사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이 극도로 팽배해진 것이다. 한·미 두 나라가 조사에 나섰고, 9월 초 고엽제 물질은 제거된 것으로 보이며 인체에 무해할 정도의 일부 성분만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럼 이제 모두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1990년대 시작된 군기지 환경오염 논란과 치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으며 캠프 캐럴과 캠프 머서(경기 부천), 캠프 페이지(강원 춘천)의 환경오염 공동조사단원으로 참여한 양임석 환경위해성평가연구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군뿐 아니라 우리 군기지를 포함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관리와 복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좀 잠잠해졌지만 아무래도 고엽제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군기지 세 곳 조사에 참여하셨는데, 결과가 발표된 뒤에도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나름 열심히 조사했다. (고엽제 매립 증언자인) 하우스가 지목한 후보 지역 세 곳도 살펴봤지만 고엽제 수백 드럼은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고엽제의 원재료인 2,4-D와 2,4,5-T라는 제초제 성분이 미량 검출됐다.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는 이 두 가지 제초제를 섞은 물질이다. 그래서 고엽제가 매몰돼 있었던 가능성은 큰데 반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런데 미국이 매립했던 고엽제를 어디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한 기록을 찾아서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못 찾았는지 주지 않고 있다. 수많은 종류의 다이옥신 중 고엽제에 들어 있는 다이옥신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정말 안전하게 처리했는지 최대한 빨리 진상을 공개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없나?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주한미군 누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매번 조사해야 하나? 캠프 캐럴 조사에 우리 쪽 예산만 15억원가량 들었다. 지금이라도 고엽제에 관한 광범한 조사를 선제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전문가를 모으고 미국 쪽 협력도 끌어내고 해서 들여온 고엽제의 전체 분량과 사용량, 나머지 처리 내역 등이 모두 담긴 고엽제 백서를 내야 한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일대에 살포한 제초제와 고엽제는 수십년 동안 다 씻겨 내려가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포지역 환경조사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군기지 전반의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 같다. “안타까운 점이 많다. 우선 역사를 살펴보자. 1967년 발효된 소파(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는 ‘대한민국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미국은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원상회복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들어 미군이 2000년 이전 기지를 반환할 때 오염정화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조항은 환경오염이 아닌 시설 원상복구와 관련된 것이다. 미군이 기지 내에 다리를 놓거나 산비탈을 깎아 탄약고를 만들었다고 치자. 반환할 때 다리와 탄약고를 철거해야 할까? 그럴 필요 없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오염시킨 땅을 정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었다. 참고로 토양오염 정화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법률이 만들어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미국이 1980년, 우리나라는 1996년에 토양환경보전법이 제정됐다.” -협상을 잘못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2000년 용산 미군기지에서 포르말린 방류 사건이 일어나고) 2001년 소파 부속서에 환경 조항이 들어갔다.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 Known, Imminent & Substantial Endangerment for Human Health and Environment), 이른바 ‘키세’ 조항이다. 이 경우에만 미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인데 이 또한 잘못됐다.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 “키세가 무엇이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전세계 1만4000여개 기지의 환경오염 정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화 우선순위를 정했다. 바로 엔피엘(NPL: National Priority List)이다. 이를 위해 위해성 평가(Risk Assessment)를 하는데, 여기서 키세의 경우 1순위 정화 대상으로 삼게 했다. 미국은 땅이 넓다. 유엔 화학무기금지기구에 근무할 때 유타주, 네바다주 등의 군기지 환경정화 현장에 가봤는데, 땅을 다 파헤쳐놓은 게 전부더라. 수십년에 걸쳐 비 맞게 하고 햇볕 쬐고 그냥 그렇게 자연정화를 하는 것이다. 주거지역까지 거리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그렇게 한다더라. 반대로 오염도 심하고 주변에 사람도 많이 있어 키세 조항에 해당하는 지역은 최우선 정화 대상이다. 정화 우선순위를 정하는 개념이지 복구를 하고 말고 하는 기준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냐. 땅이 좁다. 어디나 사람이 살고 (오염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어디서든 올 수 있다. 우리의 오염정화 기준은 키세 같은 게 아니다. 전체 국토를 주거지, 농지, 학교, 병원 등인 ‘가’급과 군용지, 잡종지 등인 ‘나’급으로 나눠 각각의 환경기준을 정해 놓고 관리한다. 우리는 미국과 경우가 다르고 미국에서 키세의 의미도 그게 아닌데, 그냥 덜컥 받아버린 것이다.” -당시에 말리지 않고 뭐 하셨나?(웃음) “국방부 환경과장 마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화학무기금지기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누구라도 와서 물었으면 이런 얘기 다 해줬을 텐데, 아무도 안 물어오더라. 결국 협상의 프로페셔널리스트(전문가)가 없었던 게 문제다.” -그럼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에스시엠(SCM,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의제에 넣든지 해야지. 부산의 캠프 하얄리아의 위해성 평가(RA)를 캐나다 업체에 맡겼는데 3억원 넘는 돈이 들었다. 조사 결과 딱 세 군데만 리스크가 있다고 나왔다. 그 세 곳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면 작업자와 그 주변 인부들이 위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위해성을 없애고 예방하기 위한 비용이 3억원 든다는 결론을 내놨다. 3억몇천만원을 들여 조사해 3억원 투입하라는 결론을 내놓는 것도 우습지만, 미국은 3억원도 왜 내냐며 버텼다. 묻은 상태로는 리스크가 없지 않으냐, 키세 조항에 해당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아니더라도 기준 초과면 복원해야 한다. 3곳 말고도 기준치 넘은 곳은 다 정화작업을 해야 했다. 그 예산이 130억원이다. 이런 식으로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1차 반환된 기지 토양 및 지하수 정화비만 약 1400억원이고, 기타 철거비 등을 합친 복구비용은 약 2000억원이다.” -군 출신이신데, 미국에 할 소리는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뭔가 새로운 것 같다. “요구할 건 분명히 요구해야지. 미국이란 핵우산 속에서 우리가 이만큼 커오지 않았나. 그리고 외국에서 살아 보니 미국이란 나라가 참 무섭더라. 화학무기금지기구에서 일할 때 사무총장이 브라질 외교관 출신이었다. 이 사람이 요르단에서 이라크 장관을 만나 미국에 미운털이 박혔다. 미국이 곧바로 작업에 나서더라. 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 폴란드 등이 행동대원으로 나서서 업무 과실을 핑계로 ‘사무총장 물러나야 한다’고 흔들었다. 미국은 배후에서 조용히 있고. 중국 같은 나라가 반대 좀 하다가 결국 표결로 갔는데, 상당수 국가가 기권하고 서방권과 한국·일본 등이 사임 쪽에 서니,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우리 군기지 환경복원 문제는 어떤가? “첫 사례가 1999년부터 추진된 부산 문현동 군수기지사령부 제2정비창이다. 국방부 환경과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기름이 나온다고 해서 가봤더니 정말 엉망진창이더라. 당시 오염 정화 비용으로 80억원을 신청했는데, 장관이 놀라더라. 지금 돈으로 따지면 수백억원 되는 큰돈이었다. 조사하고 복원계획까지 세우고, 이듬해 난 화학무기금지기구로 파견을 갔다. 다녀와서 보니 정화비용이 애초 계획보다 50억원 늘어 130억원이 됐고, 여기에 토양오염 복구하느라 사업이 지연되는 바람에 금융비용 250억원을 물어냈더라. 기지 하나 정화 복원에 400억원 가까운 돈을 들인 셈이지. 환경문제란 게 놔둘수록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유엔 화학무기금지기구에는 어떻게 가게 되셨나?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2000년 파견 형식으로 국방부를 떠났다. 환경과장 6년 하고 나니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3년을 예상하고 갔는데 2008년까지 꼬박 8년2개월 동안 일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기술지원부장으로 일했다. 직원 30여명과 함께 화학무기 사찰관용 장비와 물자 구입, 사찰관 훈련, 전세계 20여곳 화학실험실 관리, 화학무기 폐기 공장 주변지역 환경위해성 평가 등을 했다.”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해봤는데, 환경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환경은 한 개인이나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 마인드와 개념이 중요하고 이를 실행하는 정책 수립이 중요하다. 환경부를 두는 것보다도 농림부, 국토해양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모든 부서에 환경 부서를 만들고 부처별 특성에 맞는 개념 정립과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즉 모든 부처가 환경에 대한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미국을 봐라. 환경부가 없다. 환경청이 있다. 영어로는 이피에이(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인데, 디파트먼트(부)가 아니라, 중앙정보국처럼 에이전시(국)다. 그래서 여기서 내려가는 환경 관련 문서는 모두 대통령 지시로 내려간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가야 한다.” -오래 외국생활을 했는데, 바깥에서 바라본 남북문제는 어떻던가? “북한은 200여개 유엔 회원국 중에서 앙골라, 이집트, 소말리아, 시리아와 함께 화학무기금지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5개 나라 가운데 하나다. 북한에 화학무기가 2500톤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한이 기술과 인력을 제공하겠다며 화학무기금지협약 가입을 설득해 화학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도 용기 부식 등으로 인해 화학무기가 자체적으로도 큰 재앙이 될 수 있어 응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웃음)” 모든 부처가 환경마인드 갖추고 정책 마련해야
북한 화학무기 2500t…남한서 금지협약 설득을
화학무기와 환경문제, 남북협력 계기 될 수 있어 -화학무기가 남북 협력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니 역설적이다. “화학무기뿐 아니라 환경문제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군기지 정화 노하우로 북한의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 정화를 도울 수 있고, 지력 회복 사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위 면적당 농업생산력이 북한은 남한의 5분의 1에 불과한데, 나무를 땔감으로 써 산이 벌거숭이고 비가 오면 표토와 퇴적토가 다 쓸려가기 때문이다. 남한에 넘쳐나는 음식물쓰레기 등을 활용해 부식토를 만들어 지원하면 어떨까 싶다. 정치적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이런 환경협력 사업 등을 통해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과 북이 격차를 줄여야 통일도 가능하다. 현금 지원은 반대하지만, 여러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을 잘살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격차가 나면 남한은 재정부담 걱정에, 북한은 완전히 먹힌다는 생각에 통일을 꺼릴 수밖에 없다.” -다방면으로 여러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2009년 귀국 뒤엔 어떤 활동을 하셨나? “비상재난안전협회 소속 녹색재난안전연구원장으로 일하다가 최근엔 환경위해성연구원을 만들어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군·관 환경협력 강화 방안, 고엽제 사용 기초조사, 환경 관련 각종 용역보고서를 작성했고, 재난관리 기본교범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재난별로 법령 체계와 관련 부서들이 너무 복잡해 재난관리 시스템을 좀더 단순하게 해야 한다. 식량, 환경, 에너지 등 안보 요소가 다양해졌고, 정전 사태에서 보듯이 기술개발에 따른 테크놀로지 재앙과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도 많아졌다. 이런 각종 재난에 대비해 군의 지휘·명령체계처럼 간명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30년 동안 군인으로 일하셨고 외국에서도 오래 사셨다. 지금 한국 사회가 어때 보이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줄 말이 있다면? “한마디로 시끄럽고 복잡하며 너무 사회가 들떠 있다. 이제 국가나 개인이 내면적 성숙도를 가꾸어야 할 때다. 임관한 뒤 10년간 공부를 했고, 10년은 연구·교육·정책 수행했고, 나머지 10년은 국제기구에서 보냈다. 세금으로 공부했고, 나라가 밀어줘 국제기구에서도 일할 수 있었다. 국민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산다.” 인터뷰/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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