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옆의 한 민간건물에 입주해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에서 지난 7일 만난 정재정 이사장은 사학자다운 소탈한 모습에 절도감 있는 충청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교수 시절부터 한-일 간의 역사적 화해에 적극 앞장서온 그는 일본 외무성 관리들이 한국을 방문해 현안을 다루기에 앞서 먼저 만나 의견을 청해 듣는 많지 않은 ‘지일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동북아역사재단 정재정 이사장
우리의 고대사 줄기 따라가면 북방과 연결
혈연과 언어·문화에서 놀라운 유사성
중국의 프레임 벗어나 우리역사 시원 바라봐야 지난달 8·15를 앞두고 일본 국회의원 3명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울릉도 방문을 시도하다가 김포공항에서 돌아간 소동이 있었다. 8월말 끝난 일본의 교과서 채택에서 일본의 황국사관을 바탕으로 한 우익 교과서의 채택률이 10년 전보다 100배로 증가했다. 중국의 극적인 성장세는 동아시아 시대의 새로운 도래를 예고하는 한편 패권주의 부활과 민족주의적 갈등의 심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중·일 3국 중 유일하게 이 지역의 영토 및 역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가기관을 설치한 나라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것이다. 연구기관임에도 기관의 지위가 장관급으로 파격적이다. 3국 중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로 2009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임기 3년째를 맞은 정재정 이사장을 만나 최근의 현황을 들어봤다. -얼마 전에 일본 의원들이 울릉도에 가겠다며 소동을 벌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영토와 역사 문제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을 위해 생긴 연구기관인데, 어떤 역할을 했나? “우리(동북아역사재단)는 그 사람들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었고, 그들이 정치적 의도 없이 온다면 언제든 만나서 한국의 견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고, 우리 쪽 의원들이 맞대응을 하면서 정치문제가 되어버렸다. 정치인끼리의 공중전이 되면 학문하는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이번 소동에서 재미를 본 일본 정치인들이 주기적으로 울릉도나 독도 방문 소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 북방 4개섬, 센카쿠열도, 독도 등 분쟁지역 영토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자민당은 당내에 위원회까지 두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중영합적인 정치인들에게 호재가 아닌가. 앞으로 상당한 주의를 가지고 잘 관리하지 않으면 빈발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일본의 새 검정교과서 채택이 지난 8월 끝났다. 새 교과서는 내년 4월부터 사용된다. ‘새역모’ 역사교과서 채택 실태는 어떤가?
“교과서 문제는 10여년 전보다 더 악화됐다.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는 2001년 이른바 새역모(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역사교과서가 나오면서 처음 불거졌다. 그때는 책이 엉성해 채택률이 0.039%에 불과했으나, 2005년 검정 때는 채택률이 0.4%로 10배가 늘었다. 그런데 올해는 종류도 2종으로 늘고 채택률도 4%로 대폭 높아졌다. 10년 전에 비해 100배, 6년 전에 비해서도 10배가 는 것이니 아주 빠른 증가율이다. 4~5%대라는 숫자는 전국에서 5만여명의 학생들이 그 책을 보고 역사를 배운다는 의미다.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이다.” -증가율이 빠른 이유는 뭘까? “우선 교과서 자체가 세련되어졌다. 표절 소송이 벌어질 정도로. 내용에서도 표현을 많이 순화시킨 게 일선 교육현장에 먹혀들고 있다. 여기에다 판매망이 상당히 조직적이라고 한다. 극우보수단체들과 <산케이신문> 같은 우익 계열 언론들이 후원하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채택권자인 교육위원을 대상으로 로비활동도 세게 한다. 현재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에 자극을 받아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교육을 표방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이런 교육지침에 따라 교과서를 쓰게 되었다. 일부 역사교과서와 공민교과서는 나라와 향토 사랑의 대상으로 독도 사례를 들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응책은? “한·중·일 세 나라의 근대사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일본으로서는 상대방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기술하기는 어렵다.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때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검정지침에 이웃 나라와 관련된 기술을 할 때는 상대방 나라의 처지를 배려한다는 ‘근린제국 조항’을 삽입했다. 최근 들어서는 <산케이신문> 등 우익들이 굴욕적 조항이라며 폐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형해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지침과 양국관계 등을 고려해 우호협력 분위기를 해치는 기술은 피하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요즘엔 시민 차원의 활발한 교류활동이 도움이 되고 있다.” -동해 표기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현재 세계 주요 국가 정부 사이트의 동해 표기는 대부분 ‘시 오브 재팬’ 즉 일본해이다. 시 오브 재팬은 서양인들이 18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탐험하면서 이름 붙인 것으로 일본 세력이 커지면서 국제적으로 굳어졌다. 전세계 지명이나 해명은 이처럼 식민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강자가 자기들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제국주의 산물에 대한 이의제기가 세계 곳곳에서 증가하고 있다. 제국주의시대 이전의 토착인들이 부른 이름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1992년 동해 병기를 세계에 요구한 이후 현재 우리가 구입 가능하고 확인 가능한 세계지도 중 28% 정도가 동해를 병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자기 힘으로 세계지도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대부분 강대국들의 것을 가져다 쓴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각국의 지도 제작자를 초청해 세미나도 하고 제3세계 나라들은 직접 지도 제작을 지원하기도 한다.” -어떤 나라들인가? “나라 이름을 밝히는 건 곤란하다. 그게 알려지면 곧바로 일본이 뒤따라 들어와서 다시 바꿔놓는다.” -역시 나라의 실력이 높아져야겠다. 일본엔 최근 새 내각이 들어섰다. 총리가 된 노다 요시히코 의원에 대해서는 우익 성향이 아주 강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노다는 전범을 무죄라고 하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언동을 해 우익 성향이 강한 정치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무리한 정책을 취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총리 취임 후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안 하고 전범 미화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걸 잘 아는 거다. 노다로서는 국내적으로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쓸데없는 말썽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관료들이 원하는 바도 그렇다. 따라서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 등에서 상당히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것으로 본다. 총리가 안 한다고 불거질 게 안 불거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총리가 정치적 인기에 연연해 앞장서 도발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일본이 늘 독도나 역사 문제를 갖고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 쪽에서 화들짝 놀라 맞대응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맞불이냐 무시냐 하는 논란도 여전하다. 어떤 게 올바른 대응 방식일까? “기본적인 역사인식이나 영토 문제 등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 시비를 붙어오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일본 우익들의 관성적인 요구나 속셈이 빤한 정치인들의 일상적인 시비에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시대상황이나 사안의 중대성을 봐가며 대응 수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얘기를 해보자. 부활하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빈부격차와 변방의 소수민족 문제다. 중국이 이 문제에 강경할수록 우리와의 역사갈등도 깊어질 수 있는데, 중국과의 역사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중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국가적 통일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목표인 만큼 앞으로도 10~20년 이상은 소수민족 문제에 대단히 민감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 한족과 55개 소수민족과의 역사적 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개념 아래 소수민족의 역사를 모두 중국 역사로 포섭하려는 것인데, 현존하는 나라 중에서 중국의 이런 역사관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있고 조선족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지나쳐서 두 나라 사이의 내셔널리즘 대결로 가면 곤란하다. 문제가 학문적 수위를 넘어 정치로 넘어가 버리면 해결점이 없어진다.”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중화사관을 뛰어넘어 우리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의 고대사 줄기를 잡아가면 북방과 연결된다. 시야를 더 넓혀 보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투르크계 민족들은 중국의 한족보다 혈연과 언어, 문화 뿌리에서 우리와 가깝다. 그 사람들은 고구려와 돌궐(투르크)의 친연관계를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몰라줘서 그렇지 그들은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카자흐스탄에서 암각화를 공동조사했는데, 비전문가라도 고구려와 같은 연원을 가졌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원시시대 암각화와 우리 반구대 암각화의 유사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눈으로 우리 역사의 시원을 바라보는 게 필요하고 또 가능해진 시대이다. <삼국사기>를 새롭게 써야 할 시대가 오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동아시아 문명이 서구 문명을 뛰어넘을 대안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한·중·일 세 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공동체의 출현을 그려보는 학자도 늘고 있는 것 같다. “한·중·일은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교역국가가 되었고 앞으로도 상호의존 정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 나라가 단기간에 유럽처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세 나라는 공통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무척 많다. 기질적인 차이도 있지만, 핵심적인 시스템에서 많이 다르다. 민주공화국인 한국이 상대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데 반해, 일본은 천황제 중심의 일본식 민족주의가 여전하고, 중국은 사회주의에다 일당독재 체제다. 이런 제도와 가치관의 차이를 단기간에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공동체 구상이 옳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세 나라가 좀더 시야를 넓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전체를 놓고 그림을 그린다면 오히려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더 바람직할 수도 있고. “물론이다. 그것이야말로 정치가의 비전이다. 세 나라에서 미래의 아시아를 제시하고 앞장서서 이끌어갈 통 큰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 대담한 청사진 앞에서는 역사갈등이니 영토분쟁이니 하는 것은 소소한 문제가 될지 모른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세 나라가 합심해 이끌고 가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걸 누가 하겠나? 학자들은 그림을 그려줄 수는 있지만 실행은 정치가 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그걸 할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현재의 일본은 좀 어려워 보이고, 중국은 당장 자기 덩치를 꾸려가기에 바쁜 시기이고.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로 그렇다. 한국은 한번도 패권을 잡은 적이 없는 나라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패권주의를 의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유리하다. 또 한국인들은 고담준론이라고 할까, 이상주의와 이념적 사고에 능하고 또 즐기기도 한다. 게다가 세 나라 중에서 역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기구를 가진 나라도 한국뿐이다.” 앞으로 10년 한·중·일 역사갈등·분쟁 가능성 커
중국과 일본은 서로 패권주의 의심하고 있어
동아시아 역사적 화해, 한국이 지렛대 역할해야 -그런 점에서도 우리에게는 지금 좋은 정치가, 위대한 비전을 지닌 지도자가 절실한 타이밍인 것 같다. 향후 동아시아 3국의 행로를 예상할 때 한국이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향후 10여년은 동아시아 3국 사이에 역사갈등과 영토분쟁 등 충돌이 잦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세의 중국에서는 지금 애국주의 열풍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독립기념관 같은 것이 전국에 400여개나 세워져 아예 ‘애국주의 교육기지’를 자처하고 있다. 애국주의 교육의 첫 세대인 이른바 ‘장쩌민 세대’들이 청장년이 되고 있다. 일본도 밀릴세라 법까지 바꿔가며 국민교육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 나라가 과도한 민족주의를 억제하면서 상호이해와 우호증진을 통해 역사적 화해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지렛대 역할은 어쩌면 한국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도 단기적 사안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에서 나아가 항구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 같다. 재단의 존재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동아시아 여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인이 공감하는 역사적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통하는 비전이 뭘까? 과거에 적대국이었던 나라 간의 역사적 화해이다. 독일의 게오르크 에케르트 국제교과서연구소 같은 것이 좋은 모델이다. 유럽 해체의 위기를 느낀 독일 지식인들이 주도해 만든 이 연구소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 역사교과서가 탄생했다. 유럽연합 내 12개 나라가 함께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유럽인들이 유럽연합이란 공동체 건설이 가능했던 것은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유럽과 같은 역사적 화해의 길은 멀지만, 도달해야 할 이상이다. 희망하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게 아닌가? 그 비전을 만드는 일이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요 사명이기를 바란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혈연과 언어·문화에서 놀라운 유사성
중국의 프레임 벗어나 우리역사 시원 바라봐야 지난달 8·15를 앞두고 일본 국회의원 3명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울릉도 방문을 시도하다가 김포공항에서 돌아간 소동이 있었다. 8월말 끝난 일본의 교과서 채택에서 일본의 황국사관을 바탕으로 한 우익 교과서의 채택률이 10년 전보다 100배로 증가했다. 중국의 극적인 성장세는 동아시아 시대의 새로운 도래를 예고하는 한편 패권주의 부활과 민족주의적 갈등의 심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중·일 3국 중 유일하게 이 지역의 영토 및 역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가기관을 설치한 나라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것이다. 연구기관임에도 기관의 지위가 장관급으로 파격적이다. 3국 중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로 2009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임기 3년째를 맞은 정재정 이사장을 만나 최근의 현황을 들어봤다. -얼마 전에 일본 의원들이 울릉도에 가겠다며 소동을 벌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영토와 역사 문제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을 위해 생긴 연구기관인데, 어떤 역할을 했나? “우리(동북아역사재단)는 그 사람들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었고, 그들이 정치적 의도 없이 온다면 언제든 만나서 한국의 견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고, 우리 쪽 의원들이 맞대응을 하면서 정치문제가 되어버렸다. 정치인끼리의 공중전이 되면 학문하는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이번 소동에서 재미를 본 일본 정치인들이 주기적으로 울릉도나 독도 방문 소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 북방 4개섬, 센카쿠열도, 독도 등 분쟁지역 영토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자민당은 당내에 위원회까지 두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중영합적인 정치인들에게 호재가 아닌가. 앞으로 상당한 주의를 가지고 잘 관리하지 않으면 빈발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일본의 새 검정교과서 채택이 지난 8월 끝났다. 새 교과서는 내년 4월부터 사용된다. ‘새역모’ 역사교과서 채택 실태는 어떤가?
“교과서 문제는 10여년 전보다 더 악화됐다.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는 2001년 이른바 새역모(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역사교과서가 나오면서 처음 불거졌다. 그때는 책이 엉성해 채택률이 0.039%에 불과했으나, 2005년 검정 때는 채택률이 0.4%로 10배가 늘었다. 그런데 올해는 종류도 2종으로 늘고 채택률도 4%로 대폭 높아졌다. 10년 전에 비해 100배, 6년 전에 비해서도 10배가 는 것이니 아주 빠른 증가율이다. 4~5%대라는 숫자는 전국에서 5만여명의 학생들이 그 책을 보고 역사를 배운다는 의미다.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이다.” -증가율이 빠른 이유는 뭘까? “우선 교과서 자체가 세련되어졌다. 표절 소송이 벌어질 정도로. 내용에서도 표현을 많이 순화시킨 게 일선 교육현장에 먹혀들고 있다. 여기에다 판매망이 상당히 조직적이라고 한다. 극우보수단체들과 <산케이신문> 같은 우익 계열 언론들이 후원하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채택권자인 교육위원을 대상으로 로비활동도 세게 한다. 현재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에 자극을 받아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교육을 표방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이런 교육지침에 따라 교과서를 쓰게 되었다. 일부 역사교과서와 공민교과서는 나라와 향토 사랑의 대상으로 독도 사례를 들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응책은? “한·중·일 세 나라의 근대사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일본으로서는 상대방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기술하기는 어렵다.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때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검정지침에 이웃 나라와 관련된 기술을 할 때는 상대방 나라의 처지를 배려한다는 ‘근린제국 조항’을 삽입했다. 최근 들어서는 <산케이신문> 등 우익들이 굴욕적 조항이라며 폐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형해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지침과 양국관계 등을 고려해 우호협력 분위기를 해치는 기술은 피하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요즘엔 시민 차원의 활발한 교류활동이 도움이 되고 있다.” -동해 표기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현재 세계 주요 국가 정부 사이트의 동해 표기는 대부분 ‘시 오브 재팬’ 즉 일본해이다. 시 오브 재팬은 서양인들이 18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탐험하면서 이름 붙인 것으로 일본 세력이 커지면서 국제적으로 굳어졌다. 전세계 지명이나 해명은 이처럼 식민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강자가 자기들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제국주의 산물에 대한 이의제기가 세계 곳곳에서 증가하고 있다. 제국주의시대 이전의 토착인들이 부른 이름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1992년 동해 병기를 세계에 요구한 이후 현재 우리가 구입 가능하고 확인 가능한 세계지도 중 28% 정도가 동해를 병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자기 힘으로 세계지도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대부분 강대국들의 것을 가져다 쓴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각국의 지도 제작자를 초청해 세미나도 하고 제3세계 나라들은 직접 지도 제작을 지원하기도 한다.” -어떤 나라들인가? “나라 이름을 밝히는 건 곤란하다. 그게 알려지면 곧바로 일본이 뒤따라 들어와서 다시 바꿔놓는다.” -역시 나라의 실력이 높아져야겠다. 일본엔 최근 새 내각이 들어섰다. 총리가 된 노다 요시히코 의원에 대해서는 우익 성향이 아주 강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노다는 전범을 무죄라고 하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언동을 해 우익 성향이 강한 정치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무리한 정책을 취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총리 취임 후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안 하고 전범 미화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걸 잘 아는 거다. 노다로서는 국내적으로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쓸데없는 말썽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관료들이 원하는 바도 그렇다. 따라서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 등에서 상당히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것으로 본다. 총리가 안 한다고 불거질 게 안 불거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총리가 정치적 인기에 연연해 앞장서 도발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일본이 늘 독도나 역사 문제를 갖고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 쪽에서 화들짝 놀라 맞대응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맞불이냐 무시냐 하는 논란도 여전하다. 어떤 게 올바른 대응 방식일까? “기본적인 역사인식이나 영토 문제 등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 시비를 붙어오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일본 우익들의 관성적인 요구나 속셈이 빤한 정치인들의 일상적인 시비에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시대상황이나 사안의 중대성을 봐가며 대응 수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얘기를 해보자. 부활하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빈부격차와 변방의 소수민족 문제다. 중국이 이 문제에 강경할수록 우리와의 역사갈등도 깊어질 수 있는데, 중국과의 역사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중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국가적 통일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목표인 만큼 앞으로도 10~20년 이상은 소수민족 문제에 대단히 민감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 한족과 55개 소수민족과의 역사적 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개념 아래 소수민족의 역사를 모두 중국 역사로 포섭하려는 것인데, 현존하는 나라 중에서 중국의 이런 역사관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있고 조선족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지나쳐서 두 나라 사이의 내셔널리즘 대결로 가면 곤란하다. 문제가 학문적 수위를 넘어 정치로 넘어가 버리면 해결점이 없어진다.”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중화사관을 뛰어넘어 우리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의 고대사 줄기를 잡아가면 북방과 연결된다. 시야를 더 넓혀 보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투르크계 민족들은 중국의 한족보다 혈연과 언어, 문화 뿌리에서 우리와 가깝다. 그 사람들은 고구려와 돌궐(투르크)의 친연관계를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몰라줘서 그렇지 그들은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카자흐스탄에서 암각화를 공동조사했는데, 비전문가라도 고구려와 같은 연원을 가졌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원시시대 암각화와 우리 반구대 암각화의 유사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눈으로 우리 역사의 시원을 바라보는 게 필요하고 또 가능해진 시대이다. <삼국사기>를 새롭게 써야 할 시대가 오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동아시아 문명이 서구 문명을 뛰어넘을 대안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한·중·일 세 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공동체의 출현을 그려보는 학자도 늘고 있는 것 같다. “한·중·일은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교역국가가 되었고 앞으로도 상호의존 정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 나라가 단기간에 유럽처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세 나라는 공통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무척 많다. 기질적인 차이도 있지만, 핵심적인 시스템에서 많이 다르다. 민주공화국인 한국이 상대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데 반해, 일본은 천황제 중심의 일본식 민족주의가 여전하고, 중국은 사회주의에다 일당독재 체제다. 이런 제도와 가치관의 차이를 단기간에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공동체 구상이 옳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세 나라가 좀더 시야를 넓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전체를 놓고 그림을 그린다면 오히려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더 바람직할 수도 있고. “물론이다. 그것이야말로 정치가의 비전이다. 세 나라에서 미래의 아시아를 제시하고 앞장서서 이끌어갈 통 큰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 대담한 청사진 앞에서는 역사갈등이니 영토분쟁이니 하는 것은 소소한 문제가 될지 모른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세 나라가 합심해 이끌고 가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걸 누가 하겠나? 학자들은 그림을 그려줄 수는 있지만 실행은 정치가 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그걸 할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현재의 일본은 좀 어려워 보이고, 중국은 당장 자기 덩치를 꾸려가기에 바쁜 시기이고.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로 그렇다. 한국은 한번도 패권을 잡은 적이 없는 나라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패권주의를 의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유리하다. 또 한국인들은 고담준론이라고 할까, 이상주의와 이념적 사고에 능하고 또 즐기기도 한다. 게다가 세 나라 중에서 역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기구를 가진 나라도 한국뿐이다.” 앞으로 10년 한·중·일 역사갈등·분쟁 가능성 커
중국과 일본은 서로 패권주의 의심하고 있어
동아시아 역사적 화해, 한국이 지렛대 역할해야 -그런 점에서도 우리에게는 지금 좋은 정치가, 위대한 비전을 지닌 지도자가 절실한 타이밍인 것 같다. 향후 동아시아 3국의 행로를 예상할 때 한국이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향후 10여년은 동아시아 3국 사이에 역사갈등과 영토분쟁 등 충돌이 잦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세의 중국에서는 지금 애국주의 열풍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독립기념관 같은 것이 전국에 400여개나 세워져 아예 ‘애국주의 교육기지’를 자처하고 있다. 애국주의 교육의 첫 세대인 이른바 ‘장쩌민 세대’들이 청장년이 되고 있다. 일본도 밀릴세라 법까지 바꿔가며 국민교육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 나라가 과도한 민족주의를 억제하면서 상호이해와 우호증진을 통해 역사적 화해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지렛대 역할은 어쩌면 한국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도 단기적 사안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에서 나아가 항구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 같다. 재단의 존재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동아시아 여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인이 공감하는 역사적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통하는 비전이 뭘까? 과거에 적대국이었던 나라 간의 역사적 화해이다. 독일의 게오르크 에케르트 국제교과서연구소 같은 것이 좋은 모델이다. 유럽 해체의 위기를 느낀 독일 지식인들이 주도해 만든 이 연구소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 역사교과서가 탄생했다. 유럽연합 내 12개 나라가 함께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유럽인들이 유럽연합이란 공동체 건설이 가능했던 것은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유럽과 같은 역사적 화해의 길은 멀지만, 도달해야 할 이상이다. 희망하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게 아닌가? 그 비전을 만드는 일이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요 사명이기를 바란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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