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로 밀려든 토사와 바위로 가득 찬 서울 서초구 삼성 래미안 방배아트힐 아파트에서 28일 오전 군인과 경찰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우면산 재앙 원인은
진흙 위주 흙산, 큰비 취약한데도 숲 마구 헤집어
서초구 “장마뒤 폭우탓” 전문가 “수방대책 소홀”
진흙 위주 흙산, 큰비 취약한데도 숲 마구 헤집어
서초구 “장마뒤 폭우탓” 전문가 “수방대책 소홀”
18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서울 우면산 산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쉼없이 퍼부은 전례 없는 폭우 탓도 크지만, 그런 ‘천재’에 대비하지 않은 채 공원·등산로 등을 만드느라 산을 함부로 파헤치고 나무를 베어 없앤 게 화근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서울시는 1971년 우면산 전체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했다. 여기에 서초구청은 2004년 20억여원을 들여 전체 산 면적 510만㎡ 가운데 32만㎡에 자연생태공원을 만들었다. 북쪽 기슭 허리춤에 2000㎡ 크기의 저수지가 들어섰고, 관찰원 15곳, 자연탐방로 1320m이 조성됐다. 이 생태공원 말고도 우면산엔 크고 작은 등산로와 산책로가 종횡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나 있다. 곳곳에 세워진 정자와 약수터가 18개나 되고, 간이운동장이 5곳에, 운동기구도 50개조나 산재해 있다. 그만큼 나무는 베어져 나가 숲이 줄었고,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 주변은 나무가 뿌리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서초구청은 집중호우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배수로를 충분히 확보하고 물 흡수력이 좋은 나무를 추가로 심는 등의 대책을 게을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사태가 나기 불과 9일 전인 지난 18일 주민 허아무개씨가 서초구청 누리집에 올린 글을 보면, “비만 내리면 등산로로 물이 흘러내려서 우회길을 임의로 만들고 있다”며 산의 배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이번에 쏟아진 엄청난 양의 빗물은 등산로를 물길 삼아 산 아래쪽으로 내리쏟아지며 해일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남쪽 기슭에선 자연생태공원의 저수지를 무너뜨리며 토사와 합쳐져 인근 형촌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북쪽과 서쪽으론 방배동 래미안아파트와 남태령 전원마을을 덮쳤다.
산사태 전문가인 정충기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28일 주민들의 여가생활을 위해 산을 깎고 마구 개발한 것이 문제라며, “우면산은 지난해 추석 무렵에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났었는데, 이미 산사태를 겪어 약해진 곳을 보강하지 않으면 다시 비가 올 경우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안건혁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우면산에 산책로를 만들려고 계단식 길을 만들고 나무를 잘라냈는데, 이런 것들이 결국 폭우에 흙이 쓸려 내려가는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는 “돌과 나무를 걸러주는 사방댐을 (산에) 충분히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도 산책로 조성 등 숲 훼손과 배수로 미비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태령 전원마을에 사는 윤아무개씨는 “지난해 폭우에 쓰러진 아까시나무를 많이 베어냈다”며 “나뭇등걸이 뿌리만 남은 채 땅속에 떠 있는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산사태가 났다”고 주장했다. 이 마을 유아무개(53)씨도 “산을 훼손해 생태공원에서 물이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관할 서초구청은 이번 산사태의 원인을 일단 ‘천재’로 돌렸다. 서초구청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100년에 한번 나타날 정도의 집중호우는 그동안 큰비에도 안전했던 우면산이 감당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우면산 산사태 발생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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