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피 다 뽑고…오늘은 할머니 파뿌리 잡는 날 “낼모레 손주들 보러 갈 건데 예쁘게 해줘.” 실제 나이도 손녀딸 또래인 여학생이 머리 염색을 시작하자 커다란 달력을 오려 입은 할머니가 애교 섞인 부탁의 말을 한다. 고려대학교 학생 300여명이 여름방학을 맞아 충청북도 음성군 일대에서 9박10일 일정으로 농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대소면 수태2리 경로당의 풍경이다.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을 밀짚모자 하나로 가리고, 질퍽한 무논에 들어가 잡초와 피를 뽑아내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수박밭과 인삼밭의 농사용 폐비닐을 걷어내며 흐르는 땀에 눈이 따가워도 한눈팔 새조차 없다. 장마가 시작된 뒤로는 실내 봉사활동으로 경로당에서 노인들 머리 염색을 해드리거나 안마를 해드리며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쉽고 만만한 것 없어 밤이 되면 녹초가 되어 바로 쓰러진다. 그래도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고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농사일을 직접 땀흘려 체험하며 우리 농촌의 현실을 이해하는 산교육의 현장에 자신이 함께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이겨내고 있다. 소중한 젊음이 더 의미있어지는 현장이다. 음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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