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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치관과 생업이 일치하는 일터…어찌 행복하지 아니한가

등록 2011-05-12 16:07수정 2011-05-13 10:13

한겨레 18~23년차 기자가 말하는 ‘내게 행복이란’
한겨레 18~23년차 기자가 말하는 ‘내게 행복이란’
[한겨레 23돌] 행복 365
‘한겨레’라서 행복해요 - 고참기자 5인의 이야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이나 될까? 이 가운데서도 특히 기자라는, 딱 보기에도 시간에 쫓기고 개인적 여유라고는 없을 것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겨레>는 창간 23돌을 맞아 적게는 18년차, 많게는 23년차인 고참 기자 5명에게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5명 가운데 4명이 즉각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1명은 잠시 망설인 끝에 “행복이라는 것은 지나고 난 다음에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지금이 행복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결국 5명 모두가 ‘행복하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권복기 디지털콘텐츠 국장 “낯설었던 대안운동 이슈화 보람”
김영희 국제부장 “보통사람들 공감과 감동이 큰힘”
김현대 지역부 선임기자 “한겨레의 존재가치 재확립할 때”
이근영 사회부 선임기자 “23년차 현장기자, 그 자체가 행복”
홍용덕 지역부 기자“취재원과 결혼, 내가 최대 수혜자”

■ 행복의 근원은 ‘가치관의 실행’ 5명 가운데서도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이는 권복기 디지털콘텐츠국 국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겨레> 행복 전도사인 그는 ‘가치관과 생업의 일치’를 행복의 이유로 꼽았다. 권 국장은 “1993년 입사 당시 리영희 선생께서 ‘가치관과 생업이 일치하는 경우는 지구상에서 드물다. 여러분이 한겨레 들어온 것은 큰 행운이다’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하며 살았다”며 “나는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일터를 가진 상위 0.01%에 속한다”고 단언했다.

상위 0.01%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겨레>가 다른 직장보다 더 낫다는 데는 나머지 4명 모두 동의했다. 홍용덕 지역부 기자는 “1990년 입사 당시 평화를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겨레에 지원했다”며 “21년 동안 나의 가치관과 <한겨레>의 이념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김현대 지역부 선임기자(농업 담당)도 “<한겨레>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떠난 이들 가운데서도 ‘그곳이 참 괜찮은 직장이었다’고 얘기하는 이들을 많이 봐왔다”고 말했다. 이근영 사회부 선임기자(과학 담당)는 “23년차 기자인 내가 지금도 현장에 나와서 취재하고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 가장 큰 행복을 줬던 기사 기자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세상을 뒤흔드는 특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5명의 기자들은 특종보다는 오히려 ‘감동’을 남겼던 기사를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꼽았다. 김영희 국제부장은 “위탁모 역할을 하다 건강이 좋지 않던 위탁아를 직접 공개입양한 가족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입양아의 중학생 오빠로부터 ‘내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메일이 왔다”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공감과 감동을 얻어내는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는 2005년 외국인 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사건을 보도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떠올렸다. 노말헥산 사건은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세척제인 노말헥산으로 작업을 하던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여성 5명이 노말헥산 중독으로 앉은뱅이가 된 사건으로, <한겨레>의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홍 기자는 “보도 뒤 타이에서 노동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1억원을 내 피해자들의 퇴원 뒤 거처를 마련해줬다”며 “병문안을 갔을 때 타이 여성 노동자 한 명이 손목을 잡으며 ‘한국 사람이 미워졌었는데, 좋은 분들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당시 피해자 5명은 보상금 가운데 100만원을 모아 <한겨레>에 쾌척했다.

권복기 국장은 지난 4월 국장이 되기 전까지 10년 넘게 맡아왔던 공동체 담당 기자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꼽았다. 권 국장은 1999년부터 당시 어떤 언론사도 주목하지 않았던 공정무역,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 등 각종 대안운동과 지역 공동체를 화두로 기사를 작성해왔다. 이 가운데 전북 완주의 율곡 공동체를 가장 특별한 곳으로 기억했다. 권 국장은 “율곡 공동체에서는 집집마다 한우 한마리씩을 공동체 몫으로 남겨두고 이를 팔아 독거노인 돌보기, 공부방 운영 등 마을 복지에 사용한다”며 “폐교 위기의 초등학교를 되살려 시내에서 앞다퉈 전학 가려는 학교로 만든 지역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엔 낯선 개념이었던 사회적 기업이나 지역 공동체가 최근에 크게 늘어 보람으로 생각한다”며 “월급을 받으면서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 기자라는 직업과 가정 직장인으로서의 행복지수가 높은 <한겨레> 기자들, 그렇다면 이들의 가정생활은 어떨까?


홍용덕 기자는 한겨레신문사 입사자들 가운데 최대 수혜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홍 기자는 1991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박창수씨 의문사 사건 현장 취재 도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안양병원 영안실에 있던 박창수씨의 주검을 지키고 있었고, 전교조 해직교사였던 아내는 영안실 사수대였다. 그는 “당시 물방울 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던 아내가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얼마 뒤 홍 기자는 아내와 처음으로 단둘이 만난 막걸리집에서 프러포즈를 했고 1년 뒤 결혼에 성공했다. 그는 “<한겨레> 기자가 아니었으면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결혼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온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선임기자는 “바쁜 기자로서의 활동 속에서도 마음의 절반은 언제나 가족들에게 가 있었다”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때도 아이들은 언제나 아빠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 기자로서 쌓아왔던 교육철학을 자녀에게 직접 실현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김 선임기자의 딸은 그가 2008년에 번역한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이라는 책에 소개된 미국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다니고 있다. 이 학교는 아이비리그와는 달리 교양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작고 강한 학부대학으로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것이 커리큘럼의 전부다. 김 선임기자는 “이 학교에서 배우는 기초학문과 가치관은 앞으로 딸이 어떤 길을 걷든 스스로의 판단 속에서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 사회에서 한겨레가 가지는 의미 <한겨레>는 1988년 당시 한가지의 목소리밖에 없었던 사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대한 갈망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23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한겨레>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근영 선임기자는 “창간 23년이 지났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는 신문에 대한 필요성은 여전하다”며 “창간 당시의 <한겨레>가 가지고 있던 ‘다름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뉴스 콘텐츠 생산기지로서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대 선임기자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한 <한겨레>가 진보세력으로서의 기득권을 갖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존재 자체가 목적이 돼 버렸다”며 “이 시점에서 왜 한겨레가 존재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년 연속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온라인 매체 <프로퍼블리카>처럼 강자에 의해 약자가 착취당하는 현장을 들춰내는 것이 <한겨레>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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