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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겨레가 만난 사람] “대재앙 일본, 세계에 친절한 나라로 재건되길”

등록 2011-03-27 20:51

한수산씨는 소설 <까마귀>가 2009년 일본에서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나오면서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의 8개 신문이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도쿄신문>은 2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가 아니라 어려운 시대를 함께 산 인간의 시선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의 비극을 조명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한수산씨는 소설 <까마귀>가 2009년 일본에서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나오면서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의 8개 신문이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도쿄신문>은 2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가 아니라 어려운 시대를 함께 산 인간의 시선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의 비극을 조명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일파’ 소설가 한수산 세종대 교수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난 지 17일이 지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인의 관심은 이 전대미문의 대재난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지만, 일본 현지의 대참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많은 실종자들이 폐허 속에 묻혀 있고, 파괴된 원전은 대재앙의 그림자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주일 동안 전세계인들은 대자연이 초래한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인간의 위대함과 희망을 목격했다. 일본인들이 보여준 높은 수준의 질서의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공동체를 향한 용기 등은 어느 서구 신문의 표현처럼 “인류가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을 품게 했다. 한편으로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문명의 허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인류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일본에서 직접 생활하기도 했고, 작품이 일본에서 출판돼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많지 않은 ‘지일파’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소설가 한수산(세종대 국문과 교수)씨를 만나 그가 본 대지진 속의 일본, 일본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타인의 불행을 통해 뭔가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진해일의 폐허 속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듯 비극 속에서도 교훈을 찾고자 하는 것은 지상의 삶을 영위해 가야 하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 같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일본에 지인들이 많을 텐데, 대지진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은 없는가?

“지인 중 정년퇴직한 노교수 한 분이 있는데 도쿄의 빌딩 54층에서 지진을 만났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서버려 54층을 계단으로 내려오고, 교통이 마비돼 4시간을 걸어서 20층 아파트 집에 도착해보니 거실 책꽂이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도쿄 대공습 이래 가장 무서운 공포였다….’ 그분의 느낌이 아마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느낀 충격의 정도를 그대로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었다.”

-지진이 없는 편인 우리로서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공포다.

“사람이 수만명씩 한순간에 죽어가는 걸 본 일본인들의 정신적 충격, 트라우마도 걱정이다. 안 그래도 죽음에 담백한 일본인들이 더욱더 인간이라는 존재,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침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작가라서일까?”

-세계인들은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이나 침착함 등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감명을 받기도 했다.

“이미 우리가 본 대로 약탈, 폭동 같은 파괴행위나 무질서는 거의 없었다. 그걸 보고 전세계가 놀랐지만, 사실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놀랐을 거다. 내가 겪어본 일본인들에게 질서는 하나의 생활이다. 사회가 작동하는 틀이 그렇고, 사람들은 평소 재난에 대비해 행동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 패권 회귀의 우려도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일본 사회가 나름대로 공동체적 삶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는 사실이 이번 대재난에 임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통해 새삼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매뉴얼만 쫓아가다 벗어나면 허둥지둥
‘관료문화의 폐해’ 대지진 통해 드러나
“일본 대하는 성숙해진 한국보며 더 놀라”

-일본인들의 그런 전통이랄까, 문화는 역시 교육의 힘일까?

“일본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보면 개인을 겨루는 게임이나 경기는 거의 없다. 10명이 다리를 묶고 달린다거나, 줄넘기도 단체로 한다. 그런 것만 봐도 일본이라는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느낄 수 있다. 조선 도공의 후예인 심수관 공방에 갔을 때였다. 수십명의 전수생들이 일하는 공방 현관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하 미다사나이요니’, 우리말로 하면 ‘남들보다 튀지 마라’쯤 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곳에서 혼자 난 척하지 말라는 거다. 이런 게 일본인들의 행동수칙이다. 그런 덕목들을 공동체의 미덕으로 꾸준히 지켜가자는 사회적 합의가 교육을 통해 이어지는 게 아닐까?”

-선생님은 일본에서도 생활해 보셨는데, 작가로서 무엇이 일본 문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가?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대로 가장 일본적인 것은 메이와쿠 문화다. 어느 동네, 어느 골목을 가도 가장 많이 보는 팻말이 ‘메이와쿠 가케나이요니’다. 남한테 폐 끼치지 마라.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엔 양면이 있다. 민폐 끼치지 않겠다는 배려의 마음 이면에는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남의 일에 간섭 말라는 자기중심주의가 있다. 그 묘한 이중성이 일본 문화의 핵심이란 걸 살면서 여러번 느꼈다. 또 하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에선 문제가 생기면 중간에 제3자를 넣어 해결하려 한다. 본인이 직접 나서면 오히려 안되는 경우가 많다. 남의 시선으로 자신을 내보이는 문화, 그런 게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다.”

-대지진을 통해 본 일본 사회의 문제라면?

“개인적으로는 고령자 사회의 한계를 봤다. <엔에이치케이>(NHK) 보도에서 수용소의 한 노인이 자기 마을의 80%가 75살 이상의 고령자라며 이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걸 봤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곳곳에서 구조를 기다릴 거라며. 재난 앞에 노인들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은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추구해온 일본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거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나라들에 심각한 화두를 던졌다고 본다. 단지 오래 사는 것만이 노인을 위한 건 아니라는.”

-리더십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던데.

“개인적으로 아는 일본인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일본은 지금 사회 전체를 이끌어갈 뚜렷한 리더나 목표가 없다. 어려울 때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수동적인 사회 분위기, 상의하달식 관료문화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일본인들 스스로도 상부의 지시나 명령,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잘 작동이 안되는 게 일본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제일 기가 막혔던 것은 구호물품을 전달하려는데 상부의 지시가 없어 못하거나 늦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오사카에서 만든 3만개의 주먹밥을 비행기로 수송하려는데, 자위대 허가가 없어 비행기가 뜬다 못 뜬다 하는 한심한 상황도 벌어졌다. 매뉴얼대로 빈틈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매뉴얼에서 벗어나면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책임을 떠넘긴다. 정부 발표도 뒷북 아니면 틀리기 일쑤인 것도 시키는 대로만 하는 굳어버린 관료문화의 폐해다.”

-어떤 일본 지식인은 인구의 고령화, 높은 원전 의존도와 함께 지역 소외를 일본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던데.

“이번에 대지진으로 피해가 큰 도호쿠 지역은 지역차별을 겪은 곳으로 일본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아마도 그런 점을 지적한 것 같다.”

전후 ‘잘사는 나라’된 뒤 목표의식 사라져
단순 국토재건 아닌 이상적 방향 설정 필요
“배려의 ‘메이와쿠 문화’ 일본인에겐 생활”

-막상 구호에 나서고 보니 그쪽 지방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걸 실감한 모양이다.

“사실 도쿄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은 차이가 크다. 신칸센이 아래는 후쿠오카까지 가지만, 북쪽은 끝까지 안 간다. 중간에 바꿔 타야 한다. 열차도 멀어질수록 낡아진다. 언젠가 여행을 하는데 마치 영화 속 같았다. 한번 갈아탈 때마다 10년쯤 더 오래된 기차가 나타났다. 더 가면 더 낡은 열차. 일본 안에서도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국토의 재편성 얘기가 나오는데 이런 불균형이랄까,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일 것이다.”

-이번 대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대단히 높았다. 우리도 진심으로 일본 돕기에 나섰다. 모처럼 세계가 하나가 된 듯했다.

“대지진 자체도 유례가 드문 일이지만, 전 지구촌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우려는 모습도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전쟁에서 연합군이나 다국적군을 구성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세계가 평화를 위해 이처럼 생각을 모으고 힘을 합치려고 한 것은 인류사 전체를 보아서도 아주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일본의 국제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까?

“사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대외원조를 많이 하는 나라다. 이번에 자신들이 원조를 준 나라나 단체들의 지원을 체험했다. 이런 경험이 자국 중심적 사고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이 경제규모에서뿐만 아니라 사상의 측면에서도 국제사회에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발견했으면 한다. 이번 대지진은 일본의 개혁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일 관계는 어떤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일본 쪽에서도 한국인들의 이런 변화에 부응하여 좀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면 두 나라는 더욱 가까운 나라가 되지 않겠나? 대재난을 뛰어넘어 새로운 일본을 만든다고 할 때, 그건 단지 무너진 도로와 건물을 재건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정신적 측면의 재건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일본 분들에게 바란다. 대표적인 것이 잘못된 전후처리 문제이다. 그걸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제대로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과거사 문제에 돌파구가 열린다면 한-일 관계는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한국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시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

“일본의 고통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새삼 우리도 많이 성숙했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하고 얘기를 나눠보니 대부분 일본 여행 경험을 갖고 있고 일본 친구도 적잖게 가지고 있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음악을 보내주고. 그런 걸 보면서 아, 한국과 일본이 어느새 여기까지 나가 있구나 싶었다. 젊은이들을 비롯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과 여러 형태의 사적인 관계를 형성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런 풀뿌리들 간의 접촉과 교류를 좀더 조직화하고 확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지일파 작가로서 평소 생각하는 바람직한 일본 상이라면?

“일본 우익이 국민작가로 떠받드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1923~1996)가 말년에 이런 강연을 한다. ‘전후 일본은 열심히 달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G7의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이상 세계에서 일본이란 나라의 역할이 없다’고. 목표가 없어진 일본을 걱정하면서 그는 ‘일본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나?’라고 되물으며 이런 화두를 던졌다. ‘세계를 향하여 친절한 일본, 세계를 향하여 친절한 일본인. 일본, 일본인은 그리로 가야 한다.’ 노작가는 친절이란 평범한 단어 속에 많은 바람을 담았다. 정직한 일본, 고결한 일본,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본마음을 드러낼 줄 아는 일본… 일본의 ‘대지진 이후’는 단순한 국토의 재건이 아니라 시바 료타로가 말한 것처럼 ‘세계를 향하여 친절한 일본’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으면 한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사람으로서 일본인들이 이번 대참화를 잘 극복하여 지금의 일본보다 더 나은 일본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일본 어느 신문 칼럼을 읽다가 코끝이 시큰해졌다. 요약해 인용한다. ‘폭동도 약탈도 없었다. 피난소에는 줄을 길게 섰다. 자, 이제는 해변의 폐허로부터 재건을 시작하자.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에 다시 한번 묵념을 올리고, 자, 다시 일어서자…스미타이 구니오 메자시테(살고 싶은 나라를 목표로)’ 이런 목표가 꼭 이뤄지기를 일본인들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살고 싶은 나라’라는 미래의 방향 설정에 박수를 보낸다.”

■ 일 번역출간 ‘군함도’ 큰 반향…한·일 교류 가교역

한수산은

소설가 한수산씨는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과 창작활동을 통해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지일파’ 작가이다. 그의 소설 <까마귀>(2003)가 2009년 일본에서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군함도>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나가사키 남단의 한 섬에서 혹사당하다가 원폭 피해를 당한 조선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을 계기로 한씨는 일본에서 순회강연을 하는 등 두 나라의 문화와 역사 이해 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유려하고도 감성 넘치는 문체로 각광을 받은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부초>(1977·오늘의 작가상 수상) <해빙기의 아침> <거리의 악사> 등이 당시의 대표작이다. 1981년 중앙일보에 연재중이던 통속소설 <욕망의 거리>에서 당시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를 은근히 조롱했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함께 고문을 당한 친구 박정만 시인이 숨진 뒤 1988년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90년대에는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에세이집을 여러 권 냈으며, 한국 천주교 성지를 답사하여 <한수산의 순교자의 길을 따라>를 썼다. 지난해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과 자신을 고문한 사람에 대한 용서 등을 담은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을 펴냈다.

1997년부터 세종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내년이 정년이다. 퇴직 뒤에는 학생들과 함께했던 지난 추억들을 소설로 쓸 계획이라고 한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사월의 끝>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1946년 태어나 춘천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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