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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부가 생협처럼 하면 배추파동 없죠”

등록 2010-12-27 08:54

생활협동조합 중 원조 격인 한살림이 생산자 중심이라면 도시 지역에 기반한 아이쿱 생협은 소비자 중심의 생협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가격 정책이나 경영 방침에서도 기업적인 문제의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이정주 회장은 “핵심은 생산농가가 판매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농사만 지으면 되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러자면 소비가 늘어나야 하고,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유연한 가격 정책의 채택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생활협동조합 중 원조 격인 한살림이 생산자 중심이라면 도시 지역에 기반한 아이쿱 생협은 소비자 중심의 생협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가격 정책이나 경영 방침에서도 기업적인 문제의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이정주 회장은 “핵심은 생산농가가 판매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농사만 지으면 되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러자면 소비가 늘어나야 하고,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유연한 가격 정책의 채택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생협연합회 ‘아이쿱’ 이정주 회장

골리앗 대기업과 싸우는 다윗 협동조합의 리더, ‘윤소맘’(윤리적 소비를 하는 엄마들)의 대모.

한살림과 국내 소비자협동조합의 쌍벽을 이루는 아이쿱(iCOOP)생협연합회의 이정주(49) 회장은 이른바 ‘윤리적 소비’에 푹 빠져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유전자조작식품 반대, 우리쌀과 우리밀 지키기, 공정무역과 같은 윤리적 소비의 열쇳말이 들어가는 모임에는 이 회장의 얼굴이 빠지지 않는다. 이 회장은 윤리적 소비가 ‘윤리적 생산’과 ‘윤리적 노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사회의 틀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회장은 대규모 사업체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전국에 91개의 친환경 유기농 매장을 운영하는 아이쿱생협 이사회를 끌어간다. 1997년 경인지역 6개 생협의 연대로 시작해 200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아이쿱생협은 올해 매출이 2600억원에 육박하고, 조합원이 11만5000명에 이른다. 매장 1곳의 하루 매출이 500만원을 넘고, 91개 매장 대부분이 흑자를 낸다. 올해 배추파동 때는 1포기에 1600원에 팔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탁월한 사업가다. 이 회장은 윤리적 소비 운동과 소비자협동조합 사업을 조화시키면서 말잔치를 뛰어넘어 생활진보를 구현하는 한국형 생협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가을 배추파동 때 생협이 많이 떴습니다. 1포기 1만5000원 하는 ‘금배추’를 1000원대의 평소 가격에 그대로 팔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희와 거래하는 생산자(농가)들이라고 비싼 값 주겠다는 시장에 내놓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때에 대비해 소비자 회원과 생산자들이 매달 가격안정기금을 조금씩 모아 30억원을 적립했습니다. 그중에서 4억원을 풀었지요. 그만한 부담을 우리 아이쿱에서 짊어졌던 것이지요. 그 덕에 소비자들한테는 저렴한 값에 공급하면서도, 생산자들한테는 거의 제값을 보장해줄 수 있었습니다. 또하나는, 직거래입니다. 배추는 밭떼기 산지수집상에서 경매시장을 거치는 다단계 유통망을 타게 됩니다. 올해처럼 수급불안이 일어나면 중간마진이 치솟기 마련이잖아요? 저희들은 수년~10년 이상 거래해온 생산자들한테서 미리 계약된 가격으로 직접 물건을 공급받습니다. 값이 안정될 수밖에요. 결국 가격안정기금의 적절한 적립과 운용, 그리고 상품의 직거래, 이 두가지가 우리 아이쿱의 핵심입니다. 정부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당장 급하다고 중국산이나 찾아가고, 그거는 아니잖아요?”

경영혁신·신뢰로 ‘올매출 2600억’ 육박
배추파동때 가격유지…국민적 관심 받아
“대기업 독과점 맞서는 생산·소비자 조합”

-배추파동 때 생협의 활약을 보면서 “농협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책과 아쉬움의 소리가 많이 나왔습니다.


“직접 생협 활동을 하다 보니 그런 지적이 더 피부에 와닿습니다. 우리는 정부 지원 한푼 받지 않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조합원들 출자금과 회비를 걷어 지금까지 매장을 하나씩 하나씩 열었습니다. 비싼 임대료도 전적으로 다 부담해야 하고, 조합 출자금이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아 은행 대출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농협은 거의 국가기관이라 할 정도로 법과 예산 지원을 많이 받잖아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요.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제구실을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생협 운동이 조금씩 자리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이쿱 조합원만도 10만명을 넘고, 총매출이 2600억원에 육박하고 있네요.

“아이쿱과 다른 생협을 통틀어 국내 전체 조합원이 45만명 정도입니다. 아직도 인구의 1%에 못미치니까, 한참 멀었지요. 이웃 일본만 해도 생협 조합원이 2200만명으로 인구의 17%에 이릅니다. 스위스를 가보았는데, 인구 700만 중 500만명이 미그로와 코프스위스라는 양대 생협의 조합원이었습니다. 두 생협은 소매유통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유통 대기업’이기도 했고요. 2008년에는 생협에서 까르푸 매장 12개를 한꺼번에 인수하는 ‘사고’도 쳤습니다. 우리는 생협 하면 친환경 농산물을 떠올리는데, 선진국 생협에서는 공산품과 의류 등 모든 제품을 취급합니다. 만시지탄이지만 내년부터 우리 생협에서도 모든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생협법이 개정됐습니다. 억지 빗장이 풀린 셈이지요. 또 협동조합에서 정부의 복지사업을 맡아 운영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법규정만 고칠 게 아니라, 정부가 협동조합 활동을 진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선진국에 비해 협동조합 활동이 미미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협동조합도 엄연한 사업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곧잘 망각합니다. 일종의 공동체라는 인식이 앞서다 보니, 경영과 효율성을 강조하면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협동조합은 다수의 생산자나 소비자들이 대기업의 독과점에 맞서는 시장적 도구입니다. 공동체로서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지만, 경영 마인드가 없으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사업을 통해서 운동을 하는 도구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비판에 그치지 않고 이마트와 같은 대기업과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운동입니다. 협동조합과 관련한 우리의 법체제도 문제입니다. 농협법, 수협법, 생협법 등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때그때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협동조합 일반활동의 법적 기초가 되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돼야 합니다. 다들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데, 2012년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유엔이 ‘국제협동조합의 해’로 정했거든요.”

이 회장은 “협동만으로는 협동조합이 안 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는 이마트 같은 대기업이니까요. 올해만 해도 대기업들이 물량공세로 잡곡을 다 선점해 갔습니다. 이런 것이 고민이지요. 우리는 기업경영의 좋은 점을 과감하게 수용해야 합니다. 지역경제도 살리고 기업과의 시장 경쟁에서도 이겨내야 하니까요. 아이쿱은 ‘사업은 집중하고 조직은 분화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이쿱생협연대를 통해 전국적인 사업망과 함께 자회사까지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각 지역 생협 조직의 독립성은 최대한 보장합니다. 사업과 운동의 조화를 꾀하려는 ‘역사적 고민’의 소산이지요.”

생협 조합원 전체국민의 1% ‘아직 걸음마’
제각각인 농협·수협·생협법의 ‘통합’ 필요
“괴산 생협클러스터, 친환경 파크로 만들것”

-아이쿱생협을 이룬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97년에 경인지역의 6개 생협이 힘을 합쳐 지금 아이쿱의 전신인 경인지역 생협연대를 세웠습니다. 시민운동에서 사업체로 진화하는 첫걸음을 뗐던 거죠. 외환금융위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감한 ‘경영혁신’을 단행했습니다. 조합원이 통합전산망으로 주문하면 산지에서 공동물류망을 통해 가정으로 곧바로 배송하는 직거래 체제를 처음 구축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6개 생협이 산지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각자 주문하고 수기로 장부를 기록하는, 마음만 앞선 저효율 고비용 방식이었습니다. 또 출자금과 별도로 월 회비(당시 2만5000원)를 받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대신 회비를 내는 조합원한테는 10~15%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혜택을 주었지요. 회비 수입의 증가는 재정적 안정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금 우리 생협에서는 적자 매장이 없습니다.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월 회비도 1만~1만3000원까지 낮추었습니다.”

-경영혁신만으로는 지금의 아이쿱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역시 신뢰가 바탕이 됐습니다. 그런데 신뢰 쌓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엄청 교육을 받습니다. 서로 이해관계를 공유해야 하고, 그래야 신뢰도 생기거든요. 무엇보다 생산자가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생산자들은 당장 많이 팔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함께 간다는 전략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좀 손해보더라도 이렇게 하면 나중에 이익이 더 늘어나겠구나, 이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뢰를 깨는 ‘불신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대합니다. 농약 규정을 어긴 농가가 나오면 작목반 전체에 공동책임을 지게 합니다.”

-충북 괴산에 추진중인 대단위 생협클러스터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올 4월에 184만평(610만2430㎡)의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저희 회원들 기금으로 땅값을 납입했고요. 2012년까지는 30~50개 친환경식품가공업체와 물류단지 등이 입주하고, 2015년까지는 생태마을과 실버타운, 생태연못, 학교·병원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생산과 소비 및 주거·관광이 어우러진 친환경 드림파크를 조성한다는 꿈을 꾸고 있지요.”

-한편에서는, 아이쿱생협의 공동체성 퇴색을 우려하는 지적도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출발한 저희 같은 생협은 전략적으로 소비자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해서는 존립할 수가 없지요. 그런 점에서 생산농가 쪽에 더 밀착해 있는 한살림과는 서 있는 위치가 조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초기의 생산비 보장 가격 대신에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제도(소득 보장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대에 못미치는 가격일 수 있지만, 비전을 공유하는 생산자들 사이에 장기적인 신뢰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생산자들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한 사명입니다. 생산농가가 판매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농사만 지으면 되도록 하는 일이지요. 그러자면 소비가 늘어나야 하고,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유연한 가격정책의 채택이 불가피합니다.”

-이미 많은 꿈을 이룬 것 같은데, 앞으로의 꿈이라면?

“우리 물건은 어디에 내놔도 최고입니다. 서민들에게 가장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리얼 프리미엄’이라고 자부합니다. 우리밀 케이크를 우리가 처음 만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식품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지요. 항상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게 꿈입니다.”

이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두가지 소망을 더 보탰다. “입시도 입시지만, 아이들 취업이 정말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닿는 대로 우리 직원들에게 보다 충분한 보상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거든요.”


이정주 ‘아이쿱’ 생협연합회 회장
이정주 ‘아이쿱’ 생협연합회 회장
이 회장의 생협과의 인연

소비자서 연합회장으로…IMF때 지역생협 통합 산파역

“유기농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정농회의 회원이 된 것이 시작이었죠. 안전한 먹거리 먹으면서 우리 농민들 살리자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는데, 어깨동무라는 지역생협이 집 근처에 생기더군요. 처음에는 생협을 이용하는 소비자로 관심을 갖다가, 아예 어깨동무생협 이사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1997년이었는데, 인연이었겠죠.”

구제금융 파고를 맞은 그 무렵, 전국의 231개 생협 중에 154개가 사라지고 나머지도 각자 생존을 궁리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어깨동무와 경인지역의 양천(볕내)·인천·한밭·부천·안산 등 6개 생협은 살아남기 위해 진지하게 통합을 의논했고, 결국 경인지역 생협연대의 탄생을 이뤄냈다. 경인생협은 이듬해 21세기 생협연대로, 다시 한국생협연대를 거쳐 2008년 지금의 아이쿱 생협으로 맥을 이었다.

생협들의 연합체인 아이쿱의 이 회장은 서울 신정동의 양천생협 이사장도 함께 맡고 있다. 처음 몸을 담았던 동네 생협에 그만큼 애정이 많기 때문이다.

“생협은 언제나 만들어가는 운동이어서 매력적입니다. 목표를 세워 여럿이 마음을 모으면, 결국엔 이뤄지더라고요. 협동의 엄청난 힘을 느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아무도 없는 데서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대안운동이고, 성과를 손으로 만질 수 있어 훨씬 재미있고 창의적이라 생각합니다. 생협과의 인연이 저한테는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지요.”

이 회장은 자신을 “활동가이자 경영자”라고 소개한다. 지역 생협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아이쿱연합회의 이사회에서 경영을 감독하기도 한다. 지역생협 단위의 소비자운동 활성화를 도모하면서도, 전국적인 사업의 전문성을 강조한다. 경영의 전문성이 없이는,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제대로 알면,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합니다. 프랜차이즈 소매점들도 매장을 운영할 때, 인테리어 비용이나 공급받는 식재료의 원가 등등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서로 힘을 보태 협동조합을 결성하면 어렵지 않게 원가절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발상이 일어나지 않는 게 많이 아쉽습니다.”

인터뷰/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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