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김홍국 회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하림 김홍국 회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기본수입 유지 토대하에 상대평가 도입”
- 어떻게 다시 일어나, 지금의 하림을 세우게 됐나요? “망하면서 사업의 눈이 트였습니다. 돼지값은 폭락하는데도, 소시지 값은 떨어지지 않더군요. 아, 가공해서 팔면 망하지 않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통합경영의 전문가인 미국사료곡물협회 박영인 박사를 만났지요. 1차 산업을 2차 가공산업화해야 경영이 안정된다는 것을 그분한테서 배웠습니다. 1986년 하림식품을 주식회사로 설립해, 계열화 통합경영에 들어갔습니다. 선진국의 최고기업 현장을 샅샅이 둘러보고 벤치마킹했지요. 그때도 우리 직원들은 저를 말렸는데, 설득하면서 밀고 나갔습니다. 항상 내가 너무 앞서나갔지요. (너털웃음)” (하림의 양계사업은 600여 농가와 계열화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농가에서는 하림에서 제공받은 병아리와 사료, 약품으로 닭을 사육한다. 농가에서 자기 돈으로 병아리와 사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하림의 닭을 키워주고 사육비를 받는 방식이다. 투자에 따른 위험 부담을 더는 이점이 있는 반면, 하림의 월급쟁이로 통제받는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 30대의 나이에 양계업계 선두주자가 됐네요. 늘 새롭게 경영시스템을 구축했고요. 그런데 왜 하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때 별명이 거짓말쟁이였습니다. 항상 엉뚱한 생각을 늘어놓았으니까요. 나중에 성과를 이뤘을 때, 그때서야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너무 앞서나가면서 업계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됐던 것 같습니다. 농업계에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도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소농가 중심의 노동집약적 사고가 만연해 있잖아요. 하림은 철저하게 자본가적이고 설비집약적입니다. 농민들이 못하는 가공과 마케팅을 하는 시장 플레이어지요. 나는 하림이 한국 농기업의 성공적인 모델을 세웠다고 자부합니다.” - 하림만 큰돈을 벌고, 계열농가의 소득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 상대적 박탈감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림이 공격받는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2006년에 계열농가 조수입(비용을 제하지 않은 총수입)을 5년 뒤 1억원으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올해 1억600만원을 달성했습니다. 계열농가 소득목표를 설정한 회사가 어디 있고, 평균 조수입을 1억원으로 올려준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11살 때부터 닭을 키워 자수성가했고, 누구보다도 농민을 먼저 생각합니다. 2015년까지 농가 조수입을 1억5천만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새로 발표했습니다. 건방지다 할 수도 있겠지만, 농가 소득 문제라면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농업경쟁력 위한 정책변화 필요성 강조
“똑똑한 기업이 시장 끌고가도록 해야” - 경기도 안성에 돼지와 닭을 대규모로 도축·가공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식육종합센터를 세운다는 계획이지요. 지역의 영세 도축업자들을 비롯한 양돈업계와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칠레 돼지고기는 1㎏ 생산비가 1.1달러인데, 우리는 2.3달러입니다. 2014년부터 칠레 돼지고기의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우리 양돈산업은 전멸할 수 있습니다. 하림이 닭에서 성공한 것처럼 양돈산업의 수직계열화를 그 전에 이뤄내야 합니다. 그러면 칠레의 두배 이상인 생산단가를 1.5배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겁니다. 가격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우리 맛의 품질경쟁력으로 극복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장 청결한 세계 최고의 안성 공장에서 세계 최고의 돼지고기를 생산할 겁니다.” 첫번째 만남에서 안성 종합식육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던 김 회장은 두번째 만남에서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 “안성 사업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틀 전에 회사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얼마 전 안성 주민들을 네덜란드의 최첨단 시설로 데려가 견학시켰는데, 그 뒤로 주민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하림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큰 알력이 생기는 상황이라면, 굳이 나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들한테 이러쿵저러쿵 소리를 들어가면서,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의욕을 잃었습니다. 충북 음성에 있는 기존 공장을 리모델링해 운영할 생각입니다.” 김 회장은 끊임없이 한국 농민과 농업정책의 변화를 부르짖는다. 농기업과 수출 중심으로 농정의 줄기를 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농업관이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배짱이 맞고, 개각 때마다 농식품부 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우리 축산 중에는 유일하게 닭산업이 시장개방에 대응하는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27%의 시장을 점유한 하림이라는 강자가 750개의 제품을 개발해 마케팅을 주도합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시장의 리더 역할을 하니까 국산 전체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겁니다. 하림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10년 전 72%였던 닭 자급률이 89%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양돈산업을 보세요. 이미 수입이 22%를 차지했습니다. 최대 기업이라는 우리 하림의 선진포크와 하이포크를 합해야 시장점유율이 7%에 못미칩니다. 이래서는 국내시장을 끌고갈 수가 없습니다. 75% 수준인 우리 돼지고기 자급률은 시장개방이 확대되면서 뚝뚝 떨어질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농업정책과 농업경영을 가슴으로 했습니다. 우선은 따뜻하고 좋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이제는 냉정하게 머리로 경영해야 합니다. 똑똑한 기업 하나가 시장을 끌고가도록 해야, 농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도 농업을 끌고가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입니다. 농업에서는 협동조합이 중심이 돼야, 그 성과가 농가 소득 증대로 착실하게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네덜란드의 그리너리 같은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많이 받아들였어요. 전통적인 1인1표의 원칙을 포기한 자본주의적 협동조합이지요. 덴마크의 세계적인 양돈협동조합인 데니스크라운은 독일 기업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농민과 소비자에게 누가 더 이익을 주는가’ 하는 것이잖아요. 미국에서는 닭 협동조합들이 대거 망해서 기업으로 넘어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뉴질랜드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협동조합이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을 많이 못주었기 때문이지요. 유럽의 협동조합들도 그런 길을 따라갈 것입니다. 협동조합보다는, 농민이 주주인 기업의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방식이라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농민에게도 가장 큰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 하림이 성공적인 농기업이라는 데는 다들 동감합니다. 농업계의 삼성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서려면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계열농가의 기본 수입을 유지하면서도, 상대평가 방식으로 내부 경쟁을 유도합니다. 그래야 생산성이 올라갈 것이고, 회사가 살아야 농가도 살 수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곰곰 생각하는데, 결국 가치를 많이 만들어서 투명하게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한테는 말을 안하지만, 여러 곳에 기부금도 많이 내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구닥다리 90만원짜리 장롱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 - 인간 김홍국의 꿈이라면? “하림 경영이 하느님의 사명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김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특별한 것 없습니다. 사료효율을 1 대 1로 끌어올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하림그룹의 비전도 글로벌 생산성 1위입니다.” 사료효율은 고기 1㎏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사료의 양을 말한다. 사료 1㎏ 먹여서 닭고기 1㎏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욕심이다. 지금 하림의 사료효율은 1.6 정도. 닭고기 1㎏ 생산하는 데 1.6㎏의 사료를 먹여야 하는 수준이다.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히 잘라 말했다. “솔직히 말해 제안받은 적은 있지만, 제 길이 아닙니다. 영원히 그쪽 근처로는 안 갈 겁니다.” 김 회장은 한눈팔지 않고 농기업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이룬 ‘스타’이다. 10대부터 최고경영자로 나선 사업가답게 나름의 소신과 일관성이 돋보였다. 다만, 눈부신 하림 성공의 과실을 계열농가들과 넉넉하게 나누었는지는,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림이 성공한 농기업을 넘어, 존경받는 농기업으로 더 뻗어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김 회장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인터뷰/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 성남/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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