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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북한 인권, 보수가 선점했다고 진보진영이 망설여서야

등록 2009-12-11 10:36수정 2009-12-11 10:37

‘강철’ 김영환(47)씨는 “우리를 뉴라이트라고 부른다면 다른 그룹을 뉴라이트라 부를 수 없고, 다른 분들을 뉴라이트라 부른다면 우리까지 뉴라이트라 하는 건 적절치 않다. (뉴라이트 운동에서) 상징성이 있는 사람들은 공직 진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강철’ 김영환(47)씨는 “우리를 뉴라이트라고 부른다면 다른 그룹을 뉴라이트라 부를 수 없고, 다른 분들을 뉴라이트라 부른다면 우리까지 뉴라이트라 하는 건 적절치 않다. (뉴라이트 운동에서) 상징성이 있는 사람들은 공직 진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만사] 남한 첫 주사파서 뉴라이트로…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5공시절 ‘강철서신’ 통해 북 주체사상 소개
잠수정 입북…김일성 만난뒤 기대 산산조각
5공의 폭압통치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1986년 봄, 문건 하나가 학생운동권을 뒤흔들었다. 당시엔 ‘강철’이란 필명으로만 알려졌던 서울대 법대 4학년 김영환씨가 쓴 ‘강철서신’ 시리즈였다. 단기간에 이처럼 강력한 영향을 끼친 문건은 학생운동사에서 전무후무할 것이다. 김씨는 남한의 첫 주체사상파(주사파)였다. 나중에 북한 노동당에 가입까지 했던 그는 90년대 중반 ‘전향’해서 북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뉴라이트의 시초인 셈이다. 그의 현재 직함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과 뉴라이트단체 ‘시대정신’ 편집위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많은 뉴라이트 인사들이 정치권이나 공직에 진출했지만, 그는 여전히 북한 인권 운동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한자리 하려고 북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강철서신’의 첫번째 문건이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였죠?

“그때 세 편을 하나로 묶어 내놓았는데, 맨 앞에 그게(미제의…) 있었죠. 그 전에 강철 명의의 편지 형식으로 두 편을 냈습니다. 첫 서신이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맨 밑에 강철이란 이름이 들어 있었죠.”

-지금 그 문건들을 갖고 있습니까?

“그거 갖고 있으면 국가보안법에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괜찮겠지만 제가 갖고 있는 건 없습니다. 국정원에 부탁하면 줄지 모르지만….(웃음)”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미국을 ‘미제’라고 부르는 등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권이 진보적이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요, 생각을 전환한 계기가 뭡니까?

“글쎄요, 뚜렷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주변의 모든 선입견과 터부를 분석하며 접근하는 경향 속에서 나온 거 같습니다. 북한 문제를 꺼내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건 문제가 있다, 북한이 우리 입장에선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피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김영환씨는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을 했습니다. 이걸 ‘변절’이라 부르는 이도 많을 텐데요, 전향이니 변절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과거 좌파 활동을 했던 분들 중엔 조용히 생각을 바꾼 분들이 대단히 많을 겁니다. 저는 좀 달랐어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사람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기에 다른 분들처럼 조용히 생각을 바꾸는 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공개적이고 공격적으로 얘기를 했던 거고…. 그 당시 조직수사와 연결시켜 제가 변절했다고 얘기하는데, 제가 생각을 바꾼 건 그것(안기부 수사)과는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그건 별개의 문제이고, 그런 점에서 변절이라 얘기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향이란 단어는 제가 썩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굳이 표현을 한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보진영엔 북한을 비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더라도 진보진영에 남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처음에 북한 민주화 운동, 북한 인권 운동을 시작할 때, 진보진영에 남아 있으면서 그런 운동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더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봤죠. 그런데 실제로 그 이후 진행된 과정을 보면, 진보진영에선 한 명도 호응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유연한 걸 주장하더라도 ‘김영환이 주장하는 거니까 안 돼’, 그렇게 매도해 버리고요…. 우리가 진보다 보수다 주장했던 건 한 번도 없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보수로 분류가 되더라구요.”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처음 북 인권운동 시작할 때 진보진영서 외면
뉴라이트 상징적 인사들 공직진출 신중해야

-진보진영이 북한 인권 문제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은 내부에서도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논리로만 보자면 보수가 선점한 북한 인권 문제를 진보진영이 따라오긴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저는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숙연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참혹한 문제인데, 비록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이 문제를 더이상 뒤로 미룰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수 쪽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걸 분명하게 밝히고, 진보 쪽에서도 좀더 마음을 열면 함께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이었는데요, 이 정보를 제공한 게 주로 이라크를 탈출한 망명객들이었습니다. 나중에 미군이 이라크에 들어가 보니 이런 증언이 모두 거짓이란 게 드러났죠. 탈북자들의 증언을 보면서 어느 정도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듭니다.

“일단 중국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라든지 탈북자 지원하는 분들은 탈북자를 만나서 얘기할 때 99%가 거짓말이란 전제를 깔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런 건 아니고 20~30% 정도가 거짓말이죠. 우리도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얘기는 다 믿지는 않죠. 5~10명 정도의 교차확인을 통해서 거르는 거죠. 문제는, 정보 수집을 하는 국내외 기관이나 언론기관, 특히 일본 언론기관이 돈을 건네는 겁니다. 자극도 높은 정보일수록 액수가 높아지니까 그런 과정에서 거짓말이 생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영환씨를 뉴라이트의 원조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어봤습니까?

“뉴라이트를, 과거 운동하던 분들이 우파로 입장을 바꿔 활동하는 걸 지칭한다면, 제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뉴라이트라는 개념 자체가 분명하지 않고, 그룹이 다양합니다. 우리와 비슷한 그룹이 있고, 자유주의를 꾸준히 주장해온 학자 그룹이 있고, 김진홍 목사님처럼 전국적 조직을 만든 그룹이 있고, 색깔이 다 다릅니다. 우리를 뉴라이트라고 부른다면 다른 그룹을 뉴라이트라 부를 수 없고, 다른 분들을 뉴라이트라고 부른다면 우리까지 뉴라이트로 부르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이념 성향도 다르고 활동 방식도 많이 다릅니다. 학자 그룹과는 교류가 자주 있지만, 김진홍 목사님 그룹과는 교류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은 미국 네오컨서버티브(신보수주의) 운동과 흡사한 측면이 있는데요, 미국의 네오콘이 가치 지향, 이념 지향이라면 한국 뉴라이트는 권력 지향 성격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저하고 가까운 분들 중에 권력 지향적인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자리를 찾아간 사람도 없구요. 저희는 가치 지향, 이념 지향적 성격이 강하다고 자평합니다.”

-정치 입문 권유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 몇 분한테서 총선 출마 제안을 받았고, 2007년엔 대선 캠프는 아니고 외곽조직에서 도와달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선 상당히 구체적으로 여당 쪽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지역구 얘기가 오가다 나중엔 비례대표 제안도 받았습니다.”

-왜 거절했습니까?

“일부에선 정치권에서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 민주화 운동이 뭔가 불순한 의도에서 진행된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부정적 요소가 더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정치권이나 공직 진출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상징성 있는 몇몇 사람은 공직 진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뉴라이트 단체인 자유주의연대 대표였던 신지호씨는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않았습니까?

“신 의원은 애초부터 정치권에 들어가려고 생각하던 케이스였고…, 신 의원이 몸담았던 단체 내부에서도 일반 회원들 사이에선 그런 비판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신 의원이 자신의 가치를 더 적극적으로 실현시킬 길을 찾으러 국회에 간 거라고 해명하니까,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정치권에 진출할 의사가 있었다면 대표직을 맡지 말아야 했던 거 아니냐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대표직을 맡고 있다가 들어가는 건 썩 흔쾌하지 않은 요소가 있습니다.”

김씨는 1991년 북한에서 보낸 반잠수정을 타고 입북해 묘향산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그 전에 이미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는 99년 민혁당 사건으로 국정원에 체포돼 공소보류 처분을 받고 공식적으로 ‘전향’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 북한 민주화 운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리 주체사상을 믿더라도 직접 북한에 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인데요, 91년에 북한에 간 건 무슨 생각에서였습니까?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욕구가 컸습니다.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토론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구요. 뭐, 그런 게 워낙 강해서…. 북한에서 내려보낸 반잠수정을 타고 (해안을) 나가는데, 그 통로에 높은 바위가 있고 바위 위 초소에서 초병들이 대형 서치라이트를 바다에 여기저기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물밑을 잠수정이 지나가는 건데, 저는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호송원들은 아주 여유있는 태도여서 의아하기도 하고, 경험이 많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기억이 납니다.”

-북한까지 갈 정도면 신념이 굉장히 강했던 건데, 원래 사람의 신념이란 잘 바뀌지 않거든요. 그런데 북한 갔다 와서 그렇게 쉽게 변한 걸 보면, 가기 전부터 이미 북한이나 사회주의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제 사상의 결정적 전환은 1989년 가을, 겨울 무렵입니다. 동유럽 붕괴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전반적으로 (내 생각을) 재검토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기존의 사회주의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겠다, 새 패러다임에 주체철학이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북한에 갈 때 북한 사회 자체에 커다란 기대를 한 건 아닙니다. 북한 사회,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는 그 이전부터 가졌지만, 김일성은 뭔가 새로운 구상을 갖고 있을 거란 기대를 했는데 그게 산산조각 난 거죠.”

-진보의 가치란 게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라든지, 성장보다는 복지를, 경쟁보다는 평등을 우선시하는 것 등입니다. 1980년대 운동할 때는 이런 가치를 가졌을 텐데, 지금은 그런 가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학자들은 선명하게 주장을 해야 하니까 특정 방향을 강조해서 얘기할지 모르지만, 현실정치는 대체로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독단으로 간다고 비판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균형을 추구하려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저도 현실운동을 하는데,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현대사회에선 좌든 우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지를 중시하고…, 또 경제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대학 시절 친구들은 가끔 만납니까?

“만나는 범위가 넓진 않습니다. 가끔 상가 같은 데서 보면, 몇몇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냉담하게 대합니다.”

-북한 갔다 온 뒤인 1993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부인을 운동의 동반자로 만난 셈인데요, 나중에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하니까 반대하진 않았습니까?

“아내가 운동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론적인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기에 저한테 다른 의견을 제시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몇 년 동안 냉담했죠. 잘 모르지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테니까요. (북한 민주화 운동의) ‘운’ 자도 듣고 싶지 않아 했고, 그런 게 몇 년 계속됐죠.”

-우리 사회에서 ‘386 세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립니다. 보수진영에선 ‘능력은 없으면서 과거 운동 경력에 기대서 권력만 좇는 집단’이란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기업하는 분들과 얘기해 보면, 대학에서 강의만 듣고 서클 활동도 스펙을 만들기 위해 하는 요즘 학생들에 비하면 과거에 운동했던 사람들은 굉장히 절실하게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해결해 나가려 한다고 말합니다. 협업과 토론의 경험도 풍부하고 조직문화에도 익숙한 측면에 만족도가 높더라구요. 그런 측면에서 386이 능력이 없다는 건 수용하기 힘들구요, 또 우리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 지식도 높은 편 아닙니까? 다만 특정 이슈가 터질 때 세력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감을 얻는 이슈가 터지면 세력화돼서 하나의 힘으로 뭉쳐버리는데, 그런 측면에선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요소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적 있습니까?

“한 번도 만난 적 없습니다.”

-2007년 대선 때 정권교체를 바랐죠?

“그렇죠.”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합니까?

“초기엔 이 대통령이 정치력이 부족해서, 타협하고 아우르는 능력이 부족해서, 특히 촛불사태 같은 때에 그런 단점들이 너무 두드러져 보여서 불만이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촛불시위 현장에 간 적 있습니까?

“일부러 가려고 간 건 아니구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실이 광화문 쪽에 있다 보니 지나치면서 봤습니다.(웃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다른 이슈면 모르겠는데, 광우병 문제는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시위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협상 잘못이 촛불시위에 큰 영향을 끼친 거 아닙니까?

“그렇죠. 이 대통령이 다양한 정치적 고려를 하는 부분에서 아무래도 미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980년대에 강철서신을 쓰고 학생운동권에 주체사상을 전파했던 행동이,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습니까?

“글쎄, 뭐라 그럴까요…, 그냥 정치적 판단으로 보자면 저는 잘못된 판단을 했고 그런 측면에선 후회하죠. 하지만 개인의 인생이란 측면에서 보면, 개인을 희생해서 대의라든지 가치라든지 이념을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으며 집중했던 경험을 제 개인적으론 소중하게 여깁니다. 후배들이 ‘형은 다시 태어나면 그런 길 가겠느냐’고 가끔 묻는데, 나는 ‘친북’하고 ‘공산주의’만 뺀다면, 똑같은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만 딱 빼면 그런 삶 자체는 상당히 훌륭한 삶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안기부 고문, 그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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