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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물고기를 줘? 낚시 가르쳐? 어업 통째로 바꿔야 혁신가!

등록 2009-11-12 21:36

빌 드레이턴은 “몇명의 기획에 따라 수만명의 노동자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20세기 포드식 경제 모델은 죽음에 다다랐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혁신가의 비전을 갖는 사회적 기업가의 시대다”라고 말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하는 진정한 거인”이라고 불렀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빌 드레이턴은 “몇명의 기획에 따라 수만명의 노동자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20세기 포드식 경제 모델은 죽음에 다다랐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혁신가의 비전을 갖는 사회적 기업가의 시대다”라고 말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하는 진정한 거인”이라고 불렀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아쇼카재단 CEO 빌 드레이턴
“미스터 드레이턴.” 일흔 가까운 나이의 미국인 사회혁신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몰랐던 나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테 없는 안경 너머로, 크고 맑고 반짝이는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그는 대답했다. “빌입니다. 빌이라고 부르세요.”

빌 드레이턴은 2005년 하버드대 공공리더십센터와 <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가 함께 선정한 ‘미국 최고의 리더 25명’ 중 하나다. 그 25명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과 콘돌리자 라이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포함됐다.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라고 불리는 사람. 사회 혁신을 꿈꾸는 이들이 하나같이 ‘구루’(guru, 스승·지도자라는 뜻)로 추앙하는 사람. 아쇼카 창립자 빌 드레이턴과의 첫 만남이었다. 두 시간 동안, 그는 ‘모두가 변화 창조자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 혁신의 비전을 역설했다. 그런 사회가 된다면, 한국의 미래 역시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인터뷰는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의 아쇼카 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미국 시민사회 뒤바꾼 세계 최초 사회적기업가

사회를 바꿔 문제 해결하는 ‘혁신가 정신’ 강조

자리에 앉은 빌은,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먼저 질문을 던졌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다.

“당신은 왜 여기까지 와서 저를 만납니까? 왜 아쇼카에 관심을 가집니까?”

빌 드레이턴을 찾아간 것은 그가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관련해서는 세계 최고 ‘구루’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은 한겨레경제연구소의 주요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최근 사회적 기업이 많은 관심을 얻으면서, 특히 ‘혁신’ 및 ‘기업가 정신’과의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은 연구소의 주요 연구 주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세계에 필요한 사회적 기업가 정신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사회적 사업(social business)과 사회적 기업가 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은 구분해야 합니다. 사회적 사업이란 돈을 벌면서 사회적 성과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이런 정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정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최근 사회적 기업을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하는 기업’이라는 단순한 구호로 홍보하면서 ‘경제적 자립’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꼬집기라도 하는 듯한 말이었다. 그럼 그가 말하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무슨 뜻일까? 그는 말을 이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어업을 혁신해 산업으로 의미를 갖게 만드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가라면 어업 혁신에 관심을 갖는 게 마땅합니다. 사회 전체를 바꾸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바로 혁신가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회적 기업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다른 이를 혁신가로 변화시킵니다. 이들은 창조적 파괴자이며, 새로운 모델의 소개자이며, 역할 모델이기도 하지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구현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도 아쇼카가 지원했습니다. 지금 유누스는 세계를 바꾸는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 모델이 되어 있지요. 아쇼카의 비전은 이런 혁신가의 비전을 모든 사람이 갖는 사회(Everyone a changemaker)를 만드는 것입니다. 혁신가의 정신은 여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이를 사회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가 정신입니다.”

범죄지역 녹화, 안전·자산가치 일군 성공사례

지금 가장 기업가정신 필요한 곳은 정부·언론

-왜 모든 사람이 혁신가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까? 몇 명의 리더가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인지요?

“20세기 경제를 끌고 온 모델은 미국의 포드 모델이었습니다. 포드자동차는 몇명이 기획하고 디자인한 뒤 라인을 만들어 놓으면, 수만명의 노동자가 그 기획에 맞춰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생산했습니다. 20세기 대부분의 성공한 조직은 이렇게 짜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포드 모델은 죽음에 다다랐습니다. 한두 사람만 창조적이고 모두가 수동적이면서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갖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습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실리콘밸리의 명암을 보십시오. 포드와 지엠 등이 자리잡아 세계 최대의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이제 몰락한 대도시가 됐습니다. 포드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요. 반면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업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혁신성을 갖게 만드는 생산 모델을 만들어 내면서,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문득 ‘1명의 리더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한국에서, ‘모든 사람이 혁신가인 사회’의 비전은 생뚱맞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도 혁신가의 정신이 필요한 것일까?

-한국처럼 성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혁신가의 정신은 왜 중요할까요?

“모든 사람이 혁신가가 되는 일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기술의 경쟁 우위는 점점 더 줄어들 것입니다. 워낙 빨리 따라잡고 따라잡히니까요. 이제 사람의 경쟁 우위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창의성과 자기주도성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이런 변화는 점점 커지고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죽지요. 디트로이트가 그렇게 된 겁니다.”

테 없는 안경과 큰 눈, 깡마른 체구. ‘현자’의 풍모가 나타나는 외모와는 달리, 빌은 30년 가까이 사회 부문(비영리 부문)의 혁신가로 활동했다. 1981년 5만달러로 시작한 아쇼카는, 지금 연간 예산 3000여만달러의 거대 비영리 조직으로 성장했다. 세계 각국에서 2300여명의 ‘아쇼카 펠로’(아쇼카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각 나라에서 구현하는 사람)가 활동하고 있다. 빌은 한때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미국 사회 부문을 혁신해 영향력을 확장하게 만든 대표적 혁신가로 꼽힌다.

-영리 기업에서의 혁신과 사회 부문에서의 혁신은 비슷한 개념입니까?

“제대로 된 기업가는 돈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혀 사업이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비전을 갖고 혁신을 만들어 냅니다. 그게 기업가정신입니다. 사실 사회 부문의 혁신과 영리 기업의 혁신은 방법상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다만 목적이 달랐을 뿐입니다. 영리 기업가의 목적이 시장의 기회를 취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기업가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번 아쇼카 방문의 1차 목적은 ‘커뮤니티 그린’이라는 프로젝트를 탐방하는 것이었다. 산림청이 건국대 김재현 교수 연구팀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숲 관련 활동 지원 비영리 조직 사례 연구를 위해서였다. 빌은 그 주요 사례로 꼽힌 ‘커뮤니티 그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예를 들면 아쇼카가 진행하는 커뮤니티 그린 프로젝트를 보세요. 도심의 열악한 주거지역에서, 이웃 사람들이 자기 땅을 조금씩 함께 내놓고 골목을 정원으로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은 물과 숲을 도시 커뮤니티 안으로 갖고 들어온 실험입니다. 범죄 지역을 녹화하면 안전과 자산가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사회 혁신 사례입니다. 사유지와 공유지가 함께 공존하는 역할 모델이고, 확산 가능한 혁신 사례입니다.”

한국 기술우위 줄어…변화 없인 디트로이트 꼴
아이들 사회의식·창조성 모두 키우는 교육 필요

-전통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 책임은 정부에 있었는데, 사실 정부에서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 가장 많은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곳이 바로 정부입니다. 단순히 국책연구소만 봐도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 260개의 연구소가 있는데, 각 부처에 매여 특정 부서로만 보고서를 내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에 쌓인 지식이 좀더 열린 형태로 보급되면 훨씬 효율적인 활용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시민 섹터가 크게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비즈니스 섹터에도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정부 섹터도 변할 때가 되었습니다. 비효율적이고 비창조적이라는 지금 정부에 대한 비판을, 30년 전 사회 부문도 받았습니다.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갖춘 혁신이 이런 비판을 없애 주었지요. 정부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빌은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또 정부만큼이나 혁신이 필요한 분야 중 하나가 미디어입니다. 미디어 수용자의 욕구와 전달 기술이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어제를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은 이제 필요 없고, 미래와 그 미래로 가는 방법(how to)을 이야기해 달라고 합니다. 또한 웹 2.0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획기적인 지식 전달 방법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뉴스와 지식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지켜온 언론의 자유, 개인정보 보호 등 저널리즘의 전통적 가치가 흔들리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수용자의 요구에 부합하면서도 품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갖는 미래형 미디어가 가능한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런 혁신도 지금 아쇼카 펠로 사이에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십니까? 한국과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잘 맞는다고 보십니까?

“한국은 민주적이고, 혁신적이며, 에너지가 넘치고, 매우 재능이 많은 국가이지요. 그래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혁신가인 세상을 만들려면 아이들과 젊은이가 변화해야 합니다. 한국은 지금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갖출 수 있게, 사회의식과 창조성을 동시에 갖추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아쇼카에서는 ‘유스 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12~20살의 학생들이 인터넷 라디오 방송, 상담 서비스, 소기업 창업 등을 경험하도록 지원해 줍니다. 미국에서 매년 10만명의 젊은이가 자신의 꿈으로 팀을 만들고 성과를 내는 체험을 하도록 해 줍니다. 이런 노력이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일에 참여하려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나 보고 더 많이 외워서 시험이나 잘 봐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국 경제의 10년 뒤 경쟁력은, 결국 이런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갖춘 사람을 얼마나 많이 고용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면,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문제없이 순항할 것이라고 봅니다.”

저녁 약속을 늦추면서까지 두 시간 동안 말을 이어가는 60대 후반의 열정적인 사회적 기업가 빌. 대화가 끝난 뒤 일주일, 서울로 돌아온 뒤 그가 직접 쓰고 사인한 편지가 봉투에 담겨 배달되어 왔다. 그는, 감사편지 보내기만은, 요즘 식보다는 옛날 식을 선호했다. 그러고 보니, ‘아쇼카’(=아소카)는 기원전 3세기 불교를 받아들이고 윤리 중심 정치를 도입하며 경제 성장을 이룬 인도의 황제 이름이다. 어쩌면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복잡한 문제의 답은, ‘오래된 미래’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아쇼카 재단과 빌 드레이턴
아쇼카 재단과 빌 드레이턴
아쇼카 재단과 빌 드레이턴

빌 드레이턴이 창립한 아쇼카의 공식 명칭은 ‘아쇼카: 공공을 위한 혁신가들’이다. 기원전 3세기 인도를 부흥시킨 아쇼카 왕과 같은 세계 사회적 기업가의 모임을 지향한다. 아쇼카는 사회적 기업가를 ‘세계의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에 시스템 변화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로 정의한다.

1981년에 설립된 이래 아쇼카는 60개 국가에서 2300여명의 ‘아쇼카 펠로’를 임명했다. 이들은 아쇼카로부터 생활비 지원, 컨설팅과 교육 등 지식 지원, 세계적 네트워크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능력이 있고 원한다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가가 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게 아쇼카의 비전이다. 최근에는 언론인 지원 재단인 나이트재단과 손잡고 미디어 분야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고, 레멀슨재단과 함께 과학기술 분야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는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빌 드레이턴은 1967년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석사)와 예일대 로스쿨을 다녔다. 1970년 경영컨설팅회사 매킨지에 입사한 그는, 뉴욕시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미국 최초의 니코틴-타르 세금을 고안하는 활동을 펼친다. 카터 행정부 때 환경청(EPA)에 들어가 배출권 거래제도 개념을 도입하는 데 기여했고, 레이건 행정부 때는 정부에서 나와 환경청 폐지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81년 아쇼카를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으며, 5만달러의 기부금으로 시작한 이 기관을 현재 연간 예산 3400만달러 규모의 큰 조직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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