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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회용’ 몰린 이주노동자…한국정부 대책은 ‘추방’뿐

등록 2009-10-29 23:07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조사관은 “이주노동자가 왜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줄이는 목표만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조사관은 “이주노동자가 왜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줄이는 목표만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니TV ‘THE 인터뷰’와 함께하는 한겨레가 만난 사람]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조사관은 지난 21일 ‘이주노동자 인권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한 번 사용하고 거리낌 없이 버리는 소모품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에서 제일 먼저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는 등 제도 개선을 이뤄왔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범죄자처럼 여기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정부는 20만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를 201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최근 대대적 단속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미디어운동을 벌여온 미노드 목탄(미누·37·네팔)씨마저 강제 추방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은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단속하다 보면 인권침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 신중한 정책을 주문했다. 또 그는 “필리핀 여성들이 인신매매되어 미군 기지촌 주변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무이코 조사관은 10월21일, 지난 1년 6개월 동안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조사한 기록들을 정리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앰네스티를 대표해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하면서 그는 국내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언론과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관해 앰네스티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역시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지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무이코 조사관을 만나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조사관의 이름은 지난해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인권침해를 조사하러 오면서부터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방문해 한국의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안다. 앰네스티 조사관으로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나는 앰네스티의 동아시아 조사관으로 있다. 한국뿐 아니라 북한, 일본, 몽골을 담당한다. 나와 앰네스티가 보기에 한국은 인권 문제에서 중요한 국가다. 한국은 이미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한국은 인권 분야에서도 아시아의 리더로서 성장해야 한다. 아시아의 리더로서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21일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를 다룬 인권 보고서를 냈다. 100쪽가량의 긴 보고서인데 이 보고서를 기획한 배경은 무엇인가?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06년 이주노동자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아 그것을 평가하기엔 아직 일렀다. 이번 보고서에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더 조사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인권침해 내용을 자세히 담았다.”

-구체적으로 고용허가제에 어떤 결함이 있는가?

“고용허가제에서 가장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은 일자리를 바꾸려면 고용주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장을 옮기는 것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을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또한 이번 보고서에서는 국가의 성실 (관리) 의무를 중요시했다.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주도한 것인 만큼 사업장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최근에 고용허가제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것은 알고 있나?

“알고 있다.”

계약기간 제한 없앤 고용허가제 개정 긍정적
고용주 허가없이 사업장 변경 못하는 건 한계

지난 9월16일 고용허가제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법 개정안에는 그간 불합리하다고 평가된 규정들이 일부 수정됐다.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와 1년에 한 번씩 근로계약을 새로 써야 하는 규정이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계약기간을 정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재고용 계약 시 출국한 뒤 재입국해야 하는 규정 역시 출국절차 없이 최대 2년간 재고용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고용허가제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더 좋아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지금 통과된 개정안은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앰네스티에선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고용주와 근로계약을 1년에 한 번씩 갱신하는 것을 폐기하고 당사자 간 합의로 계약기간을 정하게 했지만 그 계약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알 수 없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다른 나라와 견주었을 때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 보장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이주노동자들은 어느 국가에서나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국가끼리 비교하긴 어렵다. 일단 정부 통계에서 이주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은 금방 확인된다. 산업재해 발생률이 이주노동자가 한국인에 비해 훨씬 높다. (참조-이주노동자 산업재해 발생률은 1.06%인 반면 한국 노동자는 0.77%이다. 출처: 2006년 대한산업의학회지 통계) 또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은 한국인에 비해 3배나 많다.

물론, 한국은 고용허가제를 채택하면서 어느 정도 제도를 갖추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조사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차별 문제이다. 한국에는 인종차별주의적 문화가 있다. 예컨대,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범죄자인 것처럼 표현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평화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나도 프랑스에 있을 때 극우파 정당이 ‘실업자 300만=이주노동자 300만’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내국인 실업자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이와 유사한 논리가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아온 미노드 목탄(미누)씨가 지난 8일 단속됐다.(미누는 인터뷰가 이뤄진 이후 네팔로 강제추방됐다) 정부는 현재 22만여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201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해 대대적 단속에 나선 상태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접근이 단속밖에 없는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대규모로 체포하고 단속하는 과정에는 인권침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접근이 중요한데, 그가 급여는 다 받았는지 등을 한국 정부가 신경 쓰는지 알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줄이는 목표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왜 이주노동자가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대적 불법체류 단속엔 늘 인권침해 뒤따라
철저한 근로감독, 효과적 진정절차 마련해야

-10년 전쯤 이탈리아 정부가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 중 7년 이상 체류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등록 노동자로 구제해준 것으로 안다. 당시 합법화된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20만명에 이른 것으로 기억한다. 미누씨는 17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는데 표적 단속 대상이 됐다. 한국은 이 점에서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

“그렇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과는 다른 정책을 편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페인, 미국 등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거나 시민권까지 준다.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한 사람들은 훨씬 적응을 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더 머물수록 체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진다.”

-한국 언론은 미등록 노동자를 불법 체류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미등록 노동자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인식을 어떻게 보나?

“한국법과 국제법 모두 불법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들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속할 때도 그 단속이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하고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면서 단속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체포할 때도 미란다 원칙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건 분명히 차별이다. 체류 자격을 잃은 노동자와 범죄자는 분명 다르다.”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빈민지역이 조성되고 시민 안전 문제나 범죄 증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미등록 노동자 단속을 해야 한다고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사람이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곳이 슬럼화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많이 다르다. 지난해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마석 공단 지역을 방문했는데 오히려 한국인들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들이 오히려 한국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사람들이 공장에 오는 것을 막아주었다. 마석과 안산 지역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사이에 상호 의존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집을 빌리고 물건을 사고 음식을 사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또 여러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것은 한국에 매우 좋은 경험을 줄 것이다. 이를 적대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보고서에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담겨 있더라.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한 여성 노동자들이 미군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거나 성노예로 전락한 것들을 조사했던데 그분들을 직접 만나보았나?

“여러 여성들을 면담했다. 그들은 예술흥행비자를 받아 가수로 일하러 온다. 하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동두천, 의정부, 송탄 등 미군 기지촌에 있는 술집에서 미군에게 술을 판다. 이들은 한 달에 300잔에서 500잔을 팔아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이 의무를 다 못하면 처벌 받고 성관계도 강요당한다. 업주가 여권을 압수해 갖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고 도망도 가지 못한다.”

-정부에서 이런 상황을 알고 있나? 알고도 방관하는 건가?

“놀랍게도 출입국 관리본부(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나 법무부 등에서는 예술흥행비자로 오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전혀 이런 사례를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근로감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문제를 진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바란다.”

-보고서 제목이 ‘일회용 노동자: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권리’이다. 특별히 일회용 노동자란 표현을 쓴 이유가 있나? 이주노동자가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존재라는 뜻인가?

“안타깝게도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필요한 곳에서 사용되고 필요 없을 때 버려지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내가 만난 어떤 분은 일하다가 다치게 되자 고용주가 해고시켜 버렸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착취 받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보고서 제목에 그렇게 표현했다.”

예술흥행비자 입국 여성들 기지촌 성노예로
법무부·출입국정책본부는 상황파악도 못해

-보고서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이 이주노동자(migrate worker)란 표현을 일관되게 쓰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근로자, 이주 노동자 등 다양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일관되게 이주노동자란 표현을 쓴 이유가 있나?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용어이다. 홍 선생이 프랑스에서 일했을 때도 이주노동자였고 제가 영국에서 일할 때도 이주노동자였다. 이 용어는 이주노동자를 인식할 때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지 일하는 장소만 바뀐 노동자라는 것을 강조한 용어이다.”

-보고서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조사만 1년 정도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훨씬 종류가 많고 복잡했다. 또 내 역할이 조사관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자라고 알고 있는 한국은 매우 좋은 점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이 한국의 부정적 면만 보고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쉬웠다. 이 보고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정의롭게 바뀌길 바란다.”

-보고서 말미에 한국 정부에 바라는 요구 사항들을 기록했던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

“보고서에는 30개가 넘는 권고사항이 있다. 가장 시급한 건 고용허가제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다. 첫째,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제한을 없애야 하고 둘째, 근로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하고 셋째, 이주노동자의 진정 절차가 효과적일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행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예술흥행비자로 들어오는 노동자에게 에이치아이브이(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테스트를 강요하는 것은 심각한 차별정책이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이 보고서가 발표된 뒤 권고사항 이행 촉구 캠페인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문제뿐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지는 표현의 자유 위협과 같은 문제를 계속 살펴볼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 유엔의 초대 인권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인권이사회 선거 공약으로 국제노동기구의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등의 비준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 정부가 했던 그 약속이 과연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정리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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