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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도 변호사땐 차분…정치인은 국민 분노도 대변해야”

등록 2009-10-08 19:02수정 2009-10-09 14:51

항상 싸움의 현장에서 앞장서는 모습으로 비치는 데 대해 이정희 의원은 “늘 (행동하기) 직전까지 고민한다. 민주주의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대응하는 게 옳은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항상 싸움의 현장에서 앞장서는 모습으로 비치는 데 대해 이정희 의원은 “늘 (행동하기) 직전까지 고민한다. 민주주의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대응하는 게 옳은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하니TV ‘더 인터뷰’와 함께하는 한겨레가 만난 사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얼마 전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이정희(40) 민주노동당 의원을 칭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정희 의원이 참 잘한다. 그래서 후원금도 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역시 공식 당 회의에서 “이정희 의원의 노력에 존경과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다른 정당의 국회의원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정치권 밖에서도 이정희 의원의 이름은 많이 오르내린다. 촛불시위나 용산참사, 국회 본회의장 등 이 시기의 가장 격렬한 ‘현장’에 항상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보수신문의 논설위원은 “왜 이 의원은 항상 외치고, 싸우고, 농성하는 모습만 보이나. 국회의원이라면 좀더 세련된 방법으로 할 수는 없나”라고 지적했다. 보수인사들에겐 그의 ‘과격함’이 도드라지게 보일는지 모른다. 이 의원을 만나자마자 물었다. “왜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칭찬한다고 생각하느냐?” 이 의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잘 모르겠다. 나중에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답변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들을 수 있었다.

-이해찬 전 총리로부터 후원금은 들어왔습니까?

“네.(웃음) 고맙게 받았습니다. 받고서 고맙다고 전화드렸습니다.”

-이 전 총리와 직접 만나진 않았습니까?

“6월항쟁 기념사업회에서 네티즌 여러분들과 자리를 만들면서 이 전 총리하고 저를 불러 줬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 전 총리가 어떤 얘기를 하던가요?


“격려를 많이 해 주셨고, 정치인의 자세를 말해 주셨습니다.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어떤 점에 주목하는 게 좋은지 (본인의) 경험을 말해 줬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이 의원이 쓴 추모글을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를 좋아했다’고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을 좋아했지만 지지하지는 않은 거 아닌가요? 왜 그런 겁니까? 나중에 후회가 들지는 않던가요?

“음…,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돌아가서 ‘참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좋더라구요. 그분의 정책을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간에 ‘(내가) 이분을 참 좋아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지하지 않은 첫째 이유는 이라크 파병 때문이었습니다. 파병에 대해 제가 헌법소원을 냈을 정도로, 사실 매우 실망했고 안타까웠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평화롭게 산다는 가치에 대해서 좀더 심사숙고하고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길 바랐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무현 정권의 진보적 정책들도 있습니다, 종부세와 같은…. 그런 사안이 좀더 탄탄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완성되기도 전에 흔들려서 흔적조차 남지 못한 상황에 왔다는 평가는 제 스스로 합니다.”

-현실 정치에서 가치를 그대로 구현하는 건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 의원도 지금 국회의원으로서 법을 만들고 정책을 감시하지만, 그런 처지에서 보면 가치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 굴절되는 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던가요?

“제가 법률가로 10년 살면서 배운 건, 그렇더라도 꼭 유지되어야만 하는 원칙, 접을 수 없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같은 거죠. 다른 데선 양보하더라도 그런 건 유지해야만 한다는 공감대를 넓히는 게 정치세력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민주대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정희 의원도 ‘작은 차이를 따지기보다 같이 싸워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같이 싸운다는 건 선거연대까지도 가능하다는 얘기인가요?

“물론입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단일 후보를 내서 한나라당과 맞서는 게 바람직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원칙은 그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적용되는 양태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전국적 차원에선 선거연대 또는 선거연합이 필요하지만, 가령 호남에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연대의) 원칙은 필요합니다. 당의 크기엔 차이가 있지만 분명하게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진보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소외된 사람을 함께 품어 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학력고사 수석 모범생 ‘윤금이’ 사건에 충격
의원 된 뒤 용산사건 현장이 가장 슬픈 장면

-진보정당 인사들 중엔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엔 실개천이 흐르지만,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엔 장강이 흐른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별로 없다는 뜻인 거 같은데요, 이 의원도 이런 인식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그런 표현(실개천과 장강)에 동의하지는 않고요, 만약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장강이란 게 흐른다면 저는 장강의 중간쯤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웃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놓인) ‘실개천’이 ‘절벽’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민주당과 민노당 사이에 장강이 있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보수세력과의 차이보다는 훨씬 작은 것입니다. (연대는) 꼭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만, 우리 숫자가 많으니 너희는 따라오라는 방식은 안 됩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진보신당과의 재통합 문제는 어떻습니까?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지난 4월 울산 (재보궐선거)에서 시민들은 한결같이 ‘일단 합쳐서 와라. 그러면 찍어 줄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져 있는 게 오래 지속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데 합치는 게 억지로 되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법원에서 보면, 이혼한 부부가 합쳤다가 다시 헤어지면 영영 재결합이 어려워집니다. 합칠 수 있는 시도들이 다 이뤄지고 난 다음에 기분 좋게 합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정희 의원의 출신 고교를 물었다. 굳이 이걸 물은 건, 그가 1987학년도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일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340점 만점에 326점으로 전국 여자수석을 차지했다. 언론 인터뷰가 물밀듯이 밀려들었고,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그 역시 “법조인이 돼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어느 신문에서 ‘수석합격자들이 흔히 그렇게 말하는데 실제 그런 삶을 살고 있느냐’고 지적하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얼떨결에 한 답변인데, 그 답변이 그 이후로도 제 머릿속에 줄곧 남았던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대학 시절엔 공부보다 운동에 더 열정을 쏟았고 서울대 총여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어느 고등학교 나왔습니까?

“서울 서문여고인데, 잘 모르시더라구요. 이효리씨가 나온 학교라고 하면 다 압니다.(웃음)”

-공부를 굉장히 잘했는데, 대학 들어가서 학생운동에 투신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여성 문제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습니다. 1학년 때 여성 문제에 대해 분석한 글을 보고 계속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무렵에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살해된 윤금이씨 사건을 접했습니다. 제 동기들 가운데 동두천의 성매매 여성 쉼터에서 일했던 이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을 도와주러 갔다가 그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성매매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니까, 제 인생에서 여성 문제에 대한 자각이 큰 변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호감 불구 이라크 파병 실망
종부세 등 진보적 정책은 자리잡게 도왔어야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건 언제입니까?

“(18대 총선 직전인) 지난해 3월2일입니다.”

-그 전엔 전혀 당원으로 활동하지 않았습니까?

“예. 정치에 뛰어들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지난해 3월)는 민주노동당이 대규모 탈당 사태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입니다. 어려운 때라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아니었으면 (정치에)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국회의원이 된 뒤 가장 슬펐을 때, 가장 안타까웠을 때는 언제입니까?

“용산사건이 일어났을 때, 1월20일이었는데, 아침 8시 반쯤에 현장에 갔는데 온통 빙판이었습니다. 거기 전깃줄이 굉장히 많은데, 오전 내내 그 전깃줄에서 비 오듯 물이 떨어졌습니다. 새벽에 얼마나 (물대포를) 쏴댔으면 저럴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국회 대정부 질의를 준비하는데, (진압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분이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그걸 보면, 이성수(사망)씨로 추정되는 분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 곳이 없을까 두리번두리번 찾다가 불길과 유독가스에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기 사람이 있는데…’라고 우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이 떨어진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데도 이성수씨 머리 위로는 계속 물대포가 쏟아집니다. 사람이 떨어지는 그 장면은 저만 본 것인데요, 그렇게 슬픈 장면을, 그런 정보를 볼 수 있는 게 국회의원의 특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운찬 신임 총리가 용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십니까?

“청문회 때는 기대를 좀 가졌는데, 추석 때 (현장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듣고는 기대가 좀 떨어졌습니다. 정부가 지금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돈 안 들이고도, 법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수사기록 공개가 그겁니다. 총리가 결심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제를 풀어보시지 않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럼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제가 만들고 싶었던 이 법안이 통과됐을 때 가장 보람 있었어요…, 라고 말하면 좋을 텐데, 아직 그런 게 없네요.(웃음)”

-하나도 없나요?

“아직 없습니다. 발의한 법안들은 있는데, 지난해엔 ‘엠비(MB) 악법’에 밀렸고, 올 상반기엔 미디어법에 밀렸고….”

-딱 하나 이것만은 꼭 통과시키고 싶다는 법안이 있다면 ?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게 없는데….(웃음) 통상절차법입니다. 국가가 외국하고 협정에 서명해놓고 ‘외교비밀이니까 공개 못 해’라고 하면서 국회에 비준해 달라고 가져옵니다. 비준 안 하면 국제분쟁 생긴다며 무조건 하라고 들이미는데, 그 절차를 바꾸자는 게 이 법입니다. 지난해 7월 민주당이 국회에 들어올 때 한나라당은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과 통상절차법 제정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서 합의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날아간 상태입니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보수는 철학이 없고 진보는 정책이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진보세력엔 정책이 없다,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만약 우리가 내일 집권한다면 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까, 그런 걸 매일 생각합니다.(웃음) 정책이 부족하다, 대안이 많지 않다, 채워야 할 게 많다, 이런 비판을 많이 받는데, 우리가 그리는 사회에 대한 꿈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보여줬지요.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느냐, 반대하는 분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진행할 수 있는 단계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노력하는 중입니다.”

-어느 보수신문사 논설위원에게 이정희 의원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이 의원 좋긴 한데 왜 항상 싸우고 농성하는 방식으로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이런 비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잠시 생각한 뒤) 제가 원래 변호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토론하고 반박하고, 그렇게 일하는 게 가장 쉽고 편합니다. 국회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고 왔구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그런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집니다. ‘(의원) 숫자가 많으니까 다 해버리겠다’고 하는데, 거기에다 ‘저는 토론 좀 해야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면 제 책임이 끝나는 것인지, 국민이 ‘당신은 할 일 다 했다. 숫자 적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할지에 의문이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변호사가 다른 점이 뭐냐 생각해 보면, 변호사 때는 정말 냉정하고 차분하고 아주 조용히 일을 했습니다.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했구요. 그런데 정치는 그렇게 냉정하게만 해선 되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국민에겐 화나는 일까지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 의원은 맨 처음 질문에 대답을 했다.

-아까 답변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어떤 면이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겁이 좀 없습니다.(웃음) 둘째는, 제가 상식 내지는 법률에 지식이 있고, 설득하고 논박하는 일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상대적으로 그런 데 익숙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토론하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아니까.”

-법률과 상식, 토론을 얘기했는데요, 상대가 불법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걸 막으려고 자신도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게 옳은 것인가, 너무 지나친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은 없습니까?

“고민하죠. 늘 (행동하기) 직전까지 생각합니다. 이게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깊은 고민을 합니다. 민주주의 원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가령 미디어법(통과 과정)을 보면서도, 그럼 국회에서 표결의 의미는 뭔가, 다수결의 원리는 당연히 지켜야 하고 합법적 설득 과정도 지켜야 하는데, 그건 민주주의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건 민주주의 원칙과 그 안에서 합법적인 선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인데, (민주주의 원칙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어디까지 대응하는 게 옳은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합니다.”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정리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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