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뒤 청와대를 나온 강원국 이사는 잠시 이명박 대통령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연설문을 썼다. 그가 그만두려 하자 조 회장이 이유를 물었는데, “성장과 분배, 이런 데서 생각이 맞지 않는다”는 설명에 조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두 전직 ‘대통령의 펜’ 강원국씨
김대중 연설은 ‘예의 중시형’ 노무현은 ‘교감 중시형’
김대중 연설은 ‘예의 중시형’ 노무현은 ‘교감 중시형’
강원국(47) 제너시스템즈 이사는 연설의 달인이다. 연설문 작성에만 인생 10년을 바쳐왔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연설문을 8년 남짓 맡아 썼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연설문도 잠시나마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정치와 경제 양 영역에서 거물급들의 연설문을 그가 도맡아온 셈이다. 올해 그는 연설문을 쓰는 ‘스피치 라이터’에서 매뉴얼 전문 작성자인 ‘테크니컬 라이터’로 전격 변신에 성공했다. 제2의 인생이 화려하게 펼쳐졌건만,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두 대통령을 한꺼번에 잃는 큰 아픔도 겪었다.
강 이사는 연설과 매뉴얼의 전문가이지만 애초 대우증권 홍보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자를 꿈꾸다 결혼과 함께 떠밀리듯 대우증권에 입사했고, 글쟁이의 길이 운명처럼 그곳에 준비돼 있었다.
-증권사는 영업이 핵심인데 왜 홍보실로 갔나요?
“원래 기자 시험을 준비할 생각으로 홍보실에 지원을 했죠. 그때 주가가 1000포인트를 가고 해서 지점에 가면 돈을 많이 벌 때였어요. 워낙 시세가 좋다 보니까 지점에서 영업을 하면 사모님들이 조용히 자동차 키를 두고 갈 정도라고 했죠. 그래도 홍보실엘 간다고 하니까 회사에서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대우증권이 창사 20주년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신입사원인 제가 사사(社史)를 쓰는 일을 맡게 돼버렸죠.”
-신입사원이 사사를 쓰는 게 가능한 일이었나요?
“20년 사사를 만드는데, 한 경제신문의 퇴역 기자에게 1억원을 주고 외주를 맡겼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이 양반이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 사사를 베껴서 쓰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상부에 100% 표절이라고 보고를 했죠. 그랬더니 저더러 돈을 돌려받아 오라는 거예요. 언론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워낙 무섭잖아요. 그러니 위에서 못 나서고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보낸 거예요. 그냥 무조건 갔죠, 별수 없이. 베낀 것 가져가서 똑같지 않냐 했더니 이 양반도 양심이 있으니까 선수금조인 5000만원은 못 돌려주겠다고 하면서 나머지는 돌려주더라고요. 회사에선 잘했다고 하더니, 나보고 쓰래요. 황당했지만 어떻게 합니까?”
때는 1990년 3월, 창립기념일이 9월이니 6개월 안에 20년사가 무조건 나와야 했다. 결혼한 지 3개월, 입사한 지 2개월이 된 그는 몇 달간 집에도 못 들어가면서 안 쓸 수 없는 사사를 완성해 냈다. “9월까지 안 나오면 죽는 줄 알라고 하니까 나오긴 나오더라고요.”
이때부터 그는 대우그룹에서 글쟁이로 통하기 시작했고, 몇 해 뒤 과장 진급을 하면서 그룹 홍보실로 ‘영전’해 갔다. 그가 그룹에서 맡은 일은 사보인 <대우가족> 편집장이었다. 사보라지만 대판 신문 크기에 30만부를 찍어내는 만만찮은 일이었고 “조선일보 편집부원들이 이틀 밤 정도 부업으로 제목 뽑고 편집을 했던” 그럴듯한 작업이었다. 그러다 1998년 김우중 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되면서 그의 ‘스피치 라이터’ 경력이 시작된다.
“사사 쓰면서 글 쓰는 쪽으로 이상하게 풀렸지만, 연설을 쓰면서 김우중 회장을 배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었어요. 내가 돕는 게 아니라 배운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스피치 라이터의 특권은 회장이 주재하는 모든 회의에 들어간다는 거였죠. 주로 회장단 회의인데, 회의실에 전부 회장이고 사장도 없는데, 나 혼자만 과장이었어요. 회장단이 가감 없이 모든 얘길 하니까 내가 들었던 건 엄청난 정보였죠. 그런데 어느 날 나를 보니까 마치 내가 김우중이 돼 있는 듯한 착각에도 빠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김우중이 불과 20여년 만에 수백만명을 먹여 살리게 됐는데, 나는 가족만 먹여 살리는 일도 못하겠냐면서 머슴 생활 그만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거죠.”
무모한 도전은 두달 만에 막을 내리고 다시 회사에 복귀했지만 1998년 말 노무라 보고서가 나오고 대우그룹이 휘청하면서 회장 비서실이 문을 닫았다. 그는 다시 대우증권으로 원대 복귀했고 2000년 6월을 맞게 된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6·15 방북할 때 생중계를 봤어요. 김 대통령은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로 회담에 임하겠다’고 하셨죠. 그걸 보면서 아내한테 무심결에 그랬어요. 저런 연설은 나도 쓸 수 있는데…. 그랬는데 정말 못 믿기는 게 1주일 뒤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 결원이 생겼고, 대우그룹 출신 청와대 행정관의 천거로 그에게까지 연락이 닿았던 터다.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그는 1차 테스트에 통과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던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대우증권이 있는 여의도에서 택시를 탔는데 청와대에 가자는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광화문 가자고 하고 내려서 청와대까지 걸었죠. 그때가 첫 출근인데 그 뒤로 8년을 거기서 살 줄은 몰랐죠. 그때 박선숙 홍보기획비서관(현 민주당 국회의원)의 첫마디가 ‘몸 튼튼해요? 병 없죠?’더라고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 연설비서는 3D업종이더군요.”
-그래도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은 힘 있는 자리 아닙니까?
“그때 청와대에 들어가서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 정말 8년 동안 토요일, 일요일을 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집에 있으면 불안해서, 그냥 출근을 하고 말아요. 힘은 무슨 힘? 골방에 앉아서 연설문만 쓰는 일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김 전대통령 연설문 꼼꼼하게 검토
한 글자라도 고치는 ‘빨간펜 선생님’ 국민의 정부에서 연설행정관, 참여정부에서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 이사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대단히 성실한 연설의 천재로 기억하고 있다. 꼼꼼하고 세심하다는 점은 두 대통령의 공통점이지만,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노 대통령이 ‘버럭 천재형’이라면, 김 대통령은 ‘점잖은 노력형’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연설의 대가들이잖습니까? “최소한 연설에 관한 한 두 분은 정말 성실해요. 김대중 대통령은 꼼꼼하고 성실해서 우리가 연설문을 올리면 한 번도 그냥 내려보낸 적이 없어요. 단 한 글자라도 고쳐서 내려보내는 ‘빨간펜 선생님’이시죠. 그러니까 언제나 100점이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기억력이 기가 막혀요. 보통 에이(A)4용지로 8장씩 되는 연설문을 척척척 넘기고 탁 뒤집어 놓고 일어서세요. 그러고 나면 우리한텐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이 오죠. 차마 대통령 얼굴을 못 봐요. 깨지는 시간이죠. 한 번 화를 내시면 워낙 불같이 내시니까요.” -노 대통령의 경우는 ‘말’로 사건사고가 많았죠? “이분은 상당히 감각적이세요. 그래서 사고도 좀 치셨죠. 대못을 박느니 패가망신이니 그런 말들이었는데, 사실 사고라기보다는 이렇게 해야 전달이 된다고 생각을 하셨어요. 왜냐면 그런 말들은 조중동이 망신을 주려고 전달을 해주거든요. 대통령은 그렇게 독한 말을 써서라도 소통을 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밋밋한 말 해봤자 전달이 안 된다. 점잖게 하는 말을 잘 전달해주면 그런 말 안해도 되지만…’ 노 대통령은 이런 말씀도 하셨죠. 지금 이명박 대통령 말은 조중동이 얼마나 잘 전달해줍니까? 대통령 발언에다가 더 살을 붙여서 잘 전달해주는데, 와이에스 때도 그랬고 디제이 때도 어느 정도는 해줬죠.” 실제로 노 대통령은 생전 “모든 언론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우리가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 자해를 통해 언론의 관심을 사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노 전대통령 ‘애드리브’ 말 많았지만
언론들 관심 끌려는 의도 있었죠 -노 대통령은 연설에서 애드리브가 그렇게 뛰어났다죠? “연설비서관은 과녁에 화살을 쏘듯 대통령의 생각을 맞혀야 해요. 그런데 노 대통령은 정말 아이디어가 많고 천재적이어서 매일 생각이 바뀌죠. 연설 중에서 광복절 경축사가 가장 크고 중요한데, 경축사를 한 번 준비하면 버전이 4~5개가 될 정도고 내용도 다 달라요. 한 번은 남북문제로 갔다가 자주국방으로 바뀌었다가 동북아 평화로 썼다가, 핵심 주제가 계속 바뀌죠. 그러니 과녁이 막 움직이는 셈이에요. 노 대통령은 본인이 다 구술하고 완성된 연설도 가지고 가서는 그냥 덮어버려요. 보고 읽으면 청중하고 교감이 안 된다고 하죠. 중간에 애드리브도 넣고, ‘안 그렇습니까?’ 이런 것도 넣고 그래야 하는데 읽으면서는 이런 추임새가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원고를 덮어놓고 딴소리를 하다가도 다시 원고 내용으로 돌아가요. 애드리브를 하면서도 언제 어느 부분으로 돌아갈까를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신대요. 연설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분량까지도 머릿속으로 맞춰가며 연설을 하신다더군요.” -김대중 대통령은 낭독형 연설을 했죠? “김 대통령은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히 첨삭을 해서 내려보내시는데, 1년에 한두 번은 폭탄을 내려보내셨죠. 구술을 녹음한 테이프를 폭탄이라고 불렀는데,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안 들면 이 폭탄을 연설비서관실에 내려보내셨어요. 내용이 ‘지금부터 국군의 날 연설입니다’ 이러면서 시작되죠. 처음에 몇 분짜리 연설인지 물어보고 나서 8분이라면 8분을 딱 맞춰서 한 번도 녹음이 중간에 끊기지 않고 편집 없이 통으로 테이프가 만들어지죠. 메모만 몇 가지 해서 하신다더라고요. 그러면 우리는 구술하신 걸, 그대로 풀어서 낭독본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그 자체가 완벽하기도 하지만 감히 손을 못 대는 거죠. 그런데 그걸 들고 연설을 하실 때 또다시 읽으시는 거예요. 왜냐? 그분은 보고 읽는 게 청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참여정부를 끝으로 청와대에서 나온 강 이사는 지난해 효성그룹에 잠시 몸담았다. 전경련 회장이기도 한 조석래 효성 회장의 연설 담당 임원이었다. -효성에서 두 달밖에 안 계셨죠? “제가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연설을 맡으면서 배운 게 있는데, 배운 내용하고 이분(조석래 회장) 생각하고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배운 것과 정반대되는 걸 써야 되는 상황에 부딪히더라고요. 조 회장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연설을 중시하는 분인데, 거의 10년 전부터 스피치 라이터를 구하기 시작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연설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은 거죠. 임원들 중에서 연설을 안 써본 사람이 없어요. 부회장도 썼고, 임원들을 모아놓고 연설 워크숍도 한 번 하고 연설 평가도 했더라고요. 연설은 당신의 ‘명예’라는 말도 하시는데 명언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생각이 안 맞아서 그만 두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유를 구체적으로 꼬집어서 얘기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성장과 분배’ 이런 게 대표적이라고 했죠. 이해된다고 하셨답니다.” 효성에서 나와 6개월을 ‘백수’로 지낸 끝에 인터넷 관련 기술업체인 제너시스템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테크니컬 라이터’로 업종을 변경했다. 기술에 대한 매뉴얼을 전문적으로 쓰는 신직종이다. “여기가 직원 300명 정도의 코스닥상장사인데, 강용구 사장 역시 조석래 회장의 연설처럼 매뉴얼에 대한 신념이 있는 분이에요.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고객에게 표현하는 문서가 친절하고 고급스럽고 격의 있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기술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거죠. 이분이 기술문서를 쓰는 테크니컬 라이터 구하기에 갈급해 있었는데, 우연찮게 제가 들어오게 된 겁니다. 큰 회사가 아닌데도 여기엔 테크니컬 라이터가 5명이나 있어요. 테크니컬 라이터 양성 과정까지 사장님이 만들었죠. 제가 여기서 이 조직을 이끌고 문서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터와 스피치 라이터는 한참 다른 일인 것 같은데요? “똑같아요. 글 잘 쓰는 거랑은 전혀 관계가 없고 둘 다 꼼꼼하고 성실하면 됩니다. 논리적으로 문장을 연결하는 능력만 있으면 돼요. 연설할 사람 이야기를 듣고 그걸 표현하는 것처럼, 기술 개발자한테 설명을 듣고 그걸 매뉴얼로 쉽게 표현하니까 비슷한 일입니다.” 대통령 연설을 쓰던 그가 이젠 테크니컬 라이터로 또다른 승부를 걸고 있다. “소니의 경우엔 테크니컬 라이터 출신이 사장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매뉴얼을 잘 쓰는 사람은 제품 기획도 할 수 있거든요. 깊이 있게는 몰라도 모든 기술을 다 알고 있고, 속속들이 제품을 들여다보니까 제품을 평가하고 기획에 반영해서 개발자를 이끌고 갈 수도 있는 거죠. 제너시스템즈가 테크니컬 라이팅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곳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강원국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했다" [한겨레談 #11]
한만사 2009년 8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제너시스템즈에서 테크니컬 라이터 강원국 이사.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 글자라도 고치는 ‘빨간펜 선생님’ 국민의 정부에서 연설행정관, 참여정부에서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 이사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대단히 성실한 연설의 천재로 기억하고 있다. 꼼꼼하고 세심하다는 점은 두 대통령의 공통점이지만,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노 대통령이 ‘버럭 천재형’이라면, 김 대통령은 ‘점잖은 노력형’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연설의 대가들이잖습니까? “최소한 연설에 관한 한 두 분은 정말 성실해요. 김대중 대통령은 꼼꼼하고 성실해서 우리가 연설문을 올리면 한 번도 그냥 내려보낸 적이 없어요. 단 한 글자라도 고쳐서 내려보내는 ‘빨간펜 선생님’이시죠. 그러니까 언제나 100점이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기억력이 기가 막혀요. 보통 에이(A)4용지로 8장씩 되는 연설문을 척척척 넘기고 탁 뒤집어 놓고 일어서세요. 그러고 나면 우리한텐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이 오죠. 차마 대통령 얼굴을 못 봐요. 깨지는 시간이죠. 한 번 화를 내시면 워낙 불같이 내시니까요.” -노 대통령의 경우는 ‘말’로 사건사고가 많았죠? “이분은 상당히 감각적이세요. 그래서 사고도 좀 치셨죠. 대못을 박느니 패가망신이니 그런 말들이었는데, 사실 사고라기보다는 이렇게 해야 전달이 된다고 생각을 하셨어요. 왜냐면 그런 말들은 조중동이 망신을 주려고 전달을 해주거든요. 대통령은 그렇게 독한 말을 써서라도 소통을 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밋밋한 말 해봤자 전달이 안 된다. 점잖게 하는 말을 잘 전달해주면 그런 말 안해도 되지만…’ 노 대통령은 이런 말씀도 하셨죠. 지금 이명박 대통령 말은 조중동이 얼마나 잘 전달해줍니까? 대통령 발언에다가 더 살을 붙여서 잘 전달해주는데, 와이에스 때도 그랬고 디제이 때도 어느 정도는 해줬죠.” 실제로 노 대통령은 생전 “모든 언론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우리가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 자해를 통해 언론의 관심을 사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노 전대통령 ‘애드리브’ 말 많았지만
언론들 관심 끌려는 의도 있었죠 -노 대통령은 연설에서 애드리브가 그렇게 뛰어났다죠? “연설비서관은 과녁에 화살을 쏘듯 대통령의 생각을 맞혀야 해요. 그런데 노 대통령은 정말 아이디어가 많고 천재적이어서 매일 생각이 바뀌죠. 연설 중에서 광복절 경축사가 가장 크고 중요한데, 경축사를 한 번 준비하면 버전이 4~5개가 될 정도고 내용도 다 달라요. 한 번은 남북문제로 갔다가 자주국방으로 바뀌었다가 동북아 평화로 썼다가, 핵심 주제가 계속 바뀌죠. 그러니 과녁이 막 움직이는 셈이에요. 노 대통령은 본인이 다 구술하고 완성된 연설도 가지고 가서는 그냥 덮어버려요. 보고 읽으면 청중하고 교감이 안 된다고 하죠. 중간에 애드리브도 넣고, ‘안 그렇습니까?’ 이런 것도 넣고 그래야 하는데 읽으면서는 이런 추임새가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원고를 덮어놓고 딴소리를 하다가도 다시 원고 내용으로 돌아가요. 애드리브를 하면서도 언제 어느 부분으로 돌아갈까를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신대요. 연설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분량까지도 머릿속으로 맞춰가며 연설을 하신다더군요.” -김대중 대통령은 낭독형 연설을 했죠? “김 대통령은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히 첨삭을 해서 내려보내시는데, 1년에 한두 번은 폭탄을 내려보내셨죠. 구술을 녹음한 테이프를 폭탄이라고 불렀는데,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안 들면 이 폭탄을 연설비서관실에 내려보내셨어요. 내용이 ‘지금부터 국군의 날 연설입니다’ 이러면서 시작되죠. 처음에 몇 분짜리 연설인지 물어보고 나서 8분이라면 8분을 딱 맞춰서 한 번도 녹음이 중간에 끊기지 않고 편집 없이 통으로 테이프가 만들어지죠. 메모만 몇 가지 해서 하신다더라고요. 그러면 우리는 구술하신 걸, 그대로 풀어서 낭독본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그 자체가 완벽하기도 하지만 감히 손을 못 대는 거죠. 그런데 그걸 들고 연설을 하실 때 또다시 읽으시는 거예요. 왜냐? 그분은 보고 읽는 게 청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참여정부를 끝으로 청와대에서 나온 강 이사는 지난해 효성그룹에 잠시 몸담았다. 전경련 회장이기도 한 조석래 효성 회장의 연설 담당 임원이었다. -효성에서 두 달밖에 안 계셨죠? “제가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연설을 맡으면서 배운 게 있는데, 배운 내용하고 이분(조석래 회장) 생각하고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배운 것과 정반대되는 걸 써야 되는 상황에 부딪히더라고요. 조 회장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연설을 중시하는 분인데, 거의 10년 전부터 스피치 라이터를 구하기 시작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연설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은 거죠. 임원들 중에서 연설을 안 써본 사람이 없어요. 부회장도 썼고, 임원들을 모아놓고 연설 워크숍도 한 번 하고 연설 평가도 했더라고요. 연설은 당신의 ‘명예’라는 말도 하시는데 명언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생각이 안 맞아서 그만 두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유를 구체적으로 꼬집어서 얘기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성장과 분배’ 이런 게 대표적이라고 했죠. 이해된다고 하셨답니다.” 효성에서 나와 6개월을 ‘백수’로 지낸 끝에 인터넷 관련 기술업체인 제너시스템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테크니컬 라이터’로 업종을 변경했다. 기술에 대한 매뉴얼을 전문적으로 쓰는 신직종이다. “여기가 직원 300명 정도의 코스닥상장사인데, 강용구 사장 역시 조석래 회장의 연설처럼 매뉴얼에 대한 신념이 있는 분이에요.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고객에게 표현하는 문서가 친절하고 고급스럽고 격의 있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기술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거죠. 이분이 기술문서를 쓰는 테크니컬 라이터 구하기에 갈급해 있었는데, 우연찮게 제가 들어오게 된 겁니다. 큰 회사가 아닌데도 여기엔 테크니컬 라이터가 5명이나 있어요. 테크니컬 라이터 양성 과정까지 사장님이 만들었죠. 제가 여기서 이 조직을 이끌고 문서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터와 스피치 라이터는 한참 다른 일인 것 같은데요? “똑같아요. 글 잘 쓰는 거랑은 전혀 관계가 없고 둘 다 꼼꼼하고 성실하면 됩니다. 논리적으로 문장을 연결하는 능력만 있으면 돼요. 연설할 사람 이야기를 듣고 그걸 표현하는 것처럼, 기술 개발자한테 설명을 듣고 그걸 매뉴얼로 쉽게 표현하니까 비슷한 일입니다.” 대통령 연설을 쓰던 그가 이젠 테크니컬 라이터로 또다른 승부를 걸고 있다. “소니의 경우엔 테크니컬 라이터 출신이 사장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매뉴얼을 잘 쓰는 사람은 제품 기획도 할 수 있거든요. 깊이 있게는 몰라도 모든 기술을 다 알고 있고, 속속들이 제품을 들여다보니까 제품을 평가하고 기획에 반영해서 개발자를 이끌고 갈 수도 있는 거죠. 제너시스템즈가 테크니컬 라이팅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곳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강원국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했다" [한겨레談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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