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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런 분 또 있을까”…차마 못보내 가슴에 묻다

등록 2009-05-29 19:31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시민들과 함께한 마지막 길
대학동아리 선후배 10여명
광화문에서 광장으로…
노란 물결따라 만장행렬

함께 울고 노래부르며
“봉하마을까지 걷고 싶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네거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려고 모인 시민들은 순간 침묵에 빠졌다. 고층빌딩 전광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날 밤 10시부터 이날 오전 8시까지 야근을 한 김서희(33·간호사)씨도 이들 사이에서 말을 잊었다. 출근 때 챙겨간 검정 옷을 입고 병원에서 곧장 광화문으로 나왔다.

김씨 옆에는 대학 동아리 ‘마당극회’ 친구와 선후배 10여명이 함께 섰다. 88학번부터 02학번까지, 지금은 펀드매니저, 대기업 회사원, 학원 강사, 세계여행 준비를 하는 ‘백수’까지 저마다의 삶으로 바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떠나는 길에 함께하자는 뜻에서 전날 약속을 잡았다. 김씨는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영결식장 제단에 놓인 영정 사진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한 사람한테 강하고, 약한 사람한테 약했던 대통령. 이런 분은 또 있을까….”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11시께 만장단 행렬이 대한문 앞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펀드매니저 김욱래(37)씨는 “당신의 품은 뜻이 촛불로 타오릅니다”라는 한 만장 글귀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낮 12시께 거리에서 영결식을 함께하던 시민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를 하는 순간이었다. 노란 넥타이를 맨 강정석(40)씨는 순간 넥타이 매듭을 풀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밀려와 머리끝이 쭈뼛 선다.” 내내 한마디도 않던 그가 한마디 내뱉었다.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광화문에서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광장은 물론 거리도 추모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시민분향소가 있던 대한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20여분쯤 기다렸을까,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노제를 위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날 학원을 임시 휴업한 성민기(39)씨는 “이제 정말 (노 전 대통령을) 보내야 하는가 보다”며, 더 말을 잊지 못했다.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권기혁(37·회사원)씨는 “프로야구계의 선동열처럼, 몇 십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인데 그걸 몰랐다”며 “그를 보내 버린 아쉬움을 달랠 길 없다”고 말했다. 김성욱(37·회사원)씨는 “뽑아놓고 나서 너무 무심했다”고 말했다.

오후 2시, 3시간을 꼬박 서 있던 이들은 노제를 끝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만장 행렬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초여름 오후 아스팔트만큼 뜨거웠다. 성민기씨가 “봉하마을까지 걷고 싶다”고 했다. 그 너머로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연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29일,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을 이렇게 가슴속에 묻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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